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는 지난해 [3040 파워 이코노미스트]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있는 30대, 40대 젊은 경제학자들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사회 이슈에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2016년에는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30대, 40대 한국인 경제학자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미경제학회(KAEA) 전현직 임원진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10년 전, 서울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하는 유방암 전문의에게 한 촌부(村婦)가 찾아왔다. 유방에서 자란 암세포가 어깨와 팔로 전이된 심각한 암 환자였다. 그가 말했다. “선생님, 저 혹시 암은 아니지요?” 초라한 행색의 암 환자를 마주한 의사는 불편함을 숨길 수 없었다. ‘왜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 아프고 고통 받는 것일까’란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가 만난, 그러니까 강남 세브란스를 찾는 환자는 두 부류였다. 서울 강남에서 온 환자와 지방에서 오는 환자다. 강남에서 온 환자 대부분은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지만, 지방에서 온 환자들은 암이 너무 많이 진행돼 손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병원을 나온 의사는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국내 의사로는 처음 경제학 박사가 된 김현철(38) 미국 코넬대 교수의 이야기다. 김 교수는 안양고 졸업 후 연세대 의과대학(96학번)을 나와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연세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13년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에이즈 퇴치와 모자보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현철 코넬대 교수.

개발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코넬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1년에 2~3개월은 아프리카 말라위에 머무르면서 에이즈 퇴치와 모자(母子)보건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프로젝트 말라위’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말라위에 머무르고 있는 김현철 교수를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인터뷰했다. 김현철 교수는 “의학과 보건학, 경제학, 정책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 경험이 자유롭게 학제 간 연구가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철 교수는 또 “아프리카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 빈곤 국가의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예방법을 교육하고 치료 사업을 전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해 참여도를 높여야한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며 앞으로 저개발국가에 대한 지원은 이런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 말라위에서 보건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의학과 경제학을 함께 공부한 것이 보건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떤 이점이 있나.

“경제학자, 정책학자로 살다 보니 ‘의학을 공부한 것이 경제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질문은 반대로 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의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 지를 묻는 것 같다. 두 질문 모두 적절하다. 지금 추진하는 사업은 학제 간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라위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모자보건사업에는 말라리아, 에이즈 예방과 치료, 영양 개선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는데, 여기에는 의사와 보건학자, 영양학자가 참여한다. 이 사업이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아동학자가 측정하고, 행동경제학자는 부모와 아이의 행동 변화를 지켜본다. 전체적인 사업은 정책학자가 설계했다. 한 개 프로젝트에 의학과 보건학, 영양학, 아동학, 경제학, 정책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의학과 보건학, 경제학, 정책학을 공부했다. 이런 학문적 배경은 내가 한 가지 학문의 방법론에 매몰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학제 간 연구가 필요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됐다.”

- 국내에서는 어떤 연구를 진행했나.

“장기요양보험과 국가조기암검진사업 등 국내 정책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장기요양보험을 연구한 논문은 방문진료를 담당하던 공중보건의사 시절 경험이 바탕이 됐고, 암검진사업은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시발점이 됐다. 특히 장기요양보험 연구는 박사논문 1장으로, 지난해 공공경제학(Public Economics) 분야의 최고 권위 학술지인 ‘공공경제학 저널(Journal of Public Economics)’에 게재됐다. 암검진사업 연구는 박사논문 2장으로 현재 논문 심사 중이다.”

- 두 개 연구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연구 결과 장기요양보험 사업은 대상자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비 절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서비스가 필요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부 지원을 받았고, 정부가 이 서비스를 지원하기 이전까지 민간이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사업의 효과가 컸던 것이다.

하지만 조기 암검진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은 암 검진률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망률 감소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유는 이렇다. 이 사업으로 암 조기 검진을 받는 사람 수는 늘었지만, 검진 대상자는 암에 걸릴 확률이 큰 집단이 아니었다. 지원 대상자 상당수가 국가의 지원 없이도 다른 경로를 통해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암 발생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검진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암 조기 검진을 위해 사용한 위 내시경은 이미 민간이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지원이 긴요하지 않았다.

