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에서 수입 맥주 매출이 시장 점유율 3위 맥주기업인 롯데주류의 맥주 매출(약 950억원)의 5배에 달하는 5000억원대로 파악됐다. 2위인 하이트진로의 맥주 매출(약 8300억원)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수입 맥주가 80여년간 이어져 온 독과점적 한국 맥주 시장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본지가 각사 내부 자료와 관세청 자료를 14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수입 맥주 매출은 재작년보다 39% 늘어 19%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70%, 점유율은 7%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전년 대비 43% 늘어난 17만919t에 달해 양(量)과 증가율 모두 사상 최대였다.

소주·위스키·와인 등 국내 주류시장이 최근 3년 연속 정체한 가운데 수입 맥주 덕분에 맥주 시장만 연 3~6%씩 성장하고 있다.

◇한국 맥주 기업들 신제품 개발 부진

수입 맥주의 약진은 국내 맥주 기업의 제품 다양성이 부족한 게 큰 요인으로 꼽힌다. 1933년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전신(前身)에 해당하는 회사가 생긴 후 2000년대까지 한국 맥주 시장은 두 회사가 지배했다.

주세법상 맥주를 제조하려면 10만리터(L) 이상의 저장시설을 갖춰야 하는 등 규제가 까다로워 새 맥주 회사가 등장하기 힘들었다. 2014년 이 규제가 5만L로 완화돼 그해 4월 롯데가 시장에 뛰어들었다. 80년 만에 맥주시장 양강(兩强) 체제가 3강(强) 구도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3강 구도도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다. 해외여행 대중화로 해외 맥주를 맛본 소비자의 요구 수준이 높아졌고 2011년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계기로 유럽 맥주가 본격 수입됐다.

김홍석 홈플러스 맥주 구매담당자는 “폭음 문화가 사라진 데다 수입 맥주 가격이 크게 싸져 수입 맥주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정용 시장은 수입 맥주가 장악했다. 지난해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수입 맥주 매출은 전체 맥주의 37%, 38%를 각각 차지했다. 최근엔 한 캔(500mL)에 3000~4000원인 수입맥주는 ‘4캔에 만원, 5캔에 만원’에 팔린다. 한 캔에 2000원 안팎인 국산맥주와 가격 차이가 사라진 것이다.

◇맥주 수입 업체만 120여개

최근에는 수입 맥주끼리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최소 120여개 맥주 수입회사가 400~500종의 수입맥주 종류를 국내에 들여와 파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업체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킨 라거 맥주만 주로 팔았으나 수입 업체들은 상온에서 발효하는 에일, 맥아를 태워 발효시킨 흑맥주, 밀로 만든 밀맥주를 들여왔다. 위스키나 초콜릿·딸기향이 나는 맥주도 최근 수입된다.

국내 업체도 수입에 나서고 있다. 오비맥주는 최대주주인 세계 1위 맥주회사 AB인베브의 해외 브랜드 수입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얼빈(중국)·보딩턴(영국) 등 9개를 수입하기 시작해 현재 20개 수입 브랜드를 팔고 있다.

오비맥주는 아예 해외 맥주 사업을 자회사로 떼냈다. 하이트진로는 일본 기린 맥주, 싱하(태국), 크로넨버그1664(프랑스) 등을 들여오고 있다.

현재 수입맥주 시장은 롯데아사히와 하이네켄코리아가 주도한다. 각기 매출이 770억원, 694억원(2014년 기준)으로 시장 1, 2위다. 이어 호가든과 버드와이저가 3~4위다. 주류업계는 올해 수입맥주 시장이 지난해보다 24% 정도 늘어난 6200억원으로 팽창해 맥주 시장 점유율이 22%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맥주 수입업체 유니베브의 김성현 대표는 “소비자는 ‘새롭고 맛있는’ 다양한 맥주를 찾고 있는데 국내 업체가 걸맞은 신제품을 내놓지 못한다면 수입 맥주의 시장 잠식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