1202개의 CPU와 176개의 GPU(그래픽프로세서유닛), 3000만번의 착점 학습, 100만번의 자체 대국, 매일 3만번의 대국 학습. 인간의 눈에는 ‘괴물’로 비치는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를 설명하는 말이다.

9일부터 15일까지 다섯번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은 현존 최강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진면목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시켜 줬다. 알파고는 때론 ‘인간’처럼 바둑을 둬 감탄을 자아내게 했지만 의외의 실수를 범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대국 종반에는 가차 없는 냉철함으로 끝내기의 진가도 발휘했다.

이번 대결에서 보여준 알파고의 능력은 이세돌 9단을 이겼다는 것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세돌 9단이 첫승을 거둔 4국이 끝난 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도 “4국을 통해 알파고의 약점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엄청난 컴퓨팅 파워와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으로 무장한 알파고의 실체는 향후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국내 관련 기업과 과학기술계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2월 22일 이세돌 9단은 대국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 ‘알사범’ 신드롬...고정관념을 깼다

지난 2월 22일 이번 대국 관련 기자회견에 나선 이세돌 9단은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 9단은 5대0, 4대1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3월 8일 경기 전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 9단은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처음 들었다”며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보여 최선을 다해 대국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1국부터 3국까지 이세돌 9단이 3연패 하자 바둑계는 알파고를 ‘알사범’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시각에서는 허술하게 보였던 알파고의 수를 프로 바둑 기사들이 해설하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모두 일리가 있는 수였다는 게 바둑 기사들의 중론이었다.

알파고의 수가 바둑계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오히려 알파고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알파고는 알려진 것처럼 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방해 바둑을 학습했다. ‘몬테카를로 트리 서치’라는 이론을 이용해 다음 수를 찾고, 다음 착점의 후보를 빠르게 찾는 ‘정책망’과 승률이 높은 수를 찾는 ‘가치망’을 여러 층으로 나눠 적용하는 ‘딥러닝’ 방식을 통해 최적의 수를 찾는다.

이세돌 9단의 대국 장면

이같은 알파고의 작동 메커니즘은 사람이 처음 바둑을 접할 때 배우는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은 ‘붙이면 젖혀라’ ‘궁하면 붙여라’ 등 바둑의 좋은 행마를 격언으로 배우지만 알파고는 딥러닝을 통해 최적의 수를 ‘저절로’ 안다. 알파고가 예상하지 못한 의외를 수를 둔 것도 어찌 보면 인간이 바둑을 배울 때 이용하는 격언과 규칙, 원칙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은 마지막 5국을 마친 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바둑에 대한 고정관념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해설위원이었던 김성룡 9단도 “알파고의 마지막 끝내기 수는 프로 바둑 기사들도 보고 배워야 한다”며 알파고가 바둑계에서 ‘알사범’으로 불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대국 전에 이세돌 9단에게 인공지능과 컴퓨터의 특성에 대해 왜 알려줄 기회가 없었는지 의문”이라며 “이 9단이 인공지능의 특성을 파악하고 대국에 임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알파고의 무기 ‘딥 러닝’은 완벽을 향해 진화중…‘악수’를 ‘버그’로 보면 곤란

이세돌 9단이 승리한 4국에서 알파고는 분명 ‘패착’을 뒀다. 유리한 형세에서는 가차 없이 냉정한 수를 두던 알파고가 불리한 국면에서는 어이없는 수를 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알파고에도 ‘버그’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 SW 및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하수들이 두는 의미없는 수를 두는 것도 알파고의 계산 하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의료영상연구실 선임연구원은 “흔히 SW에서 버그라고 하면 의도하지 않았던 동작, 즉 오작동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고장난 것”이라며 “그러나 알파고는 불리한 국면에서 어느 정도의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나온 수이기 때문에 버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명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잘못 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떤 수가 가장 나을지 불완전한 분석을 했기 때문”이라며 “충분히 학습되지 못한 영역에서 인간이 보기에 실수로 여겨지는 수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진보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딥 러닝’의 한계도 이번 대국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이정원 연구원은 “인간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판단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현재까지 나온 인공지능 알고리즘 중에서는 딥러닝이 가장 뛰어나며 앞으로 점점 개선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알파고 서버에 난방장치를 두면 이길 것”...전력 소모와 발열 문제 해결이 과제

알파고는 1202개의 CPU와 176개의 GPU를 병렬로 연결해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를 순간적으로 계산해 낸다. 알파고가 더 많은 CPU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CPU 개수를 딥마인드 개발자들이 경험을 통해 산출했기 때문이다.

알파고 시스템

더 중요한 것은 176개의 GPU가 하는 역할이다. 정두석 KIST 전자재료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GPU는 670개 CPU의 연산처리 능력을 갖고 있다”며 “딥마인드 개발자들이 GPU를 이용한 이유는 그래픽과 이미지를 처리하는 GPU가 바둑의 X, Y축과 흑백의 색깔 등 공간 계산에서는 CPU보다 탁월한 성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GPU는 연산을 처리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코어의 수가 GPU 한 개당 2000~3000개에 달한다.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전력 소모와 발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두석 연구원은 “그동안 알파고가 학습하면서 소모한 전력과 발생시킨 열에너지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수준일 것으로 보이며 알파고 서버에 난방기를 틀면 이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며 “딥마인드 개발자들은 이런 하드웨어 문제를 알고리즘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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