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의 미국 진출을 눈앞에 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는 ‘램시마’의 판매 허가에 찬성표를 몰아주며 FDA에 판매 승인을 사실상 권고했다. FDA가 오는 4월 램시마 판매를 최종 승인하면 국산 바이오시밀러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처음으로 진출하게 된다.

◆ 1년 6개월만에 진행된 FDA 허가 절차 “판매 허가 눈앞"

서정진(가운데) 셀트리온 회장이 인천 송도에 있는 셀트리온 연구실에서 연구원들과 개발 중인 바이오시밀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부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FDA 자문위원회는 9일(현지시각) 램시마 허가에 대한 투표를 한 결과, 2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반대표는 3명에 불과했다. FDA 자문위원회가 램시마 판매 허가를 권고한 셈이다. FDA 자문위원회는 FDA가 심사하는 의약품의 품질, 안전성, 경제성 등에 대해 종합 의견을 제공하는 전문가 자문기구다.

램시마 허가를 찬성한 자문위원들은 “램시마는 오리지널약인 존슨앤드존슨(얀센)의 ‘레미케이드’와 류머티즘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건선, 건선성관절염 등에서 유사한 효과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FDA는 자문위원회 투표 결과를 토대로 4월 9일까지 램시마의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에 찬성표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램시마는 사실상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FDA는 지난 5일 홈페이지에 “램시마 임상시험 결과를 검토한 결과 오리지널약 대비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라는 공식 의견을 게시하기도 했다.

셀트리온(068270)관계자는 “2014년 8월 일찌감치 FDA에 허가를 신청했지만 1년 6개월이 지난 올해 2월에서야 자문위원회가 열렸다”라며 “미국은 오리지널약을 보유한 자국 기업들을 보호하고 있어, 램시마 허가 절차가 더디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 ”미국 정부, 의료비 절감 고민”… 램시마 처방 급증 기대

램시마의 국내외 허가 일지. 램시마는 2012년 7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이후 2013년 9월 유럽의약품청의 허가를 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 예정일은 4월이다. 미국 내 램시마 판매사는 화이자다.

램시마는 존슨앤드존슨의 면역질환 치료제인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셀트리온은 램시마의 미국 판매 허가를 받으면 레미케이드 시장의 30%이상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미국 내 레미케이드 매출액은 44억5300만달러(약5조3000억원)였다. 램시마의 판매 가격은 오리지널약보다 15% 정도 저렴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오리지널약의 30%가 램시마로 교체된다면 셀트리온의 미국 시장 매출액은 11억3600만달러(1조4000억원)에 달하게 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민간 의료보험사가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의 종류를 결정한다. 가격이 저렴한 복제약이 FDA 허가를 받으면 대부분 보험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의사에게 복제약 처방을 주문한다. 미국 내에서 복제약 처방 비중은 88%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오바마케어(미국 환자보호 및 의료비 부담 적정 보험법)가 통과된 이후 FDA가 바이오시밀러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도 셀트리온에는 기회다. FDA는 2012년 바이오시밀러 허가 지침 초안을 만든데 이어 지난해 3월 첫번째 바이오시밀러인 노바티스 산도스의 ‘작시오’를 허가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의료비 절감 정책을 세우고 있고 새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도 의료비 절감과 관련한 내용이 많다”라며 “램시마가 미국에서 문제없이 허가를 받게 되면 처방률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존슨앤드존슨, 바이오시밀러 효과 이의 제기

램시마가 2013년 9월 유럽에서 판매 허가를 받은 이후 오리지널약 판매사인 존슨앤드존슨은 이미 타격을 입었다. 시장분석기관 파마슈티컬 왓치에 따르면 램시마의 유럽 시장 처방률은 오리지널약의 10~20%에 이른다.

지난해 레미케이드의 해외 시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18.9% 줄어든 13억2600만달러(1조60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전체 레미케이드 매출액도 65억6100만달러(7조9000억원)로 전년대비 4.5% 감소했다. 램시마가 FDA 허가를 받으면 레미케이드의 미국 매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존슨앤드존슨은 미국 환자들에게 오리지널약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알렉스 고르스키 존슨앤드존슨 최고경영자(CEO)는 “살아있는 생물체로 만든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는 합성의약품 복제약과 달리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라며 “레미케이드의 우수한 안전성과 치료효과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레미케이드와 유사한 치료 효과를 가진 애브비의 ‘휴미라’와 화이자의 ‘엔브렐’ 대체 처방까지 준비하고 있다. 램시마 임상시험 결과를 보험사와 의사들에게 알려 가격이 저렴한 바이오시밀러 처방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3가지 오리지널약은 면역 저하를 일으키는 'TNF-α'세포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고 바이오시밀러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의사의 선호에 따라 3가지 오리지널약과 바이오시밀러 중 한 가지를 처방할 수 있다. 지난해 레미케이드의 미국 매출액은 5조3000억원이었고 레미케이드·휴미라·엔브렐을 합친 매출액은 20조원이었다.

◆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회사 설립 17년만에 쾌거

2000년 셀트리온(당시 넥솔)을 창업한 서정진(사진·59) 회장은 회사 설립 17년만에 미국 진출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는 바이오 분야에 문외한(門外漢)이었지만 바이오시장이 유망하다는 기대 하나로 긴 시간을 버텼다.

서 회장은 1983년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기에 입사했다. 당시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1991년 대우자동차에 스카우트됐지만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회사를 나왔다. 서 회장은 동료 10여명과 바이오기업을 창업하고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하지만 서 회장은 수년이 지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회사가 2005년 코스닥에 상장된 이후 서 회장은 분식 회계, 경영권 포기, 상장 폐지, 매각 등 각종 의혹에 시달렸다. 바이오업계는 이번 램시마의 미국 진출 가능성으로 모든 의혹을 한번에 날리게 됐다고 평가한다. 지난 5일 종가 기준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약 13조원에 이른다.

오리지널약 판매사 외에 셀트리온의 최대 경쟁자는 공교롭게 삼성바이오에피스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3월 유럽에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SB2‘의 허가를 신청했다. 정상적으로 허가 절차가 진행되면 올해 상반기에 이 제품의 유럽 판매를 허가받게 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올해 내 미국 허가 절차도 진행한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특정 회사(셀트리온)의 일정과 관계없이 SB2의 유럽과 미국 허가를 준비해 왔다”라며 “국산 기술의 바이오시밀러가 세계를 정복하면 바이오업계 전체에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장분석기관 프로스트앤설리번은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2012년 8억8000만 달러(약 1조원)에서 연평균 60.4% 성장해 2019년 240억 달러(약 2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오리지널약에 뒤지지 않는 우수한 품질의 국산 바이오시밀러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라며 “국내 기업의 R&D 투자와 정부 지원이 뒤따른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