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재건하고자 시작한 한국 건축 1세대
건축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의 애제자로 모더니즘 건축 배워
힐튼 호텔, 종로 SK 사옥 등 설계
세월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는 건물이 가장 아름답다

‘한국 건축계의 살아있는 전설’, ‘한국 건축의 교과서’. 모두 김종성(82) 건축가를 일컫는 별명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한국 현대건축 1세대로 세계 근대건축 4대 거장 중 한 명인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를 스승으로 삼은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다. 한국건축가협회는 한국 모더니즘 건축학을 이끌었다는 공로로 2014년에 김종성 건축가를 ‘제1회 한국건축가협회 골드메달(Korean Institute of Architects Gold Medal)’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종성 건축가는 “건축이란 공간으로 구현된 한 시대의 의지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도심을 오가다 보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종로 SK사옥, 서울시립역사박물관, 서울 힐튼호텔 등이 김종성씨의 건축물이다. 이 건물들은 화려하진 않아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란 이런 것’ 임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절제되어 있다. 특히 SK사옥은 형태는 단순하지만, 비례와 디테일이 엄격하고 내부 공간도 융통성 있게 설계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SK본사 사옥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서울건축사무소에서 김종성 건축가를 만났다.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흐트러지 않고 단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카키색 니트에 검은 재킷, 갈색 뿔테 안경, 잘 빗어 넘긴 머리가 다소 엄격해 보였지만, 건축에 대해 얘기할 때는 표정이 180도로 달라졌다. 해맑은 미소와 함께 두 눈은 소년 같은 호기심으로 빛났다.

김종성 건축가는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에서 건축학 학사·석사 수료했으며,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일리노이공과대학 건축학 조교수, 일리노이공과대학 건축학 계획·디자인(Planning & Design)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건축종합건축사 사무소 명예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달 현대자동차그룹은 한전부지에 들어설 신축의 설계책임자로 김종성을 선임했다.

-현대차 그룹의 설계 책임을 맡게 된 소감이 어떤가요?

“지금 가장 집중하는 업무입니다. 멋진 건물을 만들어야겠지요(웃음). 현대자동차그룹은 15개월 전에 현상 설계를 두 번 시행해서 건물을 설계할 조직 두 군데를 선발했습니다. 하나는 105층 사옥을 설계할 스키드모어오윙스앤드메릴(SOM)라는 회사고, 나머지는 자동차 전시관, 공연장 작은 사무실동, 호텔, 작은 규모의 컨벤션을 설계하는 NBBJ라는 회사입니다. 제가 할 일은 이 두 회사가 일관된 ‘디자인 언어’로 건물을 짓도록 마스터 플랜을 짜는 것입니다. 두 회사가 따로 움직이지 않게 방향을 잡아줘야 겠지요. 다음 주부터 뉴욕 출장에 나서는데, 각 회사의 담당자와 앞으로 컨셉을 의논해나갈 것입니다.”

-구상 중인 컨셉이 있으신가요?

“국제적인 굴지의 기업, 현대자동차 위상에 걸맞은 이미지를 만들 것입니다. 이번 건물은 건축이자 회사의 CI(corporate identity)입니다. 그만큼 현대차라는 기업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가 서울시민, 더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기여할 수 있는 공공적인 시설물이 되도록 해야겠지요.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제 개인적인 목표는 한국 건축 문화에 일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 전쟁 후 폐허가 된 서울을 재건하기 위해 건축학 전공하기로 마음 굳혀

김종성이 열다섯 살이 되던 1950년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서울에 돌아오니 도심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한옥은 모조리 불타 없어졌고,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무허가 판자촌에 모여들었다. 청년 김종성은 폐허가 된 서울을 보며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한 지 2년 만에 그는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으로 유학해, 모더니즘 건축 거장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애제자가 됐다. 졸업 후에도 김종성씨는 미스의 사무실에서 11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 김종성이 모교인 일리노이 공대에서 건축학 교수로 일하던 도중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남산 자락에 힐튼호텔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1978년 서울로 귀국하게 된다.

김종성 건축가는 스승인 미스 반데어로에의 영향을 받아 모더니즘 건축을 추구한다.

-어떻게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제가 대학교 54학번입니다(웃음). 1950년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환도했는데, 1년 뒤면 대학진학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였지요. 제2외국어로 인문·사회계열은 불어를, 이공계는 독일어를 해야 했는데, 피난에서 돌아와 혼란스러운 상황에 중요한 선택을 두고 고민이 많았지요. 당시 서울에는 인구가 100만명 정도 있었고, 대충 50%의 한옥과 도심이 파괴됐었어요. 그땐 어린 나이였기에, ‘건축’이라는 게 뭔지는 몰랐지만, 서울에 번듯한 건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게 내가 공부해야 할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도심을 복원하는데 토목을 공부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건물은 예술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의 머리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울공대 건축학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

-서울대 재학 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한국에서는 건축을 공부하기 녹록지 않았습니다. 건축과 도서실에 가면 3개월 지난 외국 건축 잡지 하나를 어렵게 구해 동기들끼리 나눠 읽는 형편이었습니다. 입학과 동시에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 우리 정부의 학제가 이공계면 2년 학부 수료를 마쳐야지, 유학이 허용됐습니다. 인문계의 경우 4년 학사를 취득해야 했었어요. 그래서 공과대학 2년을 마치고 반드시 미국에 가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미스 반데어로에가 교수로 있는 일리노이 공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스의 1929년작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

-미스 반데어로에의 어떤 점에 매료된 건가요?

