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승용차를 가진 50대 직장인 남성 A씨는 지난해 설계사를 통해 가입했던 B보험사 자동차보험을 3월 초에 갱신하려다가 보험료가 작년(115만원)보다 6만원 정도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고도 안 냈는데 왜 올리느냐고 항의하자 자동차보험 손해율(거둔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높아져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좀 더 저렴한 보험을 수소문하는 A씨에게 한 후배는 '온라인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을 권했다. A씨는 인터넷 검색 끝에 B보험사의 온라인 보험료가 설계사를 통하는 보험보다 20만원 넘게 싸고, 다른 보험사에선 38만원이나 싸다는 걸 알게 됐고, 온라인 보험으로 갈아타기로 결심했다.

올 들어 A씨처럼 자동차보험을 오프라인 상품에서 온라인 상품으로 갈아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새해 들어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잇따라 온라인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상품을 선보이며 판매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결과 온·오프라인 자동차보험 간에 보험료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다이렉트 보험'이란 설계사나 콜센터를 일절 통하지 않고, 인터넷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온라인으로 보험 가입이 완료되는 보험을 뜻한다.

◇보험사들, 앞다퉈 온라인 상품 출시

지난해까지는 업계 1위인 삼성화재만 온라인 다이렉트 보험을 팔았는데, 올해 들어 롯데손보·현대해상·KB손보 등에서도 온라인 다이렉트 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보험 관련 규제 완화가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지나친 경쟁을 방지한다는 규제 때문에 과거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을 팔 경우 설계사 채널 외엔 텔레마케팅(전화 판매)이나 온라인 다이렉트 채널 중 하나만 가동할 수 있었다.

삼성화재를 제외한 나머지 손보사들은 이미 구축돼 있던 텔레마케팅 조직을 활용하기로 했고, 온라인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시장은 텔레마케팅을 포기한 삼성화재가 독차지했다. 그런데 금융 당국이 '보험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지난해 발표하며 손보사가 텔레마케팅·온라인 채널을 둘 다 활용해 자동차보험을 팔 수 있도록 규제를 풀자 상황이 급변했다. 롯데손보·현대해상·KB손보 등이 올해 초 일제히 온라인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을 출시하며 온라인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온·오프라인 자동차보험료 격차 점점 커져

보험사 간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온라인 보험의 보험료는 대폭 싸졌다. 반면 오프라인 보험의 보험료는 작년보다 비싸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현재 온라인 다이렉트 보험을 팔고 있는 4개 보험사(롯데손보·삼성화재·현대해상·KB손보)의 지난해와 올해 온·오프라인 자동차보험료(2015년 온라인 보험은 삼성화재밖에 없었기 때문에 제외)를 분석한 결과 올해 온라인 보험료(2월 5일 기준)는 지난해 오프라인 보험료 대비 10% 이상 인하됐지만, 오프라인 보험료는 약 5% 비싸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가 조사한 차종은 운전자 수가 비교적 많은 아반떼·쏘나타·그랜저 등 국산차 3종과 아우디 A4, 벤츠 E클래스 등 수입 중형차 2종이다.

조사 결과 아반떼·쏘나타·그랜저의 온라인 다이렉트 자동차보험료(2월 5일 기준)는 각각 평균 52만7000원, 73만6000원, 93만3000원으로 지난해 보험료(오프라인 보험 기준, 각각 60만2000원·83만9000원·108만원)에 비해 12~14% 쌌다.

반면 3개 차종의 올해 오프라인 자동차보험료는 63만5000원·88만6000원·114만9000원으로 지난해보다 5~6% 인상됐다. 지난해 설계사를 통해 약 84만원을 내고 자동차보험에 들었던 쏘나타 운전자의 경우 올해 비슷한 오프라인 보험에 들 경우 5만원 가까이 더 내야 하지만, 온라인으로 갈아타면 10만원 넘게 아낄 수 있다는 뜻이다. 온·오프라인 보험료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은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 보험 가입자만 '봉' 되나

보험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은 보상 내역 등이 어느 정도 표준화돼 있기 때문에 보험사는 주로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며 "빠르게 늘어나는 온라인 보험 시장을 잡으려는 온라인 '후발 주자'들은 오프라인 보험료를 인상하더라도 온라인 가격을 대폭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화재의 온라인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매출은 지난해 약 1조2000억원(전체 자동차보험 시장의 약 8%)으로 관련 사업을 시작한 2009년(573억원, 점유율 0.5%)에 비해 약 20배 성장했다.

온라인 다이렉트 보험 확산은 인터넷 쇼핑에 익숙하지 못한 고령자 등이 부당하게 비싼 보험료를 치르는 부작용을 촉발할 수도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이기욱 사무처장은 "온라인 자동차보험 확대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점에선 일단 긍정적이나 한편으론 디지털에 취약한 고령자 등에게 비용이 전이되거나 가입자가 보상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