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올라가던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 거의 도달하자, 안내 방송에서 경쾌한 목소리로 '풋 유어 핸즈 업!(Put your hands up·안전바 잡지 말고 두 손 높이 드세요)'이라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시작된 거의 수직 급하강. 롤러코스터 여기저기서 '히~야' '오 마이 갓(Oh, My God)'이란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찔한 코스를 몇 번 더 돌고나니 머리와 이마에 땀이 흐르기까지 했다.'

이곳은 놀이공원이 아니다. 22~25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에서 체험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서비스다. 올해 MWC는 사실상 'VR 테마파크'였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회사는 물론이고 통신·반도체·자동차 회사까지 일제히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가상현실이란 컴퓨터 기술로 시각이나 청각·촉각 등을 자극해 사용자가 화면 상의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VR 기기 열풍을 이끄는 삼성·LG전자

시장조사 업체인 트랜드포스는 2020년에 VR 기기가 연간 3800만대가 팔리는 200억달러(약 24조6700억원) 시장이 될 것으로 봤다. 게다가 VR 기기를 활용한 게임·관광·의료 등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시장은 500억달러(61조6600억원)에 달해 기기보다 2배 이상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VR은 '기회의 땅'으로 들어가는 티켓인 셈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통신 기기·기술 전시회‘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는 다양한 가상현실(VR)을 체험할 수 있는‘VR 테마파크’와 같았다. KT 전시관에서는 한 여성 관람객이 스키점프 체험을 하고 있고(왼쪽), LG전자 전시관에서는 단체로 가상현실 롤러코스터를 탔다(오른쪽).

가상현실 열풍은 MWC의 메인 전시관인 '3번 홀'에 자리 잡은 한국 기업들이 주도했다. 삼성전자가 자사의 가상현실(VR) 기기 '기어 VR'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롤러코스터 체험관은 MWC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3~4분 정도의 VR 롤러코스터 체험을 위해 짧게는 30~40분, 길게는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삼성은 단지 눈으로만 VR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4D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는 진동 의자 28개를 설치했다. 3D(입체) 영상에 따라 의자가 기울어지고 흔들리는 것까지 체감할 수 있는 장치다. 기어 VR을 머리에 쓰고 영상을 보면 진짜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LG전자도 자사의 VR 기기 'LG 360 VR'을 알리는 롤러코스터 체험 공간을 만들었다. 진동 의자가 4개로, 삼성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360도로 롤러코스터가 회전할 때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마치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듯 노란 반팔 차림의 안내 도우미들에다 신나는 음악까지 흘러나왔다.

VR 콘텐츠 전달하는 초고속 통신망도

한국 통신사들도 이번 MWC를 통해 VR 콘텐츠 시연에 적극적으로 나서 관람객들을 끌어모았다. 앞으로 VR 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위해선 일반 동영상보다 용량이 수십배 큰 VR 콘텐츠를 끊김 없이 빠르게 전송하는 초고속 통신 기술이 꼭 필요하다. 통신사들은 현재의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200배 이상 빠른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VR 콘텐츠와 결합해 시연했다.

한 남성 관람객이 대만 업체 HTC가 출품한‘바이브’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고 있다.

SK텔레콤은 전시관에 노란색 잠수함처럼 생긴 VR 체험 시설을 설치했다. 선원 복장 차림을 한 도우미들의 안내로 잠수함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VR 기기를 통해 약 6분간 해저 탐험을 하게 된다. 잠수함이 이동하는 것 같은 느낌에다 눈앞에서 물고기 떼가 지나가고 고개를 숙이면 발아래에 푸른 산호초 군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세계 최초 5G 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KT는 이번 MWC에서 스키 점프를 VR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스키에 발을 올린 뒤 VR 기기를 쓰면 스키대에서 빠른 속도로 급하강하며 점프를 할 수 있다.

외국 기업들도 이번 전시회에 VR 기기와 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미국 반도체 회사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응용프로세서(AP) 신제품 '스냅드래건 820'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VR 콘텐츠를 시연했다. 동굴 안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쫓다가 거기에 숨어 있는 용을 찾아낸다는 내용이다. 대용량 VR 콘텐츠를 매끄럽게 재생할 정도로 AP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 포드는 앞으로 구현할 자율주행차(무인차)를 VR로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노키아는 360도에서 나오는 영상과 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VR 카메라 'OZO'를 공개했다.

VR 기기가 많이 팔리고 해당 콘텐츠를 보는 활동이 대중화되면 그만큼 데이터 저장 장치가 많이 필요하고 데이터 사용량도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