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밍크털·여우털로 만든 반려견옷에 동물 학대 논란
동물보호 단체 "패션이라는 명분으로 잔인한 학살 용인 안된다"
모피 반대 여론에 인조 모피인 '에코퍼' 각광 받아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모피 애견옷.

명품 애견샵에서 밍크털과 여우털 등 천연 모피를 소재로 한 반려견옷을 판매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애견옷은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의 복면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황재근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모피 애견옷’은 서울 강남구의 한 고급 백화점 1층에 위치한 애견샵에서 100만~250만원 선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최상위 명품 애견 용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3000만원을 호가하는 반려견 침대를 주문 제작할 수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구비하다 보니, 모피 소재의 제품도 판매하게 됐다”며 “실제로 판매로 이어진 제품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 애견샵에 황재근 디자이너가 제작한 제품은 총 10벌. 캐시미어로 짜인 니트에서부터 레이스가 들어간 원피스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서 천연 모피를 사용해 만든 제품은 총 4벌로, 밍크털과 여우털, 너구리털 등으로 만들어졌다. 해당 매장을 방문한 한 소비자는 “다양한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애견 용품을 판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애견인 입장에서 다른 동물을 잔인하게 죽여서 만든 모피를 반려견에게 입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이런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고 말했다.

천연 밍크털로 만든 애견옷

애견 산업은 매해 규모가 커지며, 세분화, 고급화되는 추세다. 최근 1인 가구 증가, 출산 기피, 고령화 등으로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과 family의 합성어)’이 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9000억 원이던 관련 산업 규모는 지난해 1조9000억원까지 증가했고, 2020년에는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5조81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다양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애견 용품을 판매할 수 있지만, 애견에게 모피를 입히는 것은 ‘동물 학대’에 가까운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혜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이사는 “모피는 모두 동물이 살아있는 채 가죽을 벗겨서 만든다. 잔인하게 생산되는 모피를 내 강아지에게 입히고 싶을까. 이렇게 잔인한 생각을 ‘패션’이라는 명분 하나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무고한 생명을 짓밟아도 되는 가치로운 일은 없다”고 비판했다.

모피를 얻기 위해 매년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죽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세계적으로 연간 5000만 마리에 가까운 동물이 모피 의류 제조과정에서 도살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여우털 코트 한 벌을 만드는 데 11~45마리가 희생되고, 토끼털 코트엔 30마리, 밍크코트엔 55~200마리가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한다. 수많은 동물이 좁은 우리 안에 감금돼 물과 먹이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다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거나 털 손상을 제한하기 위해 감전사 되고 있다. 최근 모피가 외면 받았던 데는 이런 비윤리적 생산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작용했다.

지난 성탄절 미사에 모피코트를 입은 엘리자베스 여왕(왼쪽)과 2시간 후 붉은 코트로 갈아입은 여왕

전 세계적으로 모피를 입는 사람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지난 성탄절 미사 때 모피 코트를 입고 참석했다가 비난받을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등장했다. 뒤늦게 옷을 갈아입었지만, 동물애호가 등의 비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진짜 모피 코트를 입은 여왕이라면 좋아하지 않겠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거나 “왕실 가족들을 좋아하지만, 매우 실망했다”는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모피 반대 움직임에 힘입어, 명품 브랜드에서부터 중가의 남성복과 여성복, 저가의 제조·직매형 의류(SPA)까지 인조 모피를 널리 활용하는 추세다. 살아있는 동물에서 나온 재료를 일절 쓰지 않기로 유명한 세계적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인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촉감과 결을 살린 페이크 퍼 코트를 선보였다. 국내에는 페이크 퍼 전문 브랜드를 표방한 ‘래비티’ ‘몰리올리’ 등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