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출이 2009년 8월 이후 6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우리나라 무역 사상 최초로 반도체·철강·조선 등 13대(大) 전 품목의 수출이 동시에 줄어드는 현상도 발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367억달러(약 44조1300억원)로 작년 같은 달보다 18.5%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8월(-20.9%) 이후 낙폭(落幅)이 가장 큰 것이다. 수입액은 1년 전보다 20.1% 감소했다.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더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무역수지는 48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이인호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단기적으로 수출 유망 품목 발굴, 이란 특수(特需) 활용 등을 통해 수출 회복에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수출 쇼크의 주원인은 국제 유가 하락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월 배럴당 45.8달러에서 올 1월에는 26.9달러로 1년 새 41% 정도 떨어졌다. 이에 따라 석유 제품과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 단가(單價)는 각각 40%와 15%가 빠졌다. 이 때문에 두 품목에서만 수출 금액이 작년 1월 대비 16억달러가 감소했다.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중동 국가의 경기(景氣) 침체와 소비 여력 급감으로 지난달 우리나라의 중동 지역 수출은 1년 전 대비 8억달러(-31%) 정도 줄었다.

썰렁한 부산 컨테이너항 - 1일 부산 남구 감만부두에 화물선이 선적을 기다리는 가운데 수출용 컨테이너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2014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컨테이너로 가득 찼던 야적장이 3분의 1 이상 비었다. 지난달 우리 수출은 13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고 13대 주력 품목의 수출도 감소했다.

여기에다 중국 등 신흥 시장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까지 글로벌 경기 침체가 확산된 것도 수출 감소세를 부채질했다. 특히 우리나라 총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이 지난해 6%대 성장에 그친 여파가 1월 수출에 직결됐다. 윤갑석 산업부 무역정책관은 "지난달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이 1년 전 대비 22% 정도(26억달러) 급감한 게 큰 타격이 됐다"고 말했다. 다소 경기 회복 기미를 보이던 미국도 소비 심리 둔화로 수출이 9% 정도 줄었다. 일본, 아세안, 중남미도 모두 10~30%대의 동반 감소세를 보였다. 이런 여파로 올 1월엔 지난달 겨우 증가세로 돌아선 수출 총물량까지 5% 넘게 줄었다. 그동안 정부는 "저유가와 글로벌 과잉 공급 등으로 인해 주력 수출 제품의 단가가 하락해 수출 금액은 줄었어도 수출 총물량에서는 선방(善防)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지난달 수출 총물량마저 감소함에 따라 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별로는 양적 완화(QE·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를 단행한 EU(유럽연합)로 수출이 유일하게 성장(7%)했다.

13대 주력 전 품목 감소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13대 주력 품목의 수출이 예외 없이 모두 뒷걸음질했다는 점이다.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석유제품(-36%)과 석유화학(-19%)의 감소 폭이 두드러졌으나 자동차(-22%), 일반 기계(-15%), 철강(-20%), 반도체(-14%), 평판 디스플레이(-31%) 등도 모두 두 자릿수로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3대 수출 품목이던 조선(造船)은 해양 플랜트 수출이 전무(全無)한 상황에서 1년 전 대비 14억1000만달러(-32%) 정도 수출액이 줄었다. 신규 수출 품목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화장품이 각각 9%와 2%씩 증가한 게 '위안거리'였다. 김병유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선박 등 한두 품목은 수출이 늘었는데 이번처럼 전(全) 품목이 감소한 것은 정부 수립 후 최초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 體質 혁신하고 수출 기반 확충"

전문가들은 "이번 수출 위기는 저유가와 글로벌 경기 침체란 대외 요인의 영향이 워낙 강해 뾰족한 해결책이 안 보인다"면서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 강화와 수출 기반 확충을 주문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최근 10년간 수출 주력 품목이 거의 불변(不變)인데 이는 그만큼 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라며 "국회에서 막혀 있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같은 경제활성화법의 통과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수출 외연 확장 차원에서 신(新)시장과 신(新)품목 개발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통상본부장은 "인도와 중남미 등 신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동시에 소비재 등 새 수출 품목을 발굴해야 한다"며 "대기업 중심의 수출 정책을 우량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바꿔 중장기 수출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