이 연구를 통해 국가가 사업을 계획할 때는 철저한 검토와 민간 영역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가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민간이 제공하지 못하는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고 개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범사업은 필수적이다. 정부는 단기간에 전국적인 사업을 시행하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일부 지역을 골라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그 효과를 충분히 검증한 후에 전국 단위 사업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 그것이 국민이 낸 세금을 책임 있게 집행하는 자세다.”

- 말라위 프로젝트 중 인상적인 연구는 무엇인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검사는 예방과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게다가 무료다. 하지만 평생 에이즈 검사를 받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왜 에이즈 검사 비율이 저조한지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마을 주민 2000명을 네 개 집단으로 나눠 실험했다. A 집단에는 에이즈 검사의 중요성을 교육했고, B 집단에는 에이즈 검사를 위해 연구원이 직접 집을 방문하는 조건을 부여했다. C 집단에는 에이즈 검사를 받으면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쿠폰(작은 인센티브)을 지급했고, D 집단에는 아무런 조건도 주지 않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A 집단의 에이즈 검사 비율이 5%였고, D 집단은 0%였다. 하지만 B와 C집단에서는 60%가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게임과도 같은 이 연구가 의미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도록 하려면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을 직접 찾아 에이즈 검사를 실시하거나, 에이즈 검사에 대한 작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놀라운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연구 중 실험 방법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연구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정부 정책을 빅데이터 수준의 방대한 자료로 분석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실험 연구, 소위 무작위통제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다. 실험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연구로 증명한 인과성(Causality)이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최근 사하라사막 남쪽의 많은 국가들은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로 남자 포경수술을 확대하고 있다. 이 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은 불과 5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에이즈 감염률이 크게 낮다는 것을 이미 3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에이즈 예방을 위한 남자 포경수술을 왜 30년 전부터가 아닌 5년 전에야 비로소 시작됐을까.

그 이유는 30년 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은 인과성이 아닌 연관성(Correlation)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포경수술을 받은 남자가 에이즈에 적게 걸리는 것이 정말 포경수술 그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포경수술을 장려하는 이슬람 문화 때문인지, 혹은 포경수술을 애써 하는 사람들이 에이즈 감염에 조심하기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포경수술과 에이즈 감염 간 연관성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포경수술과 에이즈 감염과의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10년전 실험연구를 통해 남자 포경수술이 실제로 에이즈 감염을 줄인다는 인과성이 밝혀졌다.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에이즈계획(UNAIDS) 등이 포경수술을 공식적인 에이즈 예방으로 채택했고, 아프리카 국가 정부들이 이를 널리 전파하는데 본격적으로 일하고 있다. 검증된 정책에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실험 연구였던 것이다.”

- 노동 분야에서 노동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한 논문도 눈에 띈다.

“기업이 노동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는 무수히 많다. 내 연구는 그동안 거의 연구되지 않는 ‘인턴십’에 대한 것이다. 이 연구는 인턴십으로 채용된 사람이 일반 공채로 뽑힌 사람보다 인지능력 (예를 들어 IQ나 수능 점수 등)은 낮을 수 있지만, 더 나은 인성을 가지고 있어 업무 성과가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장에서 “성적보다는 인성이 중요하다”는, 어쩌면 상식에 가까운 내용을 실제 증명한 셈이다. 이런 상식적인 내용도 연구로 증명하려면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된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직접 말라위에서 비정부기구(NGO)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설문조사요원 수백명을 채용했고 이를 연구에 활용했다. 연구 결과, 인턴십을 통해 선발된 친구들은 공채를 통해 선발된 친구들보다 IQ와 같은 인지능력은 낮았지만 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인턴십을 통해 들어온 친구들이 설문조사 요원으로 일할 때 실수가 더 적고, 조사를 더 빨리 마쳤다.

