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는 지난해 [3040 파워 이코노미스트]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있는 30대, 40대 젊은 경제학자들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사회 이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2016년에는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30대, 40대 한국인 경제학자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미경제학회(KAEA) 전현직 임원진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사진=강가람 교수 제공

“결국엔 로비스트 합법화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정책결정자 입장에서도 정보가 필요하고, 이 정보 소스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로비스트 합법화의 장점이죠. 다만 돈이 오가지 않는 로비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돈을 주고 받는 로비가 문제가 되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때문에 로비 내역을 공개하는 것과 더불어 로비를 합법화 했을 때 선거자금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가 함께 논의돼야 합니다.”

한국 사회엔 로비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린다 김 사건, 최규선 게이트 등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불법 로비 사건들 덕에 로비스트 법제화는 번번히 좌초됐다. 대부분이 ‘로비’하면 ‘검은 돈’을 떠올린다.

지난달 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강가람 카네기멜론대 교수(33)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로비스트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교수는 “로비스트 제도를 합법화 할 경우, 로비 활동에 대한 내역이 모두 공개돼 투명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로비스트 제도를 합법화하는데는 ‘선거자금 규제’란 단서가 따른다. 로비와 선거자금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로비가 합법화 된 미국의 경우를 보면, 로비스트가 일반인에 비해 국회의원들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를 잘못 관리할 경우 로비의 대가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경제학과 복수전공(02학번)을 7학기만에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과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게 꿈이라며 영화 대사, 팝송 등을 닥치는 대로 외웠던 강 교수는 학위를 받은 직후인 2012년 카네기멜론대 조교수로 임용,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을 넘어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강 교수는 만 29세라는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교수 직함을 얻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전공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며 “미국에서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경우 바로 졸업해 조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정부 데이터를 이용해 미시경제적 계량연구를 수행한다. 그의 핵심 연구분야는 정부 정책과 규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부 정책과 규제가 민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에 따른 경제적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계량화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그동안 경제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가계와 기업이 정부 정책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제는 가계와 기업이 정부 정책 형성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강 교수와의 일문일답.

강가람 교수가 박사과정 졸업논문으로 쓴 ‘Policy Influence and Private Returns from Lobbying in the Energy Sector(에너지 부문 로비의 정책에 대한 영향과 사적 이익)’ 논문은 경제학계에서 Top5 안에 드는 ‘Review of Economic Studies’ 저널에 출간될 예정이다.

-로비, 정부 규제 등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제 지도교수인 안토니오 메를로(Antonio Merlo) 교수는 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한 구조적 추정(structural estimation) 방법론을 이용해 정치경제학 관련 주제를 계량연구하는 경제학자다. 교섭이론(Bargaining Theory)을 주로 연구하셨다. 지도교수께서 제 연구의 방향을 잡아주시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다.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지도교수를 통해 선거 자금, 정부에 대한 로비와 관련된 데이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데이터는 로비스트가 3개월마다 연방 정부에 대한 로비 내역과 그 비용을 적어 미국 상원에 제출하는 보고서다. 한국에서는 얻기 어려운 자료들이다. 이런 내용이 일반에 공개돼 연구자료로 쓸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당시만 해도 선거자금에 대한 계량적인 연구는 많았지만, 로비에 대한 계량적 연구는 많지 않았다. 연구할수록 기업과 정부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다.”

-로비활동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로비활동은 개인 또는 이익집단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원하는 정책이 수립되도록, 혹은 원치 않는 정책이 수립되지 않도록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정치인이나 정책 담당자를 만나 관련 정책에 대한 의견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로비 활동은 선거 자금 지원과 굳이 병행될 필요는 없다. 기업들의 로비스트 고용 비용이 선거자금 지원에 사용하는 금액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들의 로비 비용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비영리 정치자금 감시단체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지난 대선이 있었던 2012년 석유, 가스 산업에서 로비에 쓴 비용은 1억4000만달러(약 1721억원)이다. 같은 기간 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정치인에게 기부하거나 혹은 회사에서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입후보자들의 선거 출마를 지원하기 위해 각 후보 또는 정당별로 조직되는 후원회) 단체를 직접 설립해 선거자금을 지원한 비용은 7700만달러(약 946억원)으로, 로비 비용의 절반에 불과하다.”

