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시절 전교 1등, 수능 성적 상위 0.1% 이내, 과학고와 의대 졸업.’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꼽히는 의사들이 구글의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알파고’의 위력을 확인한 이후 충격에 휩싸였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겨룬 바둑 대결에서 3번 연속 무릎을 꿇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의사들은 AI가 진단과 치료 영역을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의사들은 의대 6년과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등 11년에 걸쳐 방대한 의학 지식을 학습한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를 위한 최적의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한다.

의학 분야에서 가장 앞선 인공지능은 IBM의 ‘왓슨’이다. 왓슨은 수백만가지의 의학 교과서와 논문, 치료 방법 등을 학습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암 치료기관 MD앤더슨이 2014년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왓슨의 암 진단 정확도는 82.6%였다. 왓슨은 다양한 헬스케어 관련 기관과 연계해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 연구소장은 “인공지능이 의학 분야에 접목되면 의사의 역할이 새롭게 재정립될 수 있다”며 “의학계는 최선의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인공지능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① 영상검사 판독

영상검사 판독 과정

AI는 의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영상검사를 판독할 수 있다. 병원에서 환자의 의심되는 질병을 진단하려면 엑스레이와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의 검사를 진행한다. 그 다음 영상의학과 의사가 환자의 영상을 판독하고 진단을 내린다. 이상이 생긴 부위가 너무 작거나 명확하지 않으면 오진(誤診)이 생기기도 한다. 오진율은 영상의학과 의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AI는 세계적인 병원들의 영상검사 결과를 학습해 오진율을 최소화한다. 국내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이 AI를 활용한 영상 진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재호 서울아산병원 의료정보부실장(응급의학과)은 “인공지능의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관련 연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의학 분야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장기간에 걸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② 암 환자 조직검사

조직검사 병리 진단 과정

AI는 암 환자의 조직검사도 대신할 수 있다. 암이 의심되는 환자는 CT, MRI를 촬영한 다음 최종적으로 조직검사를 받는다. 조직검사는 이상이 생긴 부위의 조직일부를 떼는 것을 말한다. 병리과 의사는 미세현미경으로 환자의 조직 슬라이드를 관찰하고 암 여부를 판단한다. 병리과 의사가 하루에 봐야하는 조직 슬라이드는 수백건에 이른다. 의사가 눈의 피로 등으로 순간적으로 잘못 보면 오진할 수 있다. 이 때 AI를 활용하면 빠르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AI를 이용한 병리 진단 연구를 하고 있다. 송상용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교수는 “의사가 하던 진단의 영역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라며 “의사들은 지식 기반의 단순 작업을 줄이고 환자를 위한 통합적인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③ 환자에게 맞는 치료제 선택

AI는 수십가지가 넘는 당뇨병 치료제 중 환자의 평소 상태에 맞는 약을 골라줄 수 있다.

환자가 당뇨병에 걸리면 평생 치료제를 먹어야 한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치료제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당뇨병 치료제마다 신장 기능 이상, 저혈당, 혈압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당뇨병학회는 환자의 상태 변화나 환자의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상황에 따라 약을 바꾸거나 서로 다른 약을 혼합해서 치료하도록 의사들에 지침을 내리고 있다. 내과 의사들은 꾸준히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앞으로는 이 과정의 일부를 인공지능에 맡길 수 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인공지능 연구가 더 진행되면 컴퓨터가 1차로 환자 상태를 진단하고 의사는 최종 진료만 할 수 있다"며 "앞으로는 의사 역할이 치료법 습득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 습관 개선 등 환자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④ 암 환자 방사선 치료

AI는 환자의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내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암 환자 치료 방법은 수술, 항암제 투여, 방사선 치료 등 3가지다. 방사선 치료는 암 부위에 치료용 방사선을 쪼여 암 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방사선종양학과 의사가 환자의 암세포에 맞게 정확한 방사선 치료 부위를 설계하는데, 이 과정을 AI가 대신할 수 있다.

최상규 단국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암 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며 “의사는 물론 환자들도 컴퓨터가 의사 대신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고 밝혔다.

⑤ 로봇 수술

수술로봇 ‘다빈치’

AI가 로봇과 결합하면 외과 수술도 할 수 있다. 수술로봇 ‘다빈치’의 경우 의사가 환자의 몸 속 영상을 보면서 로봇 팔을 작동해 수술한다. 의사는 로봇 팔 끝에 달린 수술도구로 수술 부위에 미세한 구멍을 뚫는다. 구멍 안에 카메라를 넣고 영상 정보에 따라 로봇팔로 수술한다. 대량의 수술 정보를 학습한 AI가 이 과정을 할 수 있다.

두진경 어비뇨기과 원장은 “대부분의 진단과 치료 과정을 인공지능에 맡길 수 있게 된다”라며 “대신 의사들은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 등의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