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아크만’이 가방 디자인에 사용한 사진. 한 외국인 아이가 눈을 가린 채 총을 겨누고 있다.

“패션 디자인, 어디가 한계일까?”

한 유명 패션 브랜드가 어린 아이가 총을 쏘는 이미지를 사용한 가방을 전국 대형 백화점에서 버젓이 팔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유니섹스(남녀 겸용) 의류 브랜드로 알려진 ‘카이아크만(kai-aak mann)’은 최근 가방 디자인에 눈을 가린 채 총을 겨누는 외국인 아이의 사진을 사용했다.

이 제품은 대형 백화점 매장에서 마네킹과 함께 통로 앞쪽에 전시돼 있다. 합피 소재로 만든 가방은 8만 9900원에 판매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8일 “최근 미국 등 세계적으로 아동 총기 사고가 사회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아이와 총기를 연결 짓는 제품 디자인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제품 판매를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카이아크만 매장에서 마네킹과 함께 전시된 가방. 총을 겨누는 아이 사진이 선명하게 보인다.

◆ '총 쏘는 아이' 사진이 가방 디자인으로…"고려 부족, 판매 중단하겠다"
가방에 프린트된 사진은 7세 정도로 보이는 외국인 아이가 눈을 가린 채 묵직해 보이는 총을 들고 있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모습이다.

쇼핑객 김모(여·23)씨는 “섬뜩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만약 눈을 가리지 않았다면 장난감 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짜 총이라도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미지 하단에는 ‘KAIAAKMANN IS RUMINATE OF MEMOR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이지만, ‘카이아크만은 기억의 집착이다’로 풀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RUMINATE라는 단어가 일상적 표현이 아니며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주로 정신 병리학·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반추(反芻, 어떤 일을 되풀이해 생각하다)’라는 의미로, 그 자체로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에 집착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사진과 문구를 통해 어린 시절 총기 사고를 경험한 사람이 우울 장애로 힘들어한다는 의미로 유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사회 이슈를 상업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연간 1000개 이상의 상품을 디자인하면서 세심한 고려가 부족했다. 오해의 소지마저 없애기 위해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 "시장에서 소비자가 판단할 것"
패션 업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연예인 사진 무단 사용(초상권)이나 디자인 복제(저작권)와 같은 문제가 불거졌을 뿐, 부적절한 사진이 디자인에 적용돼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패션 대기업 관계자는 “영세 업체가 아닌 이상, 상품 기획에서부터 내부 협의를 통해 디자인에 사용할 이미지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같은 엄격한 외부 심의 과정은 없지만, 제품 생산 과정에 많은 사람이 관여하기 때문에 논란이 될 사진이 디자인에 적용될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법적인 판단 이전에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 교수는 “무조건 법의 영역에서 판단하기보단 시장의 기능이 중요하다. 이 경우엔 회사에서 자율 규제가 없었던 것 같다. 일반 소비자가 이런 디자인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내 패션 브랜드 ‘카이 아크만’의 로고.

◆ 카이아크만 론칭한 (주)아비스타

국내 중견 패션회사 (주)아비스타의 연 매출 규모는 1000억원 대에 달한다. 광고업계 출신 김동근 대표가 지난 2000년 11월 설립했다. 업계에선 비교적 짧은 기간에 회사 입지를 굳힌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3년간 매출 추이를 보면, 2013년에 1414억원을 올린 데 이어 2014년(1279억원), 2015년(1170억원)에도 1000억원 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성장에는 카이아크만 브랜드가 한몫했다. 2007년 8월 론칭한 카이아크만 브랜드는 자사 국내 매출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 롯데·신라·현대백화점, 아울렛, 대형마트 등 88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주)아비스타는 지난 1월 중국 내 유통망 확보를 위해 상하이실크그룹과 제휴를 맺고, 올해 3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