-로비활동과 선거자금은 어떤 관계인가.

“로비스트들이 일반 유권자들에 비해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개인이나 단체가 후보자에게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합법화 돼 있어 로비스트들은 펀드레이징(fund-raising) 파티를 열어 국회의원에게 선거자금을 모아주기도 한다.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들은 주로 전직 국회의원이거나, 전현직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거나, 혹은 정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특정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로비스트들이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로비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정치적 신념이나 개인적 관계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선거자금 지원과 로비활동의 관계, 그리고 이것이 정책 수립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연구 주제인 것은 맞다.”

-선거자금 지원 합법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선거자금 지원 합법화는 장단점이 함께 있다. CRP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미국 총선에서 200달러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은 전체 유권자의 약 0.3%에 불과하다. 소수의 사람들만 선거자금을 기부한다는 점에서 투표권이 동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또한 미국 국회의원들이 선거자금을 모으느라 많은 행사에 참여하고, 기부할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느라 정작 정책활동에 쓸 시간은 줄어든다는 지적 또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거자금 지원이 불법일 경우 오히려 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선거자금을 지원하고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 월스트리트에서 받은 선거 자금 및 강연료가 공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를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있는데, 선거자금 지원의 합법화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선거자금의 체계적 관리, 투명성이 보장될 경우 이같은 정치적 검증이 가능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아직 로비 활동이 합법화 되지 않았다.

“청원권은 한국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다. 미국에서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에게 접근해 로비활동을 할 경우, 정부에 보고해 일반에 공개되고 관리되지만, 한국은 아직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 시스템이 한국에 도입된다면, 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이 시스템은 1995년에서야 법제화돼 로비 내역이 공개되고 있다. 다만 미국 또한 정치인의 실명까지는 공개되지 않아 완벽하게 투명한 것은 아니다.”

-로비 내역이 공개되면 어떤 점이 좋은가.

“공개를 한다고 해서 로비의 모든 단점들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비 내역이 공개될 경우, 대기업이 A의원에게 로비했다면 그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는 중소기업은 어느 의원에게 찾아가야 할 지 더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정보도 다 돈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한국에선 음성적 로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음성적이라기보단 우리가 잘 모른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로비가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에선 모든 로비를 불법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로비할 때 꼭 돈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 가스가 문제라고 가정해보자. 탄소세 등 다양한 해결책이 있지만, 정부는 어떤 해결책이 최선인지 모르니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럴 때 로비스트가 활약한다. 이는 합법적이다. 정치인 또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을 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것도 로비의 일종이다. 로비활동과 돈은 분리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10여년 전 로비스트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되지 않았다.

“결국엔 로비스트 합법화로 가야 한다고 본다. 정책결정자 입장에서도 정보가 필요하고, 이 정보 소스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로비스트 합법화의 장점이다. 돈이 오가지 않는 로비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청탁에 돈이 오가지 않을 수 있겠나. 돈을 주고 받는 로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로비 내역을 공개하는 것과 더불어 로비를 합법화 했을 때 선거자금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로비활동 합법화에 찬성하나.

“미국 헌법은 정부에 ‘청원권(Right To Petition Government)’을 보장하고 있다. 로비는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양한 이들의 의견이 정책 결정에 반영되는 하나의 방식으로 허용돼야 한다. 단, 중요한 것은 정책 결정자가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로비한 내용 중 실제 법안 제정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나.

“최근 한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미국 정부에 로비한 내역을 봤다. 2007년 한미 정상이 한미 FTA를 합의한 이후, 2011년 미국 국회에서 한미 FTA 이행법이 인준됐다. 이 4년간 한국 정부 및 정부 기관이 미국에서 로비하기 위해 쓴 돈이 8000만달러(약 989억원)가 넘는다. 다만 이 돈이 모두 FTA 로비에 쓰인 것은 아니고, 또 한국 정부는 2007년 훨씬 이전부터 미국 정부에 한미 FTA와 관련해 로비를 해왔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은 알기 어렵다.”

