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공업의 중심지 구미가 흔들리고 있다. 2015년 구미산업단지 수출액은 273억 달러로 1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40%나 감소했다. 2000년 이후 지켜온 전국 기초자치단체 수출 1위 자리도 2010년부터 충남 아산시에 내줬다.

삼성전자가 50만원 이하 중저가 스마트폰 생산 기지를 아예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구미 공단은 비상이다. 올해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선 약 1억 7000만대, 구미 공장에선 고작 2000만대의 휴대전화를 생산한다. 경기도 파주(LG디스플레이)와 평택(LG전자)으로도 구미 지역 생산 물량과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원래 허허벌판이었던 구미는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조치(지방공업개발장려지구 지정)에 힘입어 단시간 내 국내 최대 공업 도시로 우뚝 섰다. 1~4단지 총면적이 2262만8000㎡에 이르고 근로자수가 10만명에 육박한다.

1982년 전길남 카이스트 교수팀이 세계에서 2번째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곳도 구미 소재 전자기술연구소였다. 1995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품질경영을 부르짖으며 조악한 휴대전화와 무선전화기 15만대(당시 시가 500억원어치)를 구미 공장에서 불살라버렸다. 오늘날 구미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보기술산업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구미시는 일감을 잃은 중소 기업에는 사업 다각화와 업종 전환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한다. 또 지난해에는 1300억원 규모의 의료기기 국책 사업을 유치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움에 빠진 기업한테 업종을 변경해보라고 권하고 중앙 정부를 졸라 예산을 따는 정도로 구미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안이한 발상이 아닐까.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획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구조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때 과수원 농장이었던 실리콘밸리가 첨단 기술의 메카로 자리잡은 것에서 구미 공단의 위기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여러 노하우 중에서도 구미시는 기술자 이민 정책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가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생산 기지를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것을 두고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동남아 등 해외 우수 기술 인력을 구미 공단이 흡수할 방법을 궁리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실리콘밸리인덱스(Silicon Valley Index)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실리콘밸리의 이민자 비중은 36.3%이다. 또 미국 벤처캐피털협회(NVCA)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2년 미국 벤처캐피털 자금을 지원받은 경영자 600명 중 33%가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 태어났다. 해외 출신의 창업자는 인도,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이스라엘, 독일 순으로 많았다.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때부터 그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미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 전문직 취업(H1-B) 비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대인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나 세계 최고 부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기술 이민자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여러차례 주장해왔다.

구미시는 틈만나면 구미공단이 IT기반이기 때문에 융합형 산업에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듣기엔 그럴 듯 하지만, 꿈같은 이야기다. 융합형 산업을 일구려면 인재가 구미 공단에 몰려와야 하는 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심현철 카이스트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국내 연구개발 인력은 대전, 더 정확히 말하면 대덕 단지가 있는 갑천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으려 한다”면서 “우리나라 연구개발인력의 남방 한계선이 대전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를 돌아다니면 인도, 중국, 이스라엘, 베트남 등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만난다. 구미시도 세계 각국에서 온 기술자들이 활보하는 그런 도시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구미시는 기술 이민자 장려 지구로 지정해 달라고 중앙 정부와 협상을 벌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