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시민들이 남대문시장 아동복 전문 상가 ‘크레용 아동복’ 앞을 지나가고 있다.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40)씨는 올해 아이들 설빔 장만을 포기했다. 매년 음력 설 남대문시장 아동복 상가를 들러 아이들 옷을 샀는데, 올핸 주머니 사정이 예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르신들을 찾아뵈려면 아이들 설빔을 해 입히는 게 맞고, 아이들도 새 옷을 기다렸을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경기 침체가 소비 심리를 무겁게 억누르고 있다. 불황을 모른다는 유아용품 매출도 줄었다. 인터넷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재래 시장이 가장 어렵다. 남대문시장 아동복 상인들은 “작년 보다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장사가 너무 안된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 부르뎅·원아동복 등 주요 상가 발길 뚝"중국인 없으면 굶어 죽어"

지난 4일, 남대문 시장에선 설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부르뎅아동복, 원아동복, 포키아동복, 마마아동복 등 7개 대형 아동복 상가를 다 둘러봤지만, 아이들 설빔을 장만하는 소비자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남대문시장 내 아동복 전문 상가 ‘원아동복’.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 한복 가격 등을 물어보는 고객은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한창 바쁠 시기인데 매장을 커튼으로 가린 채 영업하지 않는 매장도 적지 않았다.

원아동복 상가에서 아동용 한복 등을 판매하고 있는 김모(51)씨는 “작년 대비 매출이 반토막 난 것 같다. 중국인들이 오긴 하는데, 가격만 물어보고 안 산다. 매장 임대료는 매년 오르는데 너무 힘들다”고 했다.

부르뎅 아동복 상가에서 아동용 개량 한복을 판매하는 한모(46)씨는 “중국 관광객 없으면 다 굶어 죽을 판이다. 이맘때면 사람이 복도에 꽉 차 밀려 다녀야 정상인데,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말했다.

4일 오후. 한산한 남대문시장.

전국 아동복 시장의 80%를 차지한다는 남대문 시장에서, ‘불황 무풍 지대’로 불리는 아동복마저 팔리지 않고 있다.

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등 저출산 현상이 굳어지는 추세도 영향을 줬다. 기저귀, 젖병 등을 파는 유아용품 업체와 유아복·완구업체들의 실적도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2014년 말엔 40년 역사를 가진 국내 최초 유아복 생산 업체 ‘아가방앤컴퍼니’가 중국 기업에 팔렸다.

◆ 수입 과자, 완구 매장도 ‘썰렁’

남대문시장 명물인 수입 과자 판매점도 썰렁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명절 연휴를 앞두고 손주들 간식용으로 과자를 사러 방문하는 고객들이 많았는데, 올 해엔 발길이 뚝 끊겼다.

남대문시장 내 수입 과자점.

남대문 시장에서 수입 과자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요즘 젊은 세대들은 수입 과자를 인터넷에서 직구하거나 코스트코 등 대형 마트에서 산다. 경기가 나빠져 시장에 나오는 어르신들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이용 완구 매장의 상황도 비슷했다. 남대문 대도종합상가의 한 완구매장은 ‘2월 4일까지 세일’이란 안내문을 붙이고 재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장사가 안돼 재고를 떨이 처분하고 휴업하기 위해서다. 한 상인은 “완구 상권은 창신동 완구시장이나 용산 쪽으로 다 넘어갔다. 명동에서 넘어오는 외국인들 말고는 손님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내 완구점들.

경기 침체로 아동용품 소비를 줄이거나 가격이 싼 물건을 찾는 현상은 온라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픈마켓 11번가에선 작년 11월 리퍼브(Refurb) 유아용품 매출이 전년 동기 보다 81% 늘었다. 리퍼브용품은 반품되거나 전시했던 상품을 싼 가격에 파는 제품들이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다 보니 자녀, 손주들을 위한 씀씀이까지 줄이고 있다.

이원교 11번가 출산유아동팀장은 “경기 불황으로 유아용 상품군에서도 가격을 꼼꼼하게 따져 구매하는 ‘가치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