-실력 있는 로비스트를 고용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로비스트 고용에서도 불평등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정책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책결정자들이 미리 알 수는 없다. 때문에 영향을 받는 개인, 기업들이 정책결정자에게 로비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자본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비슷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끼리 쉽게 이익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정책의 순효과(net effect)가 긍정적이라면, 찬성하는 이들의 로비활동이 반대하는 이들의 로비활동보다 많을 것이고, 그 결과로 정책 입법에 성공할 것이다.

문제는 이 가정들이 현실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너지산업 분야 기업들의 로비 비용은 환경단체들의 로비 비용의 15배가 넘는다. 에너지 산업의 이윤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전 사회적 손실보다 훨씬 많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많다.”

-국회 내 과반수를 차지한 여당에 더 많은 로비가 몰릴 것 같다.

“논문을 쓰던 2009~2010년 동안은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 과반 이상을 차지했었다. 데이터를 보면 민주당 쪽에 로비가 더 많이 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공화당에 대한 로비 또한 아주 큰 차이는 없었다. 정치 성향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이 어떤 정책 분야를 맡고 있는지, 국회 내 어느 상임위원회 소속인지, 국회와 당 내의 영향력,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 등 또한 로비에 영향을 미친다.”

-로비 연구 다음으로 정부 조달에 대해 연구했다.

“두 분야는 상당히 밀접히 관련돼 있다. 기존 연구는 로비가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과 관련돼 있었는데, 로비는 공공정책 뿐만 아니라 정부 조달과도 연관돼 있다.

미국 정부는 매년 약 4600억달러(약 553조원)를 정부에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한다. 실제로 일반 기업 중 미국 정부에 가장 많이 로비하는 회사들을 살펴보면 보잉,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먼 등 정부에 물자를 납품하는 군수업체가 많다.”

-연구 결과 정부 조달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입찰자들은 소수이며, 소수가 참여하는 것이 정부 입장에선 효율적이라고 했다. 최대한 많은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닌가.

“제 연구도 같은 질문에서 시작했다. 왜 정부는 입찰 경쟁을 제한할까, 부패가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해보니 많은 입찰자를 받는 것이 정부의 소요 비용을 더욱 높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잘하는 기업들에게만 입찰 기회를 줄 경우, 입찰 경쟁을 부추겨 가격을 인하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찰 비용 자체를 줄일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조달 사업 입찰에서도 입찰 참여자가 적다. 국회는 입찰 참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려 한다.

“입찰 참여자가 적은 것은 단기적으론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효율적일 수 있다. 납품업체들은 납품을 못하면 망하게 된다. 여러 업체가 참여할 수 있으면 장기적으론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그 장기적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가 될 지는 저도 알 수가 없다. 한국은 데이터가 없어 연구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미국 상황에선 입찰 참여자가 적을수록 더 효율적이다.”

-정부 입찰시 계약서상 금액과 최종 결제 금액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입찰 전 예상 금액이 1000달러였다고 하면, 일이 끝난 뒤엔 1만달러로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쉬운 일인 줄 알았지만 일에 착수해 진행하고 보니 어렵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여러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땐 경매를 통해 최저가에 입찰하다보니 실제 비용은 더 많이 들어가고, 이 때문에 정부가 지불할 비용 또한 많아진다.

그러나 소수 업체들만 입찰에 참여할 경우, 정부와 이 업체들은 사전에 협상해 미리 계약에 예상 금액을 반영할 수 있다. 많은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약서상 금액과 실제 금액이 차이가 날 순 있지만, 두 경우의 평균치를 따져보면 소수 업체와 계약금을 협상했을 때가 정부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소수 업체들만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정부 입장에선 합리적인 것이다.”

-경제학 분야 중 응용미시계량(Applied Microeconometrics)을 선택한 이유는.

