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장중(場中)에 1239.6원까지 올랐다. 2010년 6월 30일(장중 최고가 1243원) 이후 5년 8개월 만의 최고치다. 이날 환율 급등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전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감산에 반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중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을 걱정한 유럽중앙은행(ECB) 1월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됐다. 게다가 전날 정부가 북한의 테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지정학적 위험도 고조됐다.

이날은 외환당국도 더 이상의 환율 상승은 곤란하다고 판단했는지, 시장 개입에 나섰다. 이날 오전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과 변동성이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시장 내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필요한 조치를 다할 것"이라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곧이어 2억달러 규모의 시장개입성 매도 주문이 나옴에 따라, 환율은 10원 이상 급락하기도 했지만 다시 슬금슬금 올라 전날보다 7.0원 상승한 1234.4원에 거래를 마쳤다.

◇가파른 환율 상승, 외국인 투자금 이탈

올 들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한 달 보름여 만에 5.3%가량 급등했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빼가는 움직임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최근 외환·채권 딜러들 사이에선 외국인 '큰손'인 프랭클린템플턴 투신운용의 채권 투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설 명절 전후에 템플턴은 원화 국채를 2조원 이상 팔았고, 15억달러 이상을 환전해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들어 16일까지 외국인이 순매도한 원화 채권 3조3135억원 중 상당 부분을 템플턴이 매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송진호 KR선물 대표는 "향후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템플턴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며 "다른 외국인들도 따라서 원화 채권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소수의견이 나온 것도 원화 추가 절하 기대와 이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중동 오일머니로부터 시작된 자본 유출이 미국계 대형 채권펀드들로 옮아가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국제 공조 통해 환율 안정 꾀해야

채권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한국 채권 매도가 당분간 이어지고, 이에 따라 환율 상승 압력(원화 가치 하락)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한다. 외환당국이 뒤늦게 개입에 나섰지만,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하루 전만 해도 "하루 이틀 사이에 어떤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가지고 구조적이라고 보는 것은 어렵다. 아직 분명한 움직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었다.

전문가들은 '원화 가치 하락→외국인 투자금 탈출→원화 가치 추가 하락'의 악순환 고리에 빠지지 않으려면 외환 방어막을 든든히 하면서 적절한 시장 개입을 통해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 스와프(국가 간의 통화 교환)로 안전판을 확보하고, 만약에 있을 충격에 대비해 부도 가능 기업들에 대한 금융감독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지역통화기금 과 통화 스와프를 활용해 완충지대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