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고장’ 남원. 전라북도 남원시는 지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다 섬진강 지류인 요천이 시내를 가로지른다. 남원이 풍류의 고장이 된 데에는 빼어난 산과 강이 한 몫 했을 것이다.

24일 오전, 요천을 따라 차를 타고 내려갔다. 춘향교와 광한루원을 지나 산자락을 5분쯤 올라가니 햇빛 잘 드는 곳에 농업회사법인 ‘참본’이 자리잡고 있었다. 참본 직원은 “바로 뒤가 지리산 옥녀봉”이라고 했다. 인적을 느낄 수 없었다. 고요했다.

황진이주

참본은 직원 10여명이 일하는 작은 회사다. 20여년동안 꾸준히 전통주를 만들어왔다. 구기자, 감초 등 지리산에 자생하는 약초 10가지로 빚은 ‘강쇠’, 소주를 사용하지 않은 100% 발효 복분자주 ‘주몽’에 이어 2006년 10월 오미자, 산수유를 주원료로 한 ‘황진이주’를 출시했다.

황진이주는 조선비즈가 주최한 ‘2016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우리술 부문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로 뽑혔다. 주류대상 출품작 품평을 총괄 진행한 센소메트릭스 조완일 대표는 “황진이주는 부드러운 맛, 발효취가 나지 않는 깔끔한 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황진이주가 받은 상은 여럿있다. 2007년에는 전통주품평회에서 대상과 인기상, 2012년과 2014년 대한민국우리술품평회에서 최우수상, 2014년과 2015년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받았다.

발효실의 모습. 고두밥을 효모와 함께 14~20일동안 발효시킨다.

투명한 붉은 색의 황진이주를 입 안에 넣자 신맛이 느껴졌다. 상큼한 향이 났다. 목구멍으로 넘길 때 쯤엔 구수한 곡물 맛이 났다. 술을 다 삼켰을 땐 입 안에 단 맛이 맴돌았다. 알코올 도수는 13%. 참본에서 술 제조를 총괄하는 심종석 소장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맛이지만, 소주와 1대 1로 섞으면 남자들 입맛에도 딱 맞다”고 말했다.

기자가 참본을 방문한 날 심 소장은 “오늘 고두밥 짓는 날”이라며 기자를 공장 안으로 안내했다. 술 만드는 곳 답게 시큼한 누룩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장 한켠에선 두 명의 직원이 솥에서 밥을 퍼내고 있었다. 심 소장이 밥알을 몇 알 집어들며 말했다.

“고들고들하죠. 일반 밥의 수분이 50%라면 이 밥은 36% 정도 됩니다. 발효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두밥을 만드는겁니다”

직원 두 명이 솥에서 갓 찐 고두밥을 통에 담아 내리고 있다

황진이주를 만드는데에는 최소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심 소장은 “고두밥을 효모와 함께 27~28도에서 발효시킨다. 오미자와 산수유는 따로 발효시킨다. 14일에서 20일정도 걸린다. 두 개의 발효액을 혼합해 온도 13도에서 6개월동안 숙성시켜 만든 것이 황진이주”라고 말했다.

황진이주를 개발한 사람이 심 소장은 아니다. 그는 “선배들이 다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 식품 연구소 등에서 맛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일을 해온지 35년 된 베테랑이다. 심 소장이 참본에 정착한 것은 2년여 전. 그는 “참본이 출시하는 15종류의 술 중 황진이주를 가장 깐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오미자와 산수유를 아주 꼼꼼하게 선별합니다. 나무에서 열매를 한꺼번에 따지 않고 한 알 한 알, 시들거나 멍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죠. 오미자 재배 농가가 회사 주주에요. 애사심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남은 오미자는 반건조 상태로 보관합니다.”

참본은 쌀 공정 과정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심 소장은 “영양성분이 풍족한 쌀은 오히려 발효과정에서 불순물을 생산할 수 있다. 전분이 많은 쌀로 술을 만들어야 좋은 맛을 낸다. 쌀을 백미 정도로 도정하면 5%정도의 영양분만 남는다. 황진이주는 백미에 가깝게 도정한 쌀을 고두밥 찌기 전 한번 더 도정한 것으로 빚는다”고 말했다.

완성된 황진이주를 병에 넣고 밀봉하는 과정.

좋은 물을 사용하는 것도 맛의 비결이다. 참본 뒷편에는 지하수를 직접 끌어올리는 지하관정이 있다. 그는 “물이 술 맛을 좌우한다. 상수도를 쓰는 대부분의 주류회사들과 달리 우리는 직접 지하수를 뽑아내 술 원료로 쓴다. 암반이 많은 곳이라 처음에 지하관정을 뚫을 때 물이 안나와 10번 가까이 시도해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심 소장을 따라 공장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외투를 벗으면 몸이 떨릴 정도로 공장 안이 서늘했다. 심 소장은 “주변 온도가 너무 높으면 산미가 강해져 술 맛이 변한다. 다 만들어 병에 밀봉한 술도 햇빛이 안 드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시 노암농공단지 안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참본’

“발효주는 주변 온도나 외부 요인에 매우 민감합니다. 발효와 부패의 경계에 있는 것이 발효주이기 때문이죠. 요즘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해 세균 번식 방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HACCP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참본은 중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심 소장은 “중국 몇 군데 업체가 황진이주 샘플 의뢰를 해왔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그러나 “작은 업체라 시장 조사가 어렵다. 우리 전통 술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인 입맛에 맞게 현지화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참본 주소는 전라북도 남원시 시묘길 122, 문의전화는 063-625-5050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