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구글의 자회사 유튜브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구글의 로봇 개발 자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공개한 영상이었다. 2분 41초 분량의 이 동영상엔 두 발과 두 손을 가진 로봇이 등장한다. 키 175㎝, 무게 82㎏으로 사람 크기의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다. 아틀라스는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문제없이 걸었다. 앞에 놓인 상자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지정된 장소로 걸어갔다. 사람이 긴 막대기로 밀자 주춤주춤 뒷걸음질치며 버텼다. 더 강하게 밀어서 넘어뜨리니 사람처럼 팔과 무릎으로 딛고 일어났다. 지금까지 인간형 로봇들은 평평한 바닥에서만 걸었다. 충격을 받으면 속절없이 무너졌다. 넘어지면 혼자 힘으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전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로봇이 나타난 것이다.

배우지 않은 일도 로봇 스스로 터득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머리를 쓰는 일에서 탁월했지만, 실제 세계에서 손발이 될 '몸'이 없었다. 아틀라스처럼 획기적인 로봇에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 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 연구소의 다니엘라 러스 소장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터뷰에서 "20년 안에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지금의 자동차나 휴대폰만큼 가정이나 사무실, 공장에서 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으로 지혜를 얻은 '로보 사피엔스'와 '호모 사피엔스' 간의 공생(共生) 시대가 임박한 것이다.

웬일이세요 채소를 다 사놓으시고… - 프랑스 알데바란사(社)가 개발해 일본 소프트뱅크가 판매하고 있는 감정 로봇‘페퍼’가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 페퍼는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으로 사람의 표정과 말을 통해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지금까지 로봇은 입력된 정보에 따라 움직였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결합해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은 일까지 해낸다. 미국 UC버클리 피러 아벨 교수팀의 로봇 '브리트(BREET)'는 장난감 비행기 조립을 척척 해낸다. 조립 설명서를 사전에 입력한 것도 아니다. '알파고'가 수만건의 기보(棋譜)를 학습해 이세돌을 이겼듯, 브리트 역시 부품들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맞춰 보다가 조립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집안일도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된다. 미국 로봇 개발사 윌로 개러지는 전 세계에 무료로 'PR2' 로봇을 제공하고 이들이 배운 기술을 공유하도록 했다. 이를테면 한 로봇은 요리를, 다른 로봇은 세탁물 개기를 배운다. 이 정보를 외부 인공지능 수퍼컴퓨터에 저장하면, 통신망으로 이 컴퓨터에 접속한 다른 로봇도 순식간에 요리를 하고 옷을 갤 수 있다. 모든 집안일을 0.1초 만에 다 배우는 로봇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로봇 간의 정보 공유를 위한 검색 사이트도 등장했다. 스탠퍼드대의 아슈토시 삭세나 교수는 로봇들에게 다양한 물건을 주고 조작하는 법을 익히도록 했다. 이 정보를 '로보브레인'이라는 사이트에 올려놓고 다른 로봇들이 같은 물건을 조작할 때 검색할 수 있게 했다.

표정 보고 감정 읽는 일도 가능

공교롭게도 아틀라스를 만든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구글 자회사이고, 가사 로봇을 만든 윌로 개러지는 구글이 투자한 회사다. 구글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을 이미 시작한 것이다. 알파고 개발에 참여한 데이비드 실버 딥마인드 수석 개발자는 "한 가지 로봇을 모든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알파고를 탑재하면 각 가정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개인화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헬스케어 로봇에 알파고를 탑재하면 완벽한 개인 주치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BM도 힐튼호텔과 손잡고 인공지능과 결합한 로봇 서비스를 시작한다. 인공지능 '왓슨'이 내장된 로봇 '코니'가 호텔의 안내 직원처럼 고객의 말을 알아듣고 주변 볼거리나 식당, 호텔 시설 정보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청소 끝났으니 이제 저녁밥 할 시간 - 독일 브레멘대 인공지능연구소의‘PR2’로봇이 팬케이크를 요리하고 있다. 전 세계에 있는 PR2 로봇들은 인터넷 접속을 통해 각자 습득한 일을 공유할 수 있다. 청소 로봇이 즉각 요리 로봇도 될 수 있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공감(共感) 능력 등 감정과 정서의 영역은 어떨까. 이미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고, 그를 토대로 대화까지 하는 인공 기술이 개발 중이다. MS의 인공지능 '프로젝트 옥스퍼드'는 얼굴 표정의 특징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행복·슬픔·분노·불쾌 등의 감정을 분별해낸다. 페이스북은 인공지능에 동화를 학습시켜, 나중엔 사람 간 대화에서 이어질 부분의 내용을 채워넣을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사람이 하는 말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능이 있고, 정서적인 공감 능력이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 이것을 단순히 '로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로보 사피엔스'의 탄생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제 자유의지와 자의식만이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마지노선으로 남은 셈이다.

인공지능 로봇과의 공생 시대는 인류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인공지능에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부여하느냐는 문제다. 김진형 KAIST 명예교수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공존을 위해 로봇이 의도하지 않고도 인간에게 해를 가할 가능성부터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법적, 제도적 준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