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 연구실은 새벽부터 여러 대의 컴퓨터와 모니터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오전 7시 30분이 되자 컴퓨터에는 복잡한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릭(Lick)' 천문대의 지름 3m 망원경이 보내오는 신호였다. 우 교수는 "한국에 앉아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릭 천문대 망원경을 원격으로 관측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측은 저녁 8시쯤 끝났다. 우 교수는 16일 다시 원격 관측을 시작할 계획이다.

밤하늘의 별은 망원경으로 직접 들여다보고 관측해야 한다는 천문학의 기본 상식이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라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와 밤낮이 다른 곳의 천체망원경을 원격 조종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종학 교수 연구팀이 원격 관측에 사용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릭 천문대의 망원경.

우 교수는 태양보다 수십~수백 배 무거운 거대 블랙홀의 질량을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블랙홀은 주변의 빛과 물질을 끌어당긴다. 천체망원경으로 빛의 세기가 변하는 것을 꾸준하게 측정하면 블랙홀의 질량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3년간 이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관측을 위해 매번 비행기를 타고 망원경이 있는 캘리포니아를 찾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우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처음으로 원격 관측을 도입했다. 릭 천문대 망원경에는 카메라와 분광기 등 다양한 관측기기가 달려 있다. 이를 인터넷으로 연결, 서울대 연구실에서 조종하고 분석한다. 우 교수는 "망원경의 모터 등과 같은 기계 부분은 물론 특수한 종류의 조명을 켜는 일까지 정밀하게 실시간으로 제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원격 관측은 전 세계 천문학계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여준다. 해외 천문대에 연구원을 보내려면 1인당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원격 관측은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 또 '밤에 하늘을 본다'는 고정관념도 달라졌다. 시차로 인해 미국이 밤일 때 한국은 낮이다. 힘들게 밤샘 관측을 할 필요가 없다. 한국 연구원들은 미국 밤하늘에 뜬 별을 낮에 원격으로 관측할 수 있다.

고산병 같은 위험에 시달릴 걱정도 없다. 대부분의 대형 천체망원경은 높은 산에 있다. 하와이 해발 4200m에 있는 '켁(Keck)' 망원경을 이용하는 연구자들은 산소 부족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국 UCLA나 UC버클리 등 여러 대학들은 켁 망원경을 이용하는 원격관측실을 만들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우 교수는 "'우주를 보는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 역시 지상에서 원격으로 제어하고 관측할 만큼 기술이 발달해 있다"면서 "최근에는 아예 천문대에 사람이 없이 100% 원격으로만 작동하는 망원경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