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사상 최대 순이익을 냈던 손해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새해 들어 대형 손보사들이 자동차 보험료를 3% 안팎 올렸고, 중소형 손보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최대 8% 보험료를 인상했다. 특히 일반 국민 3200만명이 가입해 ‘국민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은 보험료가 신규계약 및 갱신시 최대 30% 가까이 인상된다.

가뜩이나 생활 물가가 크게 뛰어 생활이 팍팍해진 소비자들은 보험료 부담까지 무거워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회사원 최모(45)씨는 “정부가 보험료를 자율화한다고 해서 보험료 부담이 줄겠거니 생각했는데 오히려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인상하고 있으니 황당하다”면서 “실적도 사상 최대로 좋다는데 왜 보험료를 올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사들이 내세우는 가격 인상 명분은 ‘손해율’에 있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고객들에게 내준 보험금을 고객이 낸 보험료로 나눈 값을 말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의 경우 손해율이 130%를 넘어 보험사의 손실이 막대하다”고 설명했다. 손해율 130%는, 보험료로 100원을 받으면 보험금은 130원 정도 지출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비자금융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험료 자율화 방침이 실책(失策)이었다고 지적한다.

보험료 자율화란,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가 보험산업에 대한 규제를 보험회사 자율로 맡긴 조치를 말한다. 22년 만에 보험상품 사전 신고제를 사후 보고제로 바꾸고, 보험료 책정을 보험회사가 자율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실적이 개선되는 추세에 있는데 괜히 자율권을 부여해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보험가입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래픽 = 이진희 디자이너

◆ 보험료 줄인상…손보사 올해 순이익 20% 늘어날 듯

KB손해보험은 지난 1일 개인용 자동차 보험료를 3.5%, 택시 등 영업용 자동차 보험료를 3.2% 인상한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해상은 올 초 개인용 자동차는 2.8%, 업무용 자동차는 2.7%, 택시 등 영업용 자동차는 7.8% 인상했다.

동부화재는 공식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 초 대물배상 가입금액 확장 특약을 신설, 사실상 보험료를 인상한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실손 보험료는 거의 ‘폭탄’ 수준으로 올랐다. 지난달 초 국내 상위 5개 보험사는 올해 실손보험 신규계약분에 대한 보험료를 18~27% 인상했다.

보험사들은 “오랜 기간 가격 인상이 억제되어 왔고, 손해율이 너무 높아 정상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한다. KB손보 관계자는 “이번 자동차 보험료 인상은 6년만에 올리는 것”이라며 “손실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잇단 보험료 인상으로 올해 손보사들은 실적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안타증권은 상위 5개 대형 손보사의 올해 순이익이 전년대비 25.3%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올해 손해보험업종은 축제 분위기”라며 “오랜만에 기관 투자자 미팅에서 강력 매수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손보사들은 2015년 순이익이 2조6531억원으로 전년 대비 15.1%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약 25~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년 연속 사상 최대 규모다.

1월 실적만 봐도 삼성화재, 동부화재, 현대해상, KB손보, 메리츠화재 등 상위 5개사의 순이익은 20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0.6% 늘었다.

◆ “보험료 자율화하는 것 맞지 않다” 지적도

보험사들의 보험료 인상과 관련해 금융권 일각에서는 반발하는 조짐이 감지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동차보험료, 실손보험료는 손실이 많아 올릴 수 있다 쳐도 지금 이익이 많이 나는 분야는 보험료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카드업계 종사자는 “현재 금융당국의 정책이 보험사에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보험시장 특성상 보험료 자율화 방침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대출금리나 카드 수수료 이런 것은 소비자가 한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어 자율화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지만 보험은 보장 범위, 손해율 등을 일반인이 완전히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자율화하면 전문가인 보험사들에 소비자가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가격을 자율화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보고 추진하긴 하지만 보험시장은 완전히 자율화하기엔 애매한 영역이라는 내부의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 당장은 보험료를 자율화해서 전반적으로 오르는 추세에 있긴 하지만 금세 또 가격 인하 경쟁을 펼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당국이 매번 그때마다 개입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