“사회 현상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데이터를 통해 이론을 세우고, 이를 테스트해 보고, 또 이론을 통해 우리가 궁금한 내용들을 계산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이런 계량 연구를 경제학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연현상과 관련된 데이터와 달리 경제학에서 쓰이는 데이터는 주로 가계나 기업, 혹은 정부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결과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2008년, 미국 상원에서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America’s Climate Security Act of 2007 or Lieberman-Warner Bill)이 논의됐다. 수많은 기업과 다양한 이익집단의 로비가 있었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이 법안에 반대했던 석탄회사가 있다고 가정해자. 이 회사의 로비는 효과적이었을까? 간단한 질문 같지만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그 석탄회사가 로비를 하지 않았을 때 그 법안이 과연 통과됐을 지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 더 복잡한 것은 이 석탄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석유회사나 환경단체들의 로비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계량연구의 매력은 이렇게 경제활동 주체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에 초점을 맞춰 사회현상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강가람 카네기멜론대 교수. 정부 데이터를 이용해 미시경제적 계량연구를 수행한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유학을 떠났다.

“제1 전공은 경영학이다. 경제학에 흥미를 느껴 경제학을 복수전공하고 한국교육재단에서 해외유학 장학생 시험에 합격해 바로 경제학과 대학원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막연히 영어로 강의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어 교과서, 연설, 팝송까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외웠던 기억이 난다.”

-유학생활 중 힘든 점은 없었나.

“유학생활은 굉장히 행복했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아예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는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말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흑인 버스 기사가 얘기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 미국에 와서 사과를 아침 식사로 먹었는데, 이 사과를 살 때 굉장히 뿌듯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경제학엔 왜 흥미를 느끼게 됐나.

“미시경제학과 게임이론 수업을 듣고 깊게 감명을 받았다. 사회 현상이 수학과 그래프로 딱 맞아 떨어지는 점이 재미있었다. 중학교 때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는데, 수학의 논리적인 부분이 좋았다. 경제학도 그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 것 같다.”

-굉장히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다.

“전공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경우 바로 졸업해 조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분야의 경우 미국에서도 바로 교수가 되진 않더라.”

-카네기멜론대에서 교편을 잡은 계기가 있나.

“졸업 이후 카네기멜론대에서 제안을 받아 조교수로 시작할 수 있었다. 카네기멜론대는 경제학과가 비즈니스 스쿨 안에 있어 경영학의 여러 분야와 교류할 수 있고, 연구 지원 또한 아끼지 않는다. 로봇, 머신러닝 등 컴퓨터 공학이 잘 발달돼 있는 것도 큰 강점이다.”

-젊은 교수가 겪는 애환이 있다면.

“젊은 동양인 여교수는 많이 없기 때문인지, 아무래도 학생들이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부분이 있다. 첫 수업때 한 학생이 저를 같이 수업 듣는 친구라 생각했는지, 저한테 교실을 같이 찾아보자고 한 적도 있다. 학생들이 저를 친근하게 여겨주는 것은 좋지만, 이보다 먼저 저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학생들도 더 많이 배우고, 학점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다. 그 존중과 신뢰를 쌓기 위해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대학으로 옮길 생각이 있나.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의 특성상 미국에서 연구하는 것이 수월하기는 하다. 지금은 좋은 논문을 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대학에 대해서는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남편이 외국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남편은 미국 사람이다. 저보다 한 학년 아래지만, 나이는 같다. 펜실베니아대 박사 과정 2학년 때 제가 계량경제학 박사 과정 1학년 수업 조교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남편이 저한테 관심을 보였고, 그렇게 만나 사귀게 됐다. 남편은 원래 아시아에 관심이 그렇게 많았지만, 저랑 사귀면서 아시아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됐다. 결혼은 2014년에 했다. 제가 먼저 졸업해 남편보다 먼저 직장을 구했는데, 남편은 이후 (같은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피츠버그 대학에서 직장을 구했다. 너무 운이 좋았다. 남편은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한다. 읽는 걸 특히 잘해서 카카오톡으로는 저희 가족들과도 잘 얘기한다.”

-같은 길을 가려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아직 제 커리어의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기엔 시기상조인 것 같다.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우선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혀 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수업, 세미나 등에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밀어붙이다 보면 또 다른 호기심도 생기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온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