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 30도, 25도, 20도, 17도, 13도’

1924년 처음 출시된 소주의 도수는 35도였다. 세대가 지날 수록 도수는 약해졌고, 순해지는 시기도 빨라졌다. 35도에서 30도까지 40여년이 걸렸지만, 20도로 낮아지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최근에는 10년 주기로 순해지고 있다.

최근 알코올 도수 13도의 과일맛 소주가 선풍적인 인기다. 저도 소주 열풍이다.

저도 소주 열풍의 중심에는 ‘무학’이 있다. 무학은 알코올 도수 20도의 소주가 막 나오기 시작할 무렵인 2006년, 16.9도의 ‘좋은데이’를 출시했다. 가장 낮은 알코올 도수 소주로 승부를 걸었고 대성공을 거뒀다.

최재호(56) 무학 회장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등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좋은데이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무학 창원 1공장을 방문한 다음날, 서울에서 최재호 무학 회장을 만났다.

첫 출시 당시 “소주 맛이 안난다”, “싱겁다”는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출시 9년 만인 지난해 7월, 18억병 판매를 돌파했다. 부산·경남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 부산을 대표하던 대선주조의 ‘시원(C1)소주’를 제치고 부산·경남 지역 대표 소주로 자리매김했다.

좋은데이는 ‘2016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소주 부문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로 뽑혔다. 2015년 몽드셀렉션 은상과 국가고객만족도(NCSI) 소주 부문 대상을 받았다.

좋은데이.

2016 주류대상 출품작 심사를 맡은 센소메트릭스 조완일 대표는 “좋은데이는 향에서 신선함이 느껴진다. 적당한 단맛, 적당한 알코올 자극이 만들어내는 향미의 조화가 입 안 느낌과 목넘김을 부드럽게 해준다. 뒷맛이 부드럽고 깔끔하다는 평가를 받아 국내 최고 소주로 선정됐다”고 했다.

술을 입 안에 넣자 알싸한 알코올 향이 났다. 코를 찡그리게 하는 자극적인 향이 아닌 톡 쏘는 시원한 느낌이었다.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도 타는 듯한 뜨거움 대신 적당한 온기가 느껴졌다.

무학 창원 1공장 앞.

지난 2월 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무학의 창원 1공장을 방문했다. 봉암공단 안에 있는 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다소 삭막하고 복잡했다. 회색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무학 소주 공장은 환하고 깨끗했다. 편한 느낌이었다.

좋은데이는 지리산 암반수와 주정을 혼합, 희석한 뒤 맥반석을 이용한 탈취, 필터를 사용한 여과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정제수와 각종 당류, 아미노산류를 첨가하고 다시 여과한 뒤 72시간 동안 숙성시킨다.

창원 1공장에서 만난 무학주류연구소 손성우 대리는 “십여차례에 가까운 여과 과정을 거치는 것이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비결”이라며 “HMI(Human Machine Interface) 시스템으로 정확한 양의 원료를 조합해 맛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1공장의 직원들은 생산직, 사무직 가릴 것 없이 모두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먼지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환한 조명, 하얀 벽, 물기 없는 깨끗한 바닥이 눈에 띄었다.

무학 창원 1공장 생산시설.

서울에서 최재호 무학 회장을 만났다. 최 회장의 말과 행동에선 무학의 공장과 제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공장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짓는다”고 했다.

“독일 맥주 공장을 방문했다가 고강도 타일로 시공한 것을 봤어요. 창원 1공장 뿐 아니라 무학이 운영하는 모든 공장의 벽과 바닥에 고강도 타일을 깔았습니다. 페인트로 벽을 칠하면 곰팡이가 피고, 에폭시 시공을 하면 구멍이 나거든요. 고강도 타일이 비싸지만 좋은 제품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창원1공장은 작년 9월 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 인증을 받았다. ‘클린존’을 운영, 에어 샤워기를 통과해야 출입할 수 있는 청정 공간에서 제품 주입이 이뤄진다.

이물질이 있거나 불량인 병을 카메라로 선별하고, 술이 주입되기 전 숙련된 작업자가 육안으로 한번 더 걸러낸다. 마지막으로 완제품 검사기까지 통과해야 제품이 출하된다.

무학 창원 1공장 내 주류연구실.

최 회장은 무학소주의 품질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전 세계 어떤 제품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객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품질 유지 비결인 듯 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좋은 원료, 좋은 설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비용도, 사람도 추가로 필요하고요. 육안 검사과정을 추가로 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HACCP 인증은 인증 받는 것 보다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내 가족이, 내 자식이 마실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품질에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죠.”

최 회장은 “작지만 야무진 기업,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수도권 입맛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도권 두자리수 점유율이 목표입니다. 중국 등에 진출하려면 현지화 전략도 세워야 합니다. 무학이 2020년쯤 활짝 필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 회장이 만드는 소주는 순한 맛이지만, 그의 눈빛은 강렬했고 큰 꿈을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