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할까?”

2015년 하반기 한국 영화계 최고 흥행작인 ‘내부자들’에 나오는 배우 이병헌의 대사다. 이 대사 하나로 모히또도 유명세를 탔다. 칵테일을 모르던 사람들도 모히또 정도는 잊지 않게 됐다.

그런데 술집에서나 볼 수 있는 모히또가 여의도에 나타났다. 그것도 딱딱하고 어려운 이름 투성이인 펀드 이름이 모히또다. 얼마 전 헤지펀드 운용사로 전환한 라임자산운용의 원종준(39) 대표의 아이디어다.

"헤지펀드 두개를 출시했어요. 하나는 이름이 '라임 모히또'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라임 가이아'에요. 앞으로 가이아를 시작으로 행성 이름으로 시리즈를 만들거고, 모히또는 칵테일 이름으로 된 시리즈를 만들려고 해요. 이름이 장난스럽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오히려 재미있고 좋다고 봐요. 펀드 이름 지을 때도 전 직원이 다 같이 의견을 냈는데 덕분에 좋은 이름이 나온거죠."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

라임자산운용은 여의도 투자업계에서 지난 몇 년 간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회사 중 하나다. 2012년 8월 라임투자자문으로 문을 연 회사는 얼마 전 금융당국으로부터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로 지정됐다.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도 3년 만에 6000억원 이상으로 불었다.

라임자산운용이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보통의 여의도 투자회사들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이름이자 상징인 '라임'만 해도 딱딱한 투자회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2012년 처음 회사를 만들 때 라임이라는 이름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페리에 라임을 마시다가 라임이라는 이름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때 애플이 한창 인기여서 과일 이름으로 회사 이름을 지을까 생각했는데, 라임은 흔하지도 않고, 청량한 느낌도 있어서 젊고 신선한 조직 이미지에 부합한다고 봤죠."

원 대표가 헤지펀드 운용사 전환을 앞두고 새로 영입한 이종필 상무와 김영준 이사는 1978년생으로 세 명이 동갑이다. 수직적인 문화가 일반적인 여의도 투자업계 문화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젊고 역동적인 힘이 라임자산운용의 장점이 되고 있다. 여의도 전경련회관 17층의 라임자산운용 사무실에서 원 대표를 만나 그동안 회사가 커온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 첫 투자 종목은 한국담배인삼공사...2000년 하락장에 박살났다

-언제 주식 투자를 시작했나.

"주식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시작했다. 1999년 가을이었다. 신문을 보는데 한국담배인삼공사 공모 청약 광고가 있었다. 그 때 아버지를 설득해서 돈을 조금 받았다. 그걸로 한국담배인삼공사 공모 청약에 들어간 게 첫 주식 투자였다."

-1999년 주식시장은 좋았는데.

"한국담배인삼공사 청약을 받았는데 몇 주 못 받았다. 남은 돈이 있어서 아버지한테 다른 주식도 사보겠다고 말씀드렸다. 1999년은 IT 버블이 막바지일 때여서 주식시장도 좋았다. 돈을 조금 벌었다. 겨울방학에 거제에 내려가서 아버지한테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말씀드렸고, 2000년 군에 입대하기 전에 투자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는데 1억원을 주셨다."

-2000년은 주식시장이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때가 밀레니엄 버그 이야기가 많았다. 신문마다 IT 산업이 뜬다고 했다. 1억원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했는데 정말 속된 말로 개박살이 났다. 하루에 1000만원을 잃은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굉장히 근검절약하는 사업가셨는데 그때 저한테 얼마나 잃었는지 묻지도 않으셨다. 그러다가 6월에 카투사로 입대했다."

2000년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12월 26일 종합주가지수는 전년 대비 50.9% 하락한 504.62를 기록했다. 1980년 종합주가지수를 산정하기 시작한 이래 하락폭이 가장 큰 한해였다. 전 세계적으로 첨단 기술주의 거품이 붕괴했고, 미국의 금리 인상 여파로 글로벌 유동성도 부족했다.

-군대에서는 잠시 주식 투자를 쉬었나.

"아니다. 처음에는 동생한테 일주일에 두 번씩 편지를 보내라고 했다. 주식시세표를 스크랩해서 편지에 넣으라고 했고, 그걸 보고 동생한테 보내는 답장에 어느 종목을 얼마나 사라고 했다. 그러다가 카투사 부대에 배정받고 나서는 일과 시간 이후에 주식 투자가 가능해졌다. 틈틈이 주식 투자를 했는데 2001년에 9.11 테러가 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손해를 봤다. 그렇게 손해를 본 채로 제대를 하고 나서는 YFL이라는 학회에 들어갔고 주식 투자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 박현주 회장 보면서 창업 꿈 꿔...박건영 사장 승부사 기질 배워

원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의도 투자회사가 아닌 우리은행을 첫 직장으로 선택했다. 당시 우리은행은 황영기 행장이 부임한 이후 전문직군제를 도입했다. 원 대표는 우리은행 주식운용부에 들어가 3년간 주식운용을 배웠다.

