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신문이나 방송 경제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다.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 국채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통화 정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통해 통화량을 조절한다. 하지만 기준 금리가 제로(0)에 가까운 상황에서 더 이상 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때 미국이나 유럽 등 일부 국가들은 이례적으로 양적 완화 정책을 썼다.

양적 완화를 시행하면 일반적으로는 주식·채권·부동산·원자재 등 실물 자산의 가격이 상승한다. 벤 버냉키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라는 표현으로 양적 완화를 표현하기도 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2008년 이후 기준 금리를 제로로 끌어내리고, 달러를 발행해 금융회사의 채권을 사주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풀었다.

‘돈의 힘’으로 세계경제를 떠받친 덕분이었을까. 미국경제는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3년 5월 마침내 벤 버냉키 전 FRB 의장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언급했고, 같은 해 12월 양적완화 축소에 들어갔다. 매월 850억달러의 채권을 사들였는데 이를 750억달러로 축소한 것이다. 벤 버냉키 전 의장은 금융기관과 시장에 테이퍼링을 미리 언급하고, 이에 대비할 시간을 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버냉키 의장의 뒤를 이어 2014년에 재닛 옐런이 새로운 FRB 의장이 됐다. 재닛 옐런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버냉키 의장과 함께 양적 완화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그 역시 제로 금리 정책은 꾸준히 유지하면서 금융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FRB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015년 12월 16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0~0.25%에서 0.25~0.5%로 0.25%포인트 올리기로 결정했다. 2008년 이후 9년 6개월만에 제로금리 시대가 저문 것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앞으로 미국의 금리가 점진적으로 오르면서 ‘정상화’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리 인상을 ‘정상화’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제로금리가 세계 경제 침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난 ‘비정상적인 현상’이었다는 의미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우려가 커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꼽히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상대적으로 위험한 나라에 유입됐던 자금이 미국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금 유출을 우려한 일부 나라들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금리를 따라서 올릴 가능성이 큰데, 실제로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금리인상 발표 뒤 곧바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렸다.

국내에서도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조선·중공업·플랜트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의 경영상황이 악화되고, 환율 변동이 심해지면 이들의 경쟁력이 더욱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2015년 12월 24일 "미국의 금리 인상 영향으로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 가능성이나 환율 등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가계부채 급증이나 일부 대기업의 경영 상황 악화도 금융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며 경계심을 표시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이 과거의 인상 속도보다는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본다. 옐런 의장도 “기준금리가 한 번 오른 다음에는 정상화 속도가 점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 수준으로 되돌아가려면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조선비즈 12월 17일

9년 6개월 만에 금리를 인상한 이유를 묻자

“상황이 준비됐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용 시장이 더 개선되고 인플레이션이 중기적으로 2% 목표에 다다를 것이라는 합리적인 확신이 생기는 등 조건이 충족됐다고 본다. 세계 경제 우려가 있었지만 미국 경제는 상당히 강력히 성장했다. 다만 첫 인상을 지나치게 중시할 필요는 없다. 25bp 인상일 뿐이다. 통화 정책은 조절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그동안 금리 인상을 여러차례 시사해왔기 때문에 미 금리 인상은 예상했던 이벤트이고, 앞으로 금리 인상 속도도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금리 인상 이후 미국 금융시장이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우리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조선비즈 12월 17일

"美 금리인상, 금융시장 부정적 영향 우려할 상황 아니다"

재닛 옐런(Janet Yellen)

재닛 옐런은 100년이 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다. 2013년 10월 9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준 부의장인 재닛 옐런을 연준의 차기 의장으로 공식 지명했다.

옐런은 1946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이민자 자손으로 태어났다.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와 UC버클리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4년간 연준 이사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연준 부의장을 맡는 등 연준 속사정에 정통한 핵심 멤버로 꼽힌다.

'정보 비대칭 이론'의 창시자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대 교수가 남편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미국에서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을 말한다. 200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주택 투자 열풍이 불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 규모도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미국 주택 경기 부진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 대출을 많이 취급한 금융기관들이 부실해졌고 일부 업체가 파산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우리나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 해당한다.

FRB는 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FRB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서 연 0~0.25%의 낮은 기준금리를 9년 넘게 유지하다가 2015년 12월 16일 열린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여부는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커 FRB 의장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