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체 세정그룹은 지난해 사내에 '중국어 학습반'을 신설했다. 중화권 공략을 그룹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임직원들에게 현지 진출을 준비시키기 위해서다. 인천 송도에 부지를 매입한 패션그룹형지는 '형지글로벌패션복합센터'가 완공되는 2018년 본사를 그곳으로 옮겨 첨단 디자인과 소재를 연구할 계획이다. 형지 최병오 회장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송도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석박사 인력과 디자이너들을 집결시켜 중국 사업을 확대하는 사령부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중견·중소 패션업체들이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급속한 위축과 패션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자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에서 활로를 찾겠다는 시도다. 중국은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패션 시장은 여전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지 소비자들에게 '한국 패션'에 대한 신뢰도와 이미지도 좋다. 지난해 12월 발효된 한·중 FTA(자유무역협정)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 패션업체들은 현지 업체와 제휴해 기술과 디자인은 한국, 유통은 중국이 맡는 식으로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중국으로 몰려가는 패션업체들

중국에 여성 의류 'BNX' 매장 100여개를 운영 중인 아비스타는 지난달 중국 상하이실크론그룹과 함께 상하이의 대형 편집 매장 '후어스'에 캐주얼 의류 브랜드 '카이아크만' 1호점을 론칭하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 교복 '스마트 학생복'을 운영하는 스마트에프앤디도 지난달 중국 패션회사 보스덩그룹과 합자회사를 설립해 올 하반기부터 교복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세정그룹은 지난달 중국 1위 패션업체 메터스 본위와 업무 협약을 맺고 비즈니스 캐주얼 '크리스 크리스티'의 라이선스(디자인·기술 사용권)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

국내 패션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상하이에 있는 코오롱스포츠 매장(왼쪽)과 아비스타의 BNX 매장.

이들 중소·중견 패션업체들의 중국행(行)에는 선발 기업들의 성공 사례가 큰 자극이 됐다. 코오롱스포츠는 지난해 중국 고소득자와 중산층의 야외 활동이 늘어 방수성과 보온성을 강화한 재킷 판매가 늘면서 지난해 현지 매출이 전년 대비 130% 급증했다. 아비스타도 지난해 중국 매출이 10% 정도 증가한 350억원에 달했다. 인동에프엔의 '쉬즈미스'는 지난해 60개 유통망을 확보해 15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제로투세븐의 유아 의류 '알로앤루'는 지난 6년간 중국에서 평균 34%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신발 백화점 슈마커는 2011년 상하이에 진출한 뒤 지난해 흑자 전환했고, 세정의 보석 브랜드 '디디에두보'는 홍콩 하비니콜스백화점에서 한 달에 1억5000만원의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중국 패션 시장은 세계 각국 패션업체들이 모두 주목하는 성장 시장이다. 현지 초·중·고교생 수는 2억2000만여명으로 교복 시장 규모만 연 330억위안(약 6조581억원)에 이른다. 가방 등 잡화 시장 규모도 7조4000억원으로 한국의 2.8배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의류 시장은 전년보다 12% 성장한 795억달러(약 95조6496억원) 규모였다. 향후 5년간도 매년 평균 9.5%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에서 한국 유아용품 쇼핑몰을 운영하는 테바글로벌 박용만 대표는 "중국에는 매년 160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데 이는 서울 인구의 1.6배 수준"이라며 "이제 중국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중국 진출은 선택 아닌 필수"

한·중 FTA 발효는 중국 시장 문턱을 크게 낮추었다. 의류의 경우 기존 14~25% 수준이던 관세가 10년에 걸쳐 점차 철폐된다.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 수출에는 청신호다. 특히 한류 스타 등의 영향으로 중국에선 한국 패션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신뢰도 높다. 실제로 세정의 보석 브랜드 디디에두보는 배우 전지현씨가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착용한 점을 마케팅에 활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다고 해서 전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SK증권 김기영 수석연구원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양화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디자인을 강화하고 해안 도시 위주에서 개발이 덜 된 내륙 도시로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