“대학 시절 헌책방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포켓북에 ‘현대 건축의 소개’라는 제목이 달린 페이지를 펼쳤는데, 미스의 건축물이 몇개가 나와있었습니다. 미스는 르 코르뷔지에, F.L.라이트와 더불어 20세기 건축계를 대표하는 3대 거장인데, 나머지 두 명과 다르게 유독 미스의 작품이 한국의 목조 건물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치 건물이 하나의 목조 가구 같았지요. 대부분 서양 근대 건축가는 조각가가 석고를 이용해 빗어낸 듯한 건물을 짓는데, 미스의 건물에는 한옥에서 볼 수 있는 기둥과 보, 서까래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닮은 미스만의 건축 언어에 반했고, 꼭 미스가 가르치는 일리노이 공대를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은 힐튼 호텔…건축가 김종성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한국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건축가 김종성은 43세에 서울 힐튼호텔을, 48세에 육군사관학교 도서관을, 그리고 50세에 부산 파라다이스 비치호텔을 설계했다. 서울 올림픽공원 내 역도경기장(현 우리금융 아트홀), 경희궁 터에 자리한 서울역사박물관, 서린동 SK빌딩,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그의 설계작 하나하나에 대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 평가한다.

남산에 위치한 서울 힐튼호텔

-서울에 많은 건축물을 지었는데, 어떤 건물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남산에 있는 힐튼호텔입니다. 미국 대학교수직을 접고 1978년 한국에 돌아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물이지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수소문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발탁됐습니다. 가장 처음 고국에서 지은 건물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많이 갑니다. 최근에도 힐튼호텔을 방문했는데, 경사진 대지를 활용한 1층의 구조는 지금 봐도 아름답더군요. 남산 힐튼호텔은 다른 호텔과 다르게 대지의 높은 쪽에서 호텔에 들어서게 됩니다. 로비에서 아래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트리움(atrium·건물 내부 중앙의 안마당 같은 공간)은 아파트 6층 높이의 공간을 트이게 했기 때문에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 봐도 뿌듯한 작품이지요.”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남산 힐튼호텔은 세계 힐튼호텔 중 가장 으뜸이며 김종성 건축가는 한국 건축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서울 힐튼호텔의 로비 전경

“그리고 경주에 지은 우양미술관 (구 선재미술관)이 기억에 남습니다. 공을 많이 들였고, 제가 추구하는 건축의 이상이 많이 녹아들어가 있는 건축입니다. 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종로에 있는 SK본사 사옥입니다. 이 건축은 오피스 빌딩으로서의 기능적 효율이 가장 높습니다. SK본사 사옥을 짓기 전까지 20~30년 동안 20개 정도의 오피스 빌딩을 건축했는데, 그동안 겪은 모든 시행착오를 통해 최고의 방법을 융합시킨 것입니다. 오피스 빌딩 등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지요.”

-후배 건축가의 건물 중 눈에 띄는 작품이 있나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이성관 건축가가 지은 탄허 대종사 기념 박물관과 최욱 건축가의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입니다. 그리고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이지만, 여의도에 위치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건물은 우리나라 건축문화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 환경이 많이 어렵습니다. 후배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전반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건축계가 많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어렵게 공부를 하고, 해외에 나가서 경험을 쌓고 온 젊은 후배들이 날개를 펼 환경이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언제 경제 상황이 호전될지 알 수 없으나, 일단 설계 활동을 시작한 젊은 후배들은 자기 모교 혹은 다른 학교에 가서 후배에게 건축에 대해 알리고 가르치는 게 좋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성 건축가는 “건축의 본질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배워야 합니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건축과 관련된 정보를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데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자칫 현혹될 수 있습니다. 특히 외국 건축 잡지를 보다 보면, 화려하게 포장한 조형 언어가 멋있어 보이죠. 하지만 건축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건물은 기본적으로 비바람을 막아주고, 오래 서 있는 기본적이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건축물을 포장하는 언어적 표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는 건물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6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을 답사해서 본다든지, 건축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건축계의 트렌드는 뭐가 될까요?

“지난 10년 간 지속됐던 건축계의 화두가 더 강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바로 친환경 건축입니다.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건축,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건축, 빛·물·바람 등 자연을 건물 내부로 들여오는 건축이지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 친화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