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에 의한 지배는 대중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평등을 비롯한 많은 대중의 권리를 빼앗아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그 결과 주권재민과 민중에 의한 지배를 절차적인 제도로 확립한 민주주의가 탄생하게 됐다. 우리도 국민 저항으로 오랜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룬 위대한 근대사를 갖고 있다. 문제는 절차로서 민주화는 이루어졌으나 조직의 문화는 민주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일부 선출직은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그러나 민관을 구분할 것 없이 대부분의 조직의 장을 선임하는 과정에는 민주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장에 대한 제청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규정대로 추천되지 않고 있다. 민간의 경우에도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만연돼 있다.

민주화됐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우리사회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관 할 것 없이 소수의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 국가의 최고권력을 위한 민주화 운동을 해 왔다면 이제 사회 전반적 조직에 대한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민주적 제도와 규정대로 모든 조직이 구성돼야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고, 민주적인 제도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조직의 장 또는 중간에 있는 간부들은 조직 내에서 일정한 직책을 위임 받았다는 인식이 부족하고 나머지 조직원들보다 위에 있거나 더 특별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사실 더 중요한 직책을 부여받았을 뿐이며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더 높거나 인품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다.

놀라운 것은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망각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노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맞짱 토론을 하거나, 모의원이 백바지를 입고 국회 첫 등원을 감행해 권위를 스스로 내려 놓으려 했지만 많은 저항에 부딪쳤다.

브렉시트(Brexit)를 포기하기 위한 EU와의 협상을 끝내고 다우닝가 10번지에서 EU 잔류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는 캐머런 총리의 모습이 지하철에 기대 신문 보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왜 도로변에서 연설하는 전통이 생겼을까 생각해 본다. 백악관 앞마당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거나 참모들과 책상 모퉁이에 걸터앉아 토론하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도 전혀 고압적이지 않다.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이 큰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CEO는 다른 직원들과 같은 크기의 책상을 맞대고 앉아 일한다. 직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제공받고 보호는 받지만 참모들이나 일반 국민, 일반 직원들과 평등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쌓여 온 결과 일 것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권위에 충만해 있다. 국무회의, 담화장소, 모든 국가위원회, 국회, 당, 정부기관, 공기업, 대기업 등등의 중간 간부까지도 모두 관료적이거나 권위적이다.

회의장소 및 사무실도 관료적인 모습 그대로다. 의자는 육중하고, 방은 넓직하고, 윗사람의 행차에 도열하고 배석하고, 수행 비서가 아니면서도 가방을 대신 들고, 심지어는 배웅할 때는 검은색 차 뒤에 죽 서서 뒤에 대고 절까지 한다. 조폭 영화에서 본 듯한 모습들이다. 단지 그 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신분이 더 높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거 왕조나 독재가 그랬듯이 잘못된 개인 또는 소수집단에 의한 지배는 국가, 국회, 당, 기업 할 것 없이 위험할 뿐 아니라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창의가 발현할 수 없다. 시키는 대로만 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창의와 협업이 필요한 시대에 자유로움과 평등한 문화가 없는 조직을 가진 국가는 경쟁에서 계속 밀려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