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역사는 인간이 만든 컴퓨터로 인간의 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으로 요약된다. ‘인간의 지능이 컴퓨터로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접근이 바로 인공지능 연구의 역사인 것이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현존 최고의 바둑 인공지능 구글 알파고의 대결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가장 앞선 인공지능 연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연구는 끓어올랐다가 갑자기 식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컴퓨터로 특정 문제를 푸는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 1차 붐을 맞았다. 복잡한 현실의 문제는 과학자들의 의욕만큼 풀리지 않았고 인공지능 연구는 냉각기를 맞았다.

1980년대 '지식'을 컴퓨터에 학습시키는 접근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인공지능 2차 붐에 돌입했지만, 방대한 지식을 관리하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치며 다시 한번 좌절을 맞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검색 엔진과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딥러닝'이라는 새로운 기계학습법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3차 붐이 시작됐다.

◆ 인공지능의 태동...추론과 탐색의 시대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워크숍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인공지능으로 부르기로 했다.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인 마빈 민스키. 지난 24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타계했다.

1956년 열린 워크숍에 참석한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앨런 뉴웰, 허버트 사이먼이라는 4명의 과학자가 컴퓨터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인공지능을 거론했다. 이 중 뉴웰과 사이먼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로직 세오리스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논리연산을 자동으로 증명해주는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였던 이들은 컴퓨터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받았다. 앨런 뉴웰은 1992년, 허버트 사이먼은 2001년, 존 매카시는 2011년 세상을 떠났고 마빈 민스키는 지난 1월 말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당시 인공지능 연구의 핵심 개념은 ‘추론’과 ‘탐색’이었다. 추론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기호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탐색은 컴퓨터가 미로에서 길을 찾을 때 경우의 수를 모두 따져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해답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다룬 과학학술지 네이처 표지

이세돌 9단과 대결하는 알파고도 기본적으로 초창기 인공지능 연구의 화두였던 ‘탐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만 미로나 퍼즐의 탐색과는 달리 상대가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바둑은 상대의 수에 대응하는 수의 조합을 순식간에 탐색해 계산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태동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세상의 문제는 미로나 퍼즐, 장기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가’와 같은 현실의 복잡한 문제에 컴퓨터가 답을 줄 수는 없었다.

◆ ‘지식’의 시대...1980년대 인공지능 연구 다시 ‘기지개’

1970년대에 냉각됐던 인공지능 연구는 1980년대에 접어들며 다시 활기를 찾았다. 컴퓨터에 지식과 정보를 학습시키는 연구가 이뤄지며 전환점을 만들었다. 질병에 대한 해결책을 컴퓨터가 내놓기 위해 병에 관한 지식을 학습시키면 된다는 접근이었다.

지식을 활용한 인공지능 시스템은 1970년대 초에 미국 스탠퍼드대가 개발한 ‘마이신’을 시작으로 연구가 본격화했다. 마이신은 전염성 혈액 질환의 환자를 진단하고 항생 물질을 자동으로 처방하는 프로그램으로 감염병 전문 의사 대신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컴퓨터에 학습시키는 과정에서의 한계도 깨달았다. ‘마이신’의 경우 ‘배가 아프다’거나 ‘위장이 쓰린’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인간의 경험이 집약된 상식적인 지식을 컴퓨터가 직관적으로 파악하도록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맨틱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 개념은 인간이 의미를 기억할 때 구조를 나타내는 모델로, ‘개념’을 ‘노드(일종의 점)’로 표시하고 노드끼리 링크로 연결해 네트워크로 만드는 것이다.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

이를 발전시킨 연구로 컴퓨터가 데이터를 읽게 해서 자동으로 개념간의 관계성을 찾게 하는 연구도 이뤄졌다.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이런 접근을 현실화한 모델이다. 왓슨은 2011년 퀴즈 프로그램에서 인간 챔피언을 꺾으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왓슨은 질문의 의미를 이해해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포함되는 키워드와 관련되는 대답을 빠르게 끌어낸 것이다.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연구도 ‘기계번역’에서 다시 한번 한계에 직면했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인간 지식의 결정판인 번역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 딥러닝, 인공지능의 획기적 전환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상의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웹페이지의 무수한 문서에 포함된 지식을 컴퓨터가 학습하는 이른바 ‘기계학습’이 가능해졌다. 이는 기존의 추론이나 지식 표현과는 달리 데이터를 확률적, 통계적으로 분석해 활용하는 개념이다. 특히 기계학습은 인공지능 프로그램 자신이 스스로 학습하는 구조를 말한다.

인간은 ‘인식’이나 ‘판단’을 할 때 기본적으로 ‘Yes’와 ‘No’의 문제로 파악한다.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 어제 먹다 남은 피자를 먹어도 되는지 등 가치 판단을 ‘예, 아니오’로 하는 것이다. 이 ‘Yes’와 ‘No’의 문제 정답률을 높이기 위해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며 가치 있는 데이터로 ‘분류’하는 능력을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게 기계학습이다.

인간의 뇌 신경망 회로를 흉내내는 ‘신경망’ 연구가 기계학습 발전에 큰 힘을 실어줬다. 신경세포의 네트워크로 이뤄진 인간의 뇌는 시냅스를 통해 전기 자극을 전달한다. 전기 자극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인공 신경망 네트워크는 인간 뇌의 뉴런이 정보와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을 모사한다.

이세돌 9단(오른쪽)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화상연결을 통해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다만 기계는 데이터가 포함한 내용의 ‘특징’을 파악하는 능력에는 한계를 보였다. 기계학습에 입력되는 정량적인 지식에는 여러 가지 변수(특징)가 포함될 수 있는데 이 변수를 무엇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인공지능의 판단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학습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구인 ‘딥러닝(심층학습)’은 캐나다 토론토대학 제프리 힌튼 교수가 제시했다. 제프리 힌튼 교수은 2012년 열린 세계적인 이미지 인식 경진대회인 ‘ILSVRC’에서 ‘슈퍼비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타 연구기관을 압도했다. 일본 도쿄대, 영국 옥스퍼드대 등 경쟁자들은 이미지 인식 오류율이 26~27%였지만 슈퍼비전은 15~16%에 불과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제프리 힌튼 교수의 딥러닝은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딥러닝이 기계학습과 가장 다른 점은 컴퓨터가 스스로 ‘변수(특징)’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또 여러 겹으로 포개진 인간의 뇌를 모방해 신경망네트워크 구조로 딥러닝 알고리즘을 만들어 인공지능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

딥러닝의 결정체로 불리는 ‘알파고’가 9일부터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과 대결한다. 인공지능 연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승부에 관계없이 ‘세기의 대결’로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비록 알파고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기계에 졌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진 인공지능 연구가 이른바 ‘딥러닝’과 접목돼 큰 전환점을 마련한 것일 뿐, 인공지능은 여전히 인간의 지적 활동 일면을 흉내내는 ‘미완의 대기’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