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군산은 광복 이후 긴 침체의 길을 걸었다. 오랜 기간 발전하지 못한 ‘덕분에’ 군산은 전국에서 근대 건축물이 가장 많이 남은 도시가 됐다.

도시가 팽창하고 군산 신(新)항이 생기면서 옛 군산항과 주변의 구도심(군산 장미동, 월명동, 영화동, 신창동, 중앙로 1가 등)은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렇게 잊힌 옛 도심은 지난 2008년부터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다시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군산 중앙로 1가에 있는 ‘이성당’ 빵집 입구에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15일 오전에 찾은 군산 구도심 지역은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관광객들이 많았다. 국내 최초의 빵집으로 유명한 ‘이성당’에는 이른 시간부터 빵을 사려는 관광객들이 가게 입구에서 줄을 섰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과 일본식 주택인 히로쓰가옥,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초원사진관 등 구도심 주변 관광지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부터 데이트를 나온 연인들, 역사 탐방에 나선 학생들과 단체 관광객들도 보였다.

◆ 근대문화유산 활용한 도시재생사업…사람 발길 잦아진 구 도심

군산시 구도심 활성화 사업은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근대산업유산문화예술벨트화사업’에 군산시가 ‘1930 시간여행’을 주제로 신청한 것이 1등으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벨트화사업 전 군산 장미동 일대 모습.

이 사업은 옛 군산세관 건물과 나가사키18은행,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 근대 건축물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앞서 군산시가 추진 중이던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건립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시는 군산 장미동에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우선 완공(2011년)하고 일대를 벨트화사업지구로 선정해 2013년 6월 사업을 마쳤다. 벨트화사업지구 안에는 옛 조선은행 건물을 개조한 군산근대건축관, 나가사키 18은행을 개조한 군산근대미술관, 미즈상사 건물을 개조한 미즈카페, 장미갤러리, 부잔교(뜬다리부두), 진포해양테마공원 등이 있다.

벨트화사업 후 모습. 군산근대역사박물관(왼쪽 첫 번째 건물) 오른쪽에 미즈카페, 장미갤러리, 군산근대건축관, 군산근대미술관 등이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2013년 이후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따르면 2013년 22만4027명이던 한 해 관람객 수는 2014년 41만8396명으로 2013년에 비해 2배가량 늘었고 지난해에는 81만5337명으로 전년보다 40만명 가까이 늘었다.

시는 2차 사업으로 벨트화사업지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군산시 월명동 주변에 근대역사경관지역을 조성했다. 사업비 140억원이 들어간 이 사업은 근대역사 체험공간과 청소년 문화공간을 만들고 가로정비사업을 통해 주변 경관을 개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관람 후 모여 제기차기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왼쪽 사진)과 일본식 건축물인 ‘히로쓰 가옥’을 찾은 관광객들.

김중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장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2014년에 5대 공립박물관으로 선정됐고 지난해까지 총 122만명이 방문해 군산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며 “2차로 진행한 근대역사경관지역도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신규 창업도 늘고 기존 상가들의 매출액도 증가하는 등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집값 3년새 5배 뛰어

구도심을 이룬 군산 월명동, 영화동, 신창동, 장미동, 중앙로 1가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한 뒤로 주변 집값도 몇 년 새 크게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군산 월명동, 영화동, 신창동 일대는 도시재생사업으로 건물과 도로 등이 깔끔해졌다.

군산구도심공인 오성택 공인중개사는 “2012년에 비해 5배 정도 올라 3.3㎡당 200만원 정도였던 집값이 요즘은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며 “도시재생 사업 이후 거래도 많아졌고 매물 문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에는 3.3㎡당 2000만원이 넘었는데 도심이 군산 수송동으로 이동하면서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빠진 측면이 있다”면서 “지금은 이 지역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마 전주 한옥마을 수준인 3.3㎡당 2000만원 정도까지는 집값이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서도 집값 상승이 두드러진다.

2012년 군산 영화동에서는 총 7개의 단독주택이 거래됐다. 이 기간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건물은 대지면적 99.2㎡짜리로 1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가장 낮은 가격에 거래된 건물은 대지면적 59.5㎡로 2100만원에 거래됐다. 이 기간 거래된 3.3㎡ 당 평균 가격은 197만원 수준이다.

2015년에 군산 영화동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건물은 대지면적 228.1㎡짜리로 3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가장 낮은 가격에 거래된 건물도 9000만원이었다. 이 기간 거래된 3.3㎡ 당 평균 가격은 415만원으로 2012년에 비해 2배 이상 뛰었다.

집값이 오르면서 상가 임대료 상승폭도 가팔랐다. 중앙로 1가 인근 G공인 오성택 공인중개사는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층 전용면적 33~49.5㎡(10~15평) 상가의 경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30만원하던 임차료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50만원 선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 주변 상권과 매출 연계 아쉬워…임차료 상승에 일부 공실 늘기도

구도심 주변 상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관광객은 많이 늘었지만 매출에는 별 큰 영향이 없다. 관광객이 늘면서 게스트하우스나 음식점 등 일부 가게들은 매출이 늘었지만,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관광객 증가가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군산 월명동에서 A공방을 운영하는 한상실 씨는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면서 관광객은 많아졌는데 매출은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관광객들이 숙박이나 음식점 등 어쩔 수 없는 곳엔 돈을 쓰지만, 지갑을 흔쾌히 여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국밥집을 운영하는 최주하(가명) 씨도 “우리 같은 집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단골도 늘어나면서 매출이 늘어나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면서 “몇몇 가게는 방송을 타면서 손님이 더 많아 졌다고 하는데, 주변 상인 중에도 전보다 장사가 더 잘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상가 공실도 늘었다. 군산근대건축관에서 월명동으로 이어지는 대학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문 닫은 상가나 빈 가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G공인 관계자는 “도시재생 사업이 골목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대로변에 있는 상가들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 하지만, 목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임차료가 오르는 경우도 많아 올라 쫓겨난 상인들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중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장은 “관광객 수는 매년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아직 관광객들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한 편”이라며 “민간 사업자들과 협력해 관광 콘텐츠를 더 개발하고 관광 매출을 늘릴 방안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상가 공실이 늘어나는 현상은 도시재생 사업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도시재생 사업으로 구도심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것과 같은 긍정적인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