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젊은이들은 매주 모여 공연을 열고, 신진 작가들은 직접 만든 공예품을 전시·판매했다. 상인들과 주민들은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아무도 찾지 않아 생명력을 잃어가던 도시는 이제 누구나 찾고 싶은 거리가 됐다. 그렇게 청주 상당구 중앙동은 죽은 도시에서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거듭났다.

지난달 말 찾은 청주 중앙동은 잘 정돈되고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야외 공연시설을 중심으로 뻗은 도로 양옆에는 상가가 들어서 있고, 소나무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리 한가운데 소나무가 군데군데 있다. 길 곳곳에는 이 지역에서 열리는 ‘소나무 길 프리마켓’과 ‘중앙동 사진공모전’, ‘이음축제’ 등을 홍보하는 플래카드와 선간판이 있었다.

중앙동도시재생추진협의회와 청주시는 2006년 이후 차 없는 거리를 두 차례에 걸쳐 조성했다. 그 결과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 거리.

◆ 청주 최고의 번화가에서 죽은 도시로

중앙동은 청주에서도 가장 번성한 동네였다. 1980년대 중후반대까지 그 명맥은 이어졌다. 청주 인구가 30만명이 채 안 될 때 중앙동 인구만 2만명이 넘었던 적도 있다. 1920년대 청주역 주변으로 상업시설과 인구가 몰렸고, 1960년에는 단일 영화관으로는 최대 규모인 중앙극장이 문을 열었다.

중앙동 주간선도로가 건설되면서 철도와 도로 교통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의 고속 성장과 함께 증권사와 은행 등 금융기관들도 모두 중앙동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앙동은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청주 외곽에서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신도시가 생겨나자, 중앙동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신도시로 이주했다. 그들을 따라 상인들도 하나둘 중앙동을 떠났다.

청주는 갈수록 발전했지만, 중앙동은 그 반대였다. 청주 인구가 60만명을 넘어섰을 때, 중앙동 인구는 60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상가 공실률은 50%를 넘어섰다. 청주 최대 나이트클럽이었던 ‘유토피아 나이트클럽’도 이때 문을 닫았다.

도시에 남은 건 이주할 여력이 없거나, 이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노년층뿐이었다. 당시 주민들과 상인들은 “더 떨어질 데도 없다. 바닥을 쳤다”고 느꼈다고 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차 없는 거리가 되기 이전(왼쪽) 중앙동 거리와 이후의 모습.

◆ 주민들이 바꾼 중앙동…문화예술 꽃 피우다

중앙동을 바꾼 건 주민들이었다. 무슨 일을 해도 더 손해 보는 건 없을 것으로 생각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주민협의체를 꾸렸다. ‘누가 더 많은 이익을 갖고 가는지’, ‘리모델링이나 개발 때 얼마나 분담금을 많이 내야 하는지’ 따위의 이해관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중앙동도시재생추진협의회는 충북대학교 도시공학 연구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냈다. 이들은 도로 양옆으로 차들이 주차하는 탓에 사람들이 안전하게 길을 지나다니기 어렵고, 이 영향으로 상권까지 쇠퇴한다고 파악했다. 중앙동 일대의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했다. 도시재생추진협의회는 ‘사람 중심의 거리’로 중앙동이 바뀌길 원했다.

협의회는 2005년 청주시 예산을 확보해 2006년부터 500m 정도의 ‘소나무 길’을 차 없는 거리로 바꾸는 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 240m의 거리가 먼저 조성됐고, 2009년에는 210m 구간이 더 만들어졌다. 청주시는 ‘청소년 문화 존(zone)’을 도입해 청소년을 위한 문화 공간을 만들었고, 과거 중앙극장이 있던 자리에 광장을 조성했다. 차 없는 거리 조성에만 69억원, 청소년 광장에 70억원 등 모두 139억원이 들었다.

옛 중앙극장 터에 자리 잡은 야외 광장. 이곳에는 청소년 주도로 각종 문화예술 공연이 열린다.

협의회는 중앙동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콘텐츠를 담았다. 200여명의 공예 작가가 참여하는 ‘소나무 길 프리마켓’과 청소년이 주도하는 ‘이음(I&UM) 축제’, 음악 공연인 ‘청춘버스킹 페스티벌’ 등의 행사가 매주 진행됐다. 사람들이 몰렸고 상권도 살아났다.

2011년만 해도 시간당 1190명이 지나다니던 길은 2013년 기준으로 4007명으로 늘었다. 현재는 이보다 2배 정도 늘었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나무 길 점포 공실률은 2005년 50%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공실이 없다.

도시가 살아나면서 임대료도 뛰었다. 협의회에 따르면 중앙동의 한 아울렛 임대료 수입은 재생사업 전 0원이었지만, 현재 월 기준으로 3000만원으로 올랐다. 또 다른 빌딩의 임대 수입료는 월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늘었다.

2005년 이후 부동산 거래액만 약 200억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점·건물 리모델링을 통한 민간자본이 약 150억원 투입됐고, 2010년 이후 신축면적은 1만8181㎡(5500평)에 달한다.

중앙동 소나무길에서 매주 열리는 중앙동 청춘 버스킹 페스티벌.


도시재생은 진행 중

주민들은 아직 중앙동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본다. 이들은 예술문화 행사를 정착시켜 사람을 더 많이 모으고, 도시의 정체성을 굳히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들이 내건 표어도 ‘맛과 멋,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중앙동’이다.

협의회는 2011년 국토교통부의 도심활력증진사업을 통해 중앙동을 더 좋은 지역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청주 옛 역사를 복원하고, 집창촌 일대를 정비하며, 일대에 200여대의 주차공간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협의회는 이곳에 문화예술허브센터를 짓고, 1920년대 주택을 복원해 주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를 만들 계획이다.

권순택 중앙동도시재생추진협의회 위원장은 “도시재생사업을 멈추는 순간 도시는 또다시 퇴보하게 될 것”이라며 “주민, 상인들과 함께 젊고 전문성 있는 창업가들이 몰리는 도시, 세입자가 건물주로 성장할 수 있는 도시로 중앙동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시와 중앙동도시재생추진협의회는 과거 청주역사가 있던 곳에 문화예술허브센터를 짓고, 1920년대 주택을 복원해 주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를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