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앙증맞은 자동차 3대가 나란히 LA 지하철 터널 안을 질주한다. 각 차량 뒤쪽 트렁크에는 막 훔친 3500만 달러(약 430억원) 상당의 금괴가 가득 실려 있다. 금괴를 훔친 도둑들이 3대의 차량으로 도주하고 있는 장면이다. 금세 금괴 주인의 추격이 시작되지만 도둑들은 작고 날렵한 차체를 활용해 어지간한 차라면 들어갈 엄두도 못 낼 만큼 좁은 지하 터널, 하수구 속을 이리저리 달리면서 일단 추격을 따돌린다.

하수구를 빠져나온 뒤 LA 도심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금괴 주인들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추격을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빌딩 숲 사이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면서 또다시 추격을 따돌린다. 그러나 금괴 주인들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엔 픽업트럭을 몰고 추격에 나선다. 도둑들은 자동차를 LA 기차역으로 몰고 가서 대기 중이던 화물 컨테이너 안으로 쏙 들어가면서 금괴 탈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이탈리안 잡(Italian Job)'에서 후반 30여분 동안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다. 여기 등장한 차량이 BMW 그룹의 프리미엄 소형차 '미니(MINI) 쿠퍼S'이다. 그야말로 주연급 활약을 펼친다. 미니 쿠퍼S는 미니 쿠퍼의 고성능 모델. 작고 앙증맞되 고성능이 아니면 금괴를 훔쳐 성공적으로 도주하기 어려운데, 여기에 딱 맞는 차량이 바로 미니 쿠퍼S였던 것이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이탈리안 잡’에서 BMW 미니는 금괴 탈취 작전에 투입돼 주연급 활약을 펼친다. 지하철 입구 계단을 따라 내달리는 BMW ‘미니 쿠퍼S’ 차량(위)은 이어 승강장까지 내려와 플랫폼을 따라 달리다 지하철 터널 안으로 점프해 들어간다(아래).

영화에 등장하는 미니 쿠퍼S(1세대 모델)는 차 길이(全長)가 3713㎜, 중량은 1235㎏에 불과하다. 한국GM의 경차 '스파크(3595㎜)'보다는 약간 크고, 기아차의 소형차 '프라이드(4045㎜)'보다는 작다. 그런데 이 작은 차체에 170마력을 뿜는 1.6L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다. 스파크가 75마력, 프라이드가 108마력 정도임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달리기 실력을 뽐내는 차다. 미니 쿠퍼S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7.7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218㎞ 정도다. 영화에서는 고속 주행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엔진을 튜닝해 200마력 이상의 성능을 과시한다. 헬리콥터를 따돌릴 만했다.

트렁크 용량도 160L 정도로 금괴를 실어 나르기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다. 차 폭이 스파크보다 약간 큰 1689㎜에 불과해 좁은 골목길 사이를 통과할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미니는 단순히 모양만 예쁜 소형차에서 벗어나, 도둑질에 쓸 만큼 '날렵하고 재빠른 차'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BMW 그룹은 당시 영화 촬영을 위해 총 32대의 미니 쿠퍼를 제공했다.

이 영화는 1969년 같은 이름으로 나왔던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두 영화는 스토리는 조금 다르지만 금괴 탈취라는 목표는 같다. 탈취 작전에 쓰이는 차량도 미니다.

다만 두 작품 간 34년의 시차 때문에 미니를 소유한 브랜드는 다르다. 1969년 작만 해도 당시 미니는 영국의 자동차 업체 'BMC(로버의 전신)' 소유였다. 리메이크작은 미니가 BMW그룹에 인수된 후였다.

1969년작 영화 ‘이탈리안 잡’에 등장한 오리지널 ‘미니’.

미니의 시초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에선 소형차 개발이 시급했다.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봉쇄하면서 중동의 원유가 유럽으로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56년 말 영국의 자동차 엔지니어 알렉 이시고니스는 '작은 차체, 넓은 실내, 뛰어난 경제성'이라는 주제로 소형차 설계를 시작해, 3년 만에 미니(당시 이름 오스틴 세븐)를 출시한다.

이 차는 개발 목표대로 경제적이면서 일상에서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소형차였다. 차 길이가 3050㎜에 불과한데, 성인 4명에 트렁크 공간까지 갖췄다. 당시로써는 첨단 기술인 전륜(前輪) 구동 방식을 채택했다. 좁은 길도 잘 달리면서 연비가 뛰어나 인기가 높았다. 당시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인 메리 콴트는 이 차에서 영감을 받아 '미니스커트'를 처음 만들었을 정도이다. 엔지니어 이시고니스는 미니를 개발한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196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경제적인 차를 추구했던 미니는 1960년대 영국의 카레이서였던 존 쿠퍼에 의해 레이싱카로서의 변혁을 맞이한다. 쿠퍼는 이시고니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차를 튜닝해 자동차 랠리 경주에 참가한다. 랠리카 미니는 1964년부터 1967년까지 모나코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크기가 미니의 두 배씩 되는 차량들을 제치고 연속 우승하면서 당대 최고의 랠리카로 이름을 날린다. 미니 쿠퍼라는 이름은 카레이서 존 쿠퍼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미니는 1971년 이후 BMC가 이름을 바꾼 '로버'에 의해 제작되다가 2001년 BMW 그룹으로 인수된다. 이때 이름이 미니에서 미니 쿠퍼로 바뀌었다. 현재 시판 중인 미니 쿠퍼S는 3세대까지 진화했다. 차 크기는 3850㎜까지 늘어났으며, 192마력을 뿜어내는 2.0L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최고속도 시속 233㎞를 낸다.

영화 이탈리안 잡은 2003년 개봉 당시 미국에서만 1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원작보다 뛰어난 리메이크작은 없다'는 관례를 깨고 평론가들로부터 원작을 뛰어넘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영화에는 미국의 액션 배우 제이슨 스타뎀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여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등장한다. 둘 다 미니 쿠퍼S를 운전하면서 빼어난 운전 솜씨를 뽐낸다. 두 배우 모두 자동차와 깊은 연을 맺었다. 제이슨 스타뎀은 자동차 액션 영화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주연 배우이고, 샤를리즈 테론은 영화 매드맥스의 여주인공 '퓨리오사'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