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우리나라 수출은 14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역대 최장 기간 '마이너스 성장'이다. 내용을 뜯어보면 더 우울하다. 13대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전년 동기와 비교해 수출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것은 무선통신기기와 일반기계, 컴퓨터 등 단 3가지에 불과했다. 선박·자동차·철강·반도체 등의 수출액은 줄줄이 하락했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핵심 상품들이다. 지난달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5년 8개월 만에 1240원대까지 올랐지만, '환율 상승 = 수출증가'라는 공식마저 깨져버린 것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다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탓이다.

Getty Images Bank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우리 경제는 수출에 의지해 성장해 왔다. 하지만 수출이 무너지자, 우리 기업들은 당장 '성장 절벽'이라는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 우리나라 20대 그룹의 주력 계열사 가운데 13곳이 2014·2015년 연속으로 매출액 감소를 겪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한 제조 기술 위에 ICT(정보통신기술)를 덧붙여 기존 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바이오·친환경 등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삼성그룹은 최근 가장 공격적으로 산업을 재편하며 IT와 의학, 바이오를 융합한 새로운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자동차용 2차 전지와 바이오·제약 등 2010년 제시한 5가지 신수종 사업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의약품 제조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1공장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작년 12월엔 제3공장 기공식도 가졌다. 지난해 화학 부문을 매각한 삼성SDI는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1회 충전 시 600㎞까지 주행 가능한 전기차 배터리 셀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친환경·스마트 자동차 시장에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2018년까지 7300여 명의 연구개발(R&D) 인력을 채용하는 공격적 행보에 나섰다. 이를 통해 하이브리드와 전기, 수소 자동차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또 2020년까지 고도 자율주행을, 2030년에는 완전 자율주행의 상용화를 목표로 R&D에 나서고 있다.

최근 최태원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 SK그룹은 기존의 에너지와 정보통신 분야를 융합해 신에너지 사업을 추진한다. 이미 SK E&S는 바이오가스와 태양광 등을 활용해 홍천 친환경 에너지타운을 만들었고, SK텔레콤은 '스마트 그리드 솔루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축적한 기술로 해외에 '스마트 시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SK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 부문도 SK그룹의 대표적인 미래 사업 분야이다. SK케미칼은 2008년부터 인프라 구축과 연구 개발에 4000억원을 투자하면서 세포 배양 독감 백신을 비롯한 프리미엄 백신 개발을 진행 중이다. 또 경북 안동의 세포 배양 백신 공장에 이어 신규 혈액제 공장도 건설 중이다.

LG그룹은 ICT를 활용해 B2B(기업 간 거래)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2013년 7월 LG CNS의 자회사 'V-ENS'를 합병해 '자동차부품(VC)사업본부'를 신설하고,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해 인천에 자동차 부품 관련 R&D센터를 만들었다. LG이노텍은 소재·부품 분야 핵심 기술을 융합해 차량 전장 부품을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태양전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에너지 관련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사물인터넷(IoT) 등 융·복합 기술을 활용한 산업은 적용 범위가 넓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런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점해야 중국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