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들으니 제사를 지낼 때 여러 집사들이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비스듬히 서 있는가 하면 심한 경우에는 간혹 졸고 있는 것을 남이 깨우기까지 한다고 하였다. 이번에는 일찌감치 자리에 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쉴 것이며 일을 수행할 때는 정신을 가다듬어 삼가 태만하고 게을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1791년 4월 정조(正祖)가 종묘 제례에 참여하는 신하들에게 정성과 경건함을 당부하며 했던 말이다. 국가에서 드리는 제사인 제향(祭享)은 주로 밤에 드렸다. 새벽 2시쯤 시작하면 오전 7시나 9시쯤 되어서야 끝났다. 한밤에 신하들이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거나 졸다가 들켜서 민망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욱(52)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장서각 연구원은 조선 왕실에서 드렸던 제사의 횟수와 종류, 제사상의 음식을 상세히 분석한 '조선 왕실의 제향 공간'(한중연 출판부)을 최근 펴냈다.

2012년 서울 종로구 종묘에서 열린 종묘대제(宗廟大祭)에서 제를 올리는 모습. 종묘제례(宗廟祭禮)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종묘대제로도 불린다.

정조 때 편찬된 편람(便覽)에 따르면 당시 한 해 거행하는 제사는 347건에 이르렀다. 1년 내내 제사를 드렸다는 얘기다. 왕릉에서 거행하는 횟수가 165건(47%)으로 가장 많았다. 종묘(宗廟)·사직(社稷) 등에서 거행하는 제사는 17건, 선농단·선잠단 등에서 지내는 제사는 12건이었다. 이 연구원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왕릉 숫자가 많지 않아서 제사 횟수도 적었지만, 왕조 역사가 길어지면서 왕릉 숫자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제사 횟수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종묘 제례를 거행할 때 선왕의 위(位)에 올리는 제사 음식의 가짓수는 43종에 달했다. 여기에 왕비가 있으면 13종이 늘어나 전체 56종이 됐다. 다시 장가를 들어서 계비(繼妃)가 있으면 다시 13종을 추가해 69종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선조 때는 종묘 제례를 지내면 소 한 마리를 잡았지만 숙종 때는 소 두 마리,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는 소 네 마리까지 늘었다. 종묘 제례에 쓰이는 떡을 준비하기 위해 이틀 전부터 숙수(熟手)들이 쌀을 씻고 절구에 찧고 시루에 쪄서 떡을 만들었다. 이 연구원은 "제사에서 음식은 신을 부르는 매개물이기 때문에 제사 준비의 대부분은 제물(祭物)을 마련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설날이나 한식 같은 명절에 제사를 지내면 관리들이 대거 차출됐다. 1796년 한식날 왕릉이나 궁묘(宮廟)에 파견되는 전체 제관(祭官)은 185명에 이르렀다. 차출 숫자가 커지자 제관 부족 현상이 심각해졌다. 60세 이상 나이 든 관원이나 무신(武臣)을 차출하는 경우도 늘었다. 이 연구원은 "제사 횟수가 증가하면서 관리들이 제관으로 차출되는 것을 꺼렸고 제사의 권위가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정조는 종묘 제향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보조자를 늘리고, 제사를 집행하는 집사자(執事者)의 동선을 줄이는 개혁 조치에 착수했다. 소·돼지·양의 삶은 고기도 각기 나눠서 올리던 것을 큰 상자에 한꺼번에 담아 올리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 연구원은 "제사라는 형식을 유지하면서 신하들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선 왕실의 제사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의식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