-우리은행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다녔다. 안정적인 직장인데 왜 나왔나.

"은행의 주식운용은 장이 빠져도 매일 일정한 수익을 내야 된다. 그러다보니 주식보다 선물이나 옵션에 손을 대게 됐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더 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또 전문직군제라고 하지만 순환보직 때문에 지점으로 가는 동료도 있었고, 돈을 많이 벌어도 인센티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보니 매력이 떨어졌다."

-트러스톤자산운용으로 옮긴 계기는.

"이직을 결심하고 학회 선배한테 추천을 부탁드렸는데 트러스톤을 이야기했다. 지금 브레인자산운용을 이끄는 박건영 사장이 트러스톤에 있었는데 같이 일하게 됐다. 자산운용사를 가보니 은행에서 주식운용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전문적이었다. 각자 담당하는 섹터나 기업에 대해서는 실적, 트렌드, 변수 등을 줄줄이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입사하고 나서 유통과 건설, 유틸리티 분야를 맡았는데, 6개월 동안은 자정 전에 퇴근한 기억이 없다."

-박건영 사장을 트러스톤에서 처음 만난건가.

"그렇다. 박건영 사장님이 경상도 동향이고 해서 편한 부분이 있었다. 박 사장님이 브레인자산운용(당시 투자자문)을 설립하고 나서 반년 뒤에 옮기라고 제안을 해주셨는데 한 차례 거절했다. 워낙 업무 스타일이 강하다보니 아내가 반대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제안을 주셔서 옮기게 됐다. 그 때는 나도 박현주 회장을 보면서 창업을 생각하던 때였다. 신생 회사에서 일해보면 나중에 창업할 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내를 설득했다."

-박건영 사장은 투자업계에서도 호불호가 뚜렷한 사람이다. 가까이에서 본 박 사장은 어떤 사람이었나.

"승부사 기질이 강하다. 어려움이 닥칠 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이겨낸다. 주식 투자에 있어서는 십억 단위까지는 거의 모든 숫자를 다 외우고 있었다. 그런 걸 외우는 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나 IR 담당자들과 네트워크가 뛰어났다. 누구든 처음 만나자마자 형님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히트작을 만드는 능력도 뛰어났다. '트러스톤 칭기스칸 펀드'나 '자문형 랩(자문사 조언을 바탕으로 증권사가 증권을 매매해 주는 서비스)' 같은 히트 상품을 계속 만들었다."

-박현주 회장이 롤 모델이라고 하던데.

"그건 와전된 것이다. 박현주 회장을 보고 나도 창업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 건데 그게 롤 모델이라고 포장이 됐다. 닮고 싶은 회사는 쿼드자산운용이다. 김정우 쿼드자산운용 대표와도 친하고, 회사 지배구조도 브레인이나 트러스톤과 많이 다르다. 쿼드자산운용은 새로운 직원이 합류하면 회사 지분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라임자산운용이 클 수 있었던 것도 쿼드가 앞 길을 잘 열어준 부분이 있는데, 앞으로도 쿼드가 가는 길을 잘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 여의도에서 대표 지분 제일 적은 회사...직원들 주인의식이 성장 비결

-라임자산운용과 브레인자산운용은 분위기나 회사 운용 스타일까지 많이 다른데.

"브레인이나 트러스톤은 오너십이 굉장히 강한 회사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회사의 그런 부분이 싫었다. 그래서 직접 창업을 결심한 것도 있다."

-라임자산운용이 빠르게 성장한 비결로 다른 투자회사들과 차별화되는 지배구조를 꼽는 사람도 있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져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창업할 때부터 여의도의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지배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라임자산운용은 저랑 제 가족이 회사 지분의 37%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 여의도의 투자회사 중에서 대표 지분이 가장 적을 거다. 독립 투자회사는 창업자 지분이 많은데 그러다보면 직원들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투자회사 대표나 오너들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보니 회사의 성과를 자기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대로 주지 않게 되고, 회사의 문화도 수직적으로 된다.

라임투자자문을 처음 만들 때는 이런 부분을 바꿔보고 싶었다. 회사가 수익을 내면 직원들이 인센티브로 얼마를 가져갈 수 있는지 명문화해놓으니까 직원들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회사의 수익이 직원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놨다고 할까. 투자회사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자산인데, 그 사람들이 진정성을 갖고 일하다보면 성과가 나오게 된다."

-회사 이름도 여의도의 다른 투자회사들과는 달리 젊은 이미지가 느껴진다. 어떻게 지었나.

