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글로벌 스마트폰 업계에서 중국의 힘을 상징하는 이름은 샤오미(小米·좁쌀)였다. 4~5년 전까지 애플의 '짝퉁'으로 통하던 이 업체는 1~2년 사이에 파격적인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세계 판매량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중국폰의 위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샤오미에 이어 비보·오포·르TV 등도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제2, 제3의 샤오미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약진하는 '제2의 샤오미'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16'.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응용프로세서) 시장 1위인 미국 퀄컴의 스티브 몰렌코프 최고경영자(CEO)가 르TV(LeTV)라는 중국 업체가 만든 스마트폰 '르맥스(LeMax) 프로'를 들고 기조연설 무대에 섰다. 몰렌코프 CEO는 "르맥스 프로는 퀄컴의 최신 AP인 '스냅드래건 820'을 탑재하고 초음파를 사용한 지문(指紋) 인식 등 다양한 신기술을 구현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스마트폰 AP의 최강자인 퀄컴이 자사 신제품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이름 없는 중국 업체 제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지난달 5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시회 ‘CES 2016’에서 퀄컴의 스티브 몰렌코프 최고경영자가 자사의 최신형 반도체 ‘스냅드래건 820’을 탑재한 중국 ‘르TV’의 스마트폰 ‘르맥스 프로’를 소개하고 있다.

르TV는 온라인 동영상 업체로 창업해 최근 하드웨어 제조로 영역을 넓힌 업체다. 작년에 처음 스마트폰을 내놨는데 하반기 중국 시장 점유율 1.8%를 기록했다. LG경제연구원 배은준 연구위원은 "샤오미가 스마트폰 시장에 데뷔한 2011년 하반기 점유율이 0.7%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좋은 출발"이라며 "르TV가 콘텐츠 업체라는 강점을 살려 스마트폰에도 동영상 추천 소프트웨어를 넣은 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오포(OPPO)'는 지난해 4분기에 처음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매출액 기준) 4위에 올랐다. 판매 대수도 약 5000만대로 샤오미(7700만대)를 바짝 따라왔다. 오포는 20만원 이하 저가폰 위주인 샤오미와 달리 50만~60만원 안팎의 중간 가격대 제품이 주력이다. 저가(低價)만을 내세우지 않고 제품을 점점 고급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5월 오포가 출시한 'R7 플러스'의 경우 6인치 대화면과 지문 인식 기능, 금속 소재를 사용하고도 가격은 60만원 정도다. 이 제품은 100만원에 육박하는 삼성전자·애플의 프리미엄 제품과 성능이 비슷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다는 평이다.

가격 대비 성능 높은 제품으로 승부

지난해 4분기 중국 시장 판매량 4위를 기록한 '비보(Vivo)'는 성능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이 회사는 다음 달 1일 세계 최초로 6GB(기가바이트) 대용량 램(RAM)을 내장한 스마트폰 'X 플레이(Play)5'를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최신작 '갤럭시S7'과 LG전자의 'G5'는 4GB 램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용량이 1.5배다. 램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를 빨리 읽어들여 처리하는 데 쓰이는 임시기억장치다. 램 용량이 커지면 여러 앱을 동시에 실행해도 스마트폰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은 한국 스마트폰 산업에는 적신호다. 2014년 1분기까지 삼성전자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달렸지만 지난해 4분기에는 처음으로 판매량 5위 밖으로 밀려 '기타 업체(others)'로 분류됐다. 현지 업체인 비보가 4위, 오포가 5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현재 중국에서 판매량 5위 안에 있는 외국 회사는 애플 하나다. 지난해 1~3분기 세계시장에서 스마트폰 매출 4위를 유지했던 LG전자는 작년 4분기에는 오포에 밀려 5위로 내려앉았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중국 제품을 '저가, 짝퉁'이라고 봤던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면서 "중국산 제품이 스마트폰뿐 아니라 IT(정보기술) 전 분야에서 시장을 잠식하는 속도가 점차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