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현지도(禮山縣地圖), 지승(地乘),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예산 위치. 네이버 지도 참조

조선시대 충청도 예산현 지역을 답사하였다. 예산은 객사와 동헌은 남아 있지 않은 지역이라 향교를 먼저 찾았다. 예산읍 향천리 132-1에 위치하는데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있어야 할 외삼문이 없어 바로 명륜당 건물이 나온다.

예산향교

향교에서 예산읍내를 바라보면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옛 관아터는 향교를 기준으로 상대적 위치를 통해 찾아보기로 했다. 향교는 읍치의 동쪽에 있기에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예산초등학교와 군청

예산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학교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학교 뒤에는 산이 버티고 서 있다. 예산의 진산(鎭山)이 금오산인데 그 맥이 학교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학교 안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초등학교 교문 밖으로 나오면 예산군청이 보인다. 학교와 군청 사이에는 육교가 있다.

이 육교 위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쪽에는 향교가 보이고 학교 뒤편에는 옛지도에 그려진 산줄기가 보인다. 육교에서 남쪽으로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도로가 보인다. 예산초등학교와 군청 주변에 조선시대 예산현의 관아들이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예산시장

예산읍은 옛지도에는 현내면(縣內面)라고 되어있다. 군청과 학교 사이에서 남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 가면 예산시장이 나온다. 그 지역에 가 보았다고 이야기하려면 하룻밤을 자거나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야 한다. 충청도 내륙지방 예산현에 어울리지 않게 제주도 음식을 파는 데가 있었다. 그런데 보말칼국수, 갈치조림, 고등어구이가 다 맛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제주도에서 오래 장사하다가 다시 돌아온 집이다. 답사를 다니다보면 이런 일도 생긴다.

이제 옛 읍치(邑治) 지역을 벗어나기로 한다. 현대 지도를 보니 신암면에 추사 고택이 보인다.

추사 고택

1786년(정조 10년) 6월 3일에 이 집에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태어났다. 55세 때인 1840년(헌종 6)에 정쟁에 휘말려 제주도에서 약 9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한 이다.

추사 김정희가 가난하게 글씨 공부만 한 사람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명문가의 후예이다. 김정희의 고조부 김흥경은 영의정을 지냈고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였다. 임금의 사위가 되면서 서울과 예산에 저택을 하사받았다.

안내문을 보면 예산의 이 집은 53칸 규모였는데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 비용을 분담하였다고 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택은 1976년에 일부만 복원한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사랑채가 나오고 이어 안채가 나온다. 이 집에 임금의 딸과 사위가 살았기에 안채의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은 따로 두었는데 이것이 왕실 주택 구조를 차용한 것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집안 곳곳에서는 추사의 글씨를 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묘

추사 고택에서 나와 추사기념관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무덤이 보인다. 김정희의 묘이다. 추사 기념관 안에 들어가면 추사의 가계도, 연보, 관련 전시물을 볼 수 있다. 기념관을 나와 그 앞에 그려놓은 추사 고택 주변의 배치도를 본다.

기념관의 반대편, 추사 고택의 동쪽으로 월성위묘, 화순옹주 홍문이 보인다. 월성위가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이다.

추사 고택 근처의 백송

추사 고택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명물은 흰 소나무, 백송(白松)이다. 추사 고택 안에도 백송이 있지만 더 멋진 백송은 안내도의 동쪽 끝에 위치가 표시되었다. 이 곳을 찾아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옆에 백송이 서 있다.

‘예산 용궁리 백송’이라고 불리는데 천연기념물 제 106호로 지정되었다. 백송은 우리나라에 서 잘 자라지 않는다. 한국의 백송은 대개 중국을 다녀오면서 들여온 것으로 이야기된다.

김정희는 24세인 1809년(순조 9)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떠나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중국을 간 적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이 백송은 돌아오던 해인 1810년에 김정희가 직접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송 뒤의 무덤은 추사의 증조부 김흥경의 묘이다.

지금은 조선시대 규모보다 훨씬 작지만, 임금의 딸과 혼인을 맺은 집안의 향촌 저택인 추사고택은 예산까지 답사를 왔다면 한 번 들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