"페리에 라임을 마시다가 라임이라는 이름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애플이 한창 인기여서 과일 이름으로 회사 이름을 지을까 생각했는데, 라임은 흔하지도 않고, 청량한 느낌도 있어서 젊고 신선한 조직 이미지에 부합한다고 봤다."

-헤지펀드 운용사로 전환했다. 새로 출시한 헤지펀드의 이름도 독특하다. 모히또와 가이아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각한 건가.

"하나는 이름이 '라임 모히또'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라임 가이아'다. 앞으로 가이아를 시작으로 행성 이름으로 시리즈를 만들 예정이다. 가이아가 라임의 대표 헤지펀드가 될텐데, 태양의 공전 주기에 따라서 펀드의 이름도 지으려 한다. 예컨대 지구보다 태양에서 가까운 수성이나 금성의 이름을 딴 펀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으로 설계할 거고, 반대로 지구보다 태양에서 먼 화성의 이름을 딴 펀드는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Low Risk Low Return)'으로 설계할 것이다.

라임 가이아가 1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거액자산가나 기관투자자 대상이라면, 라임 모히또는 1억원에서 5억원 정도를 투자하는 분들을 위한 펀드다. 연간 7% 정도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펀드로 만들려고 한다. 가이아처럼 메자닌, BW, 퀀트 전략을 섞을 건데, 해외 쪽만 넣지 않는 식으로 차별화하려고 한다. 모히또나 가이아나 이름이 장난스럽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오히려 재미있고 좋다고 본다. 펀드 이름 지을 때도 전 직원이 다 같이 의견을 냈는데 덕분에 좋은 이름이 나왔다."

◆ 저금리 저성장 시대 진입...이제는 티끌 모아 태산이 중요

-지난해 주식시장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2015년 주식시장은 상반기 중소형주, 성장주, 제약·바이오 업종의 급등 이후에 미국 금리 인상 우려로 인한 이들 종목의 급락, 그리고 연초 이후 낙폭 과대 대형주의 반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글로벌 신흥국 마켓 지수는 17% 하락하면서 2011년 이후 최악의 모습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하지만 증시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2016년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서 시장이 여전히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경기 회복이 밋밋하고,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신흥국의 위험 요인도 높아졌다. 한국도 수출이나 내수 모두 회복세가 약하고, 기업 이익도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내년에도 코스피지수는 여전히 박스권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명 투자자인 리처드 번스타인은 투자자에게 쓴 편지에서 "2016년은 투자자들에게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2016년 유망 산업으로는 지배구조 개편, 방위산업, 전기차, 모바일 결제 시장 확대에 따른 IT 부품 회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모간스탠리나 크레디트스위스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은 2016년 한국 증시에 대해 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보이고 있다. 원화 약세, 기업이익 하향 속도의 둔화, 주주이익 환원책,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 이슈 등을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의 이유로 꼽는다."

-박스권 장세가 계속 되고 있다. 주식시장에 대한 생각이나 투자 철학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라임자산운용이 최근 내놓은 펀드들은 절대수익률을 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 성장에 발 맞춰서 코스피지수도 쭉 올라갔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지난해도 상반기에 좋았지만 하반기에는 안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건 주식시장이 어떻든 간에 연간 7% 정도만 수익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렇게 조금씩 모아가는 것이 이제는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방정식 하나가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다. 0.01의 차이가 쌓이다보면 나중에는 아주 큰 차이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0.01의 차이가 쌓이면 나중에는 큰 격차가 난다.

-벤처투자도 하고 있다. 벤처캐피탈(VC)로 변신하는 건가.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분기별 투자자문사 수익 순위를 봤는데 상위 10개사 가운데 5개사는 생소한 곳들이었다. 예전에는 주식 운용하는 투자자문사가 1위부터 10위까지 차지했는데, 이제는 5개사 정도는 메자닌이나 비상장사, CB, BW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들이 치고 들어왔다.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돈을 버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본다.

2년이나 3년 뒤에 헤지펀드가 자리를 잡으면 VC로 본격적으로 뛰어들려고 한다. 최근에도 VC나 스타트업 대표들을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얼마 전에 시각효과(VFX) 업체인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에 1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그 회사 대표를 만나보니 중국계 자금이 국내 스타트업들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

-마지막으로 주식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한다면.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 과거에 유행했던 적립식 펀드나 차이나펀드, 차화정을 내세운 자문형 랩, 후강퉁, ELS 모두 끝이 안 좋았다. 아기 업은 아줌마가 펀드 가입하려고 줄 선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결국 다 그렇게 됐다. 쏠림이 발생할 때는 다시 한 번 고민해보는 게 좋다. 펀드 운용하는 매니저들도 돈이 몰리면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