이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내외 기업 인사 담당자들과 여러 차례 논의했다. 많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이미 인턴십을 통해 회사와 더 잘 맞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고, 이렇게 채용된 직원의 업무 성과가 더 높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물론 이 연구 결과가 모든 기업과 업종의 인사 시스템에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기업들이 직원을 채용할 때, 좋은 학교, 높은 학점처럼 수치화하기 쉬운 인지능력 외에, 시간을 투자해서 지원자의 성격과 인성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 노동경제학 부분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 기본적인 연구 분야는 인적 자본이다. 인적 자본의 핵심은 보건과 교육, 노동이다. NGO를 만들어서 연구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고용하게 된다. 말하자면 작은 회사의 사장이 된 것인데, 자연스럽게 어떻게 좋은 사람을 뽑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 고민이 자연스럽게 연구로 이어진다.”

김현철 교수와 함께 말라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폽엘리케쉬 교수. 그는 김현철 교수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당시 지도교수 였다.

-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지도 교수는 어떤 분인지.

“박사 과정에서는 보건경제학자로 분류할 수 있는 더글라스 알몬드(Douglas Almond) 교수와 개발경제학자에 가까운 키키 크리스찬 폽엘리케쉬(Kiki Cristian Pop-Eleches)교수와 함께 연구했다. 모두 인적자본에 대한 실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나와 같은 분야다. 두 분의 지도교수는 나보다 3~5살 많은 젊은 교수로, 지금도 연구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다.

특히 폽엘리케쉬 교수와는 말라위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깝게 지내고 있다. 폽엘리케쉬 교수에게는 학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도 많이 얻었다. 소위 잘나가는 경제학자들은 태도가 거만하거나 일에 너무 몰두해 가정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매우 훌륭한 경제학자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아빠, 아들, 남편이기도 하다.

그는 또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개발경제학자다. 개발도상국을 연구하는 학자나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비행기 일등석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폽엘리케쉬 교수는 늘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36~48시간이 걸리는 비행 시간 내내 좁은 이코노미석에 키 195cm의 거구를 구겨넣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는 그에게 일과 가정, 사회 세 분야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학자의 삶을 배웠다.”

-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는 누가 있나. 존경하는 학자가 누구인지.

“나와 같이 미시 실증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 지도교수들 모두 나와 유사한 형태의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미시경제학의 실증연구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괴짜 경제학’을 저술한 시카고대학의 스티브 레빗(Steve Levitt) 경제학과 교수일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실험을 경제학에 도입한 학자는 MIT대학 경제학과의 아브히짓 배너지(Abhijit Banerjee) 교수와 에스더 듀플로(Esther Duflo) 교수다.

특정 경제학자를 구체적인 롤모델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의사이자 문화인류학자로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존경한다. 그는 현실 사회에 당면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행동가다.”

- 앞으로 연구 계획은.

“나는 정부 정책을 평가하고, 실험을 통해 필요한 정책을 고안한다. 대한민국 정책과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모인 저개발국가를 연구해왔고, 이를 지속할 계획이다. 또 보건복지와 고용노동, 교육 등 우리나라의 인적자본 정책과 함께 남북 통일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국토와 제도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통일을 이루는 날을 보고 싶다.

또 우리 연구팀이 말라위에서 지난 5년간 엄마와 신생아 6000명, 초등학교 학생 2만명, 고등학교 학생 9000명을 추적 조사하고 있는데, 앞으로 20년 이상 이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다. 이들의 출생과 사망, 결혼, 이주 등 인구학적인 문제와 경제활동을 조사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찾는 연구다.”

-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미시 실증연구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 스티브 레빗의 ‘괴짜경제학’. 그리고 실험 방법론을 경제학에 도입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개발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브히짓 배너지, 에스더 듀플로의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