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세계 1위와 2위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과 삼성SDI의 주가는 각각 전날보다 7.8%, 14.7% 떨어졌다. 삼성SDI의 주가는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게 이들 회사 주가 급락의 원인이었다.

27일 외신 등에 따르면 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 재정부장은 "전기차 보조금을 2017년부터 20% 축소하고 2020년 이후에는 보조금 제도를 아예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축소되면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어 삼성SDI와 LG화학의 배터리 사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중국에 대규모 배터리 생산기지를 짓는 등 중국 투자를 대폭 늘려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삼성과 LG가 전략을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까지 보고 있다.

중국은 일반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5만4000위안(약 980만원),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사는 소비자에게는 3만2000위안(약 58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 각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추가 보조금이 추가된다. 이러한 정책은 2025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전체 자동차시장의 2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 中, 전기차 보조금 축소 나선 3가지 배경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보조금과 같은 육성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를 대기오염과 높은 석유연료 의존도 등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봤다. 시장조사기관 IHS 등은 2020년 중국 전기차 시장이 2015년보다 5배 커진 69만7000대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정부가 당초 계획과는 달리 전기차 정책 방향을 수정한 배경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국제 유가다. 최근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선으로 내렸다. 저유가 추세가 이어지자 경제적인 측면에서 석유연료 의존도를 당장 줄여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중국 산시성 시안에 있는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직원이 생산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대기오염을 줄이는 대체 방안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의 정책을 본떠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캘리포니아는 각 기업에 일정한 배출량을 할당한 뒤 자율적으로 배출권을 사고 팔도록 하고 있다.

러우지웨이 재정부장은 "미국 테슬라가 성장한 배경에는 캘리포니아의 배출권 제도가 있었다"며 "중국이 배워야할 사례"라고 말했다.

두번째는 보조금을 타내기 위한 사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도한 보조금이 허위 보고와 엉터리 전기차 난립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사기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출하량은 전년보다 4배 늘었다. 그러나 일부 제조사들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 판매 면허만 등록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전기차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차는 같은 회사가 설립한 렌터카 회사로 넘겨지고, 사실상 운행을 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번째는 안전에 대한 우려감이다. 중국에서 전기차 전지로 많이 쓰이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안정성을 문제삼아 NCM 배터리에 보조금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기술 없는 제조사 퇴출이 목표"

중국 정부가 정조준하는 대상은 기술이 없는 허위 사업자들이다. 전기버스가 여기에 가장 많이 해당된다. 중국 관영 통신 중궈망에 따르면 전기버스 구매자 보조금은 30만위안(약 5400만원)에 이른다. 이를 노리고 마구잡이로 차를 만드는 소규모 공장이나 사업자가 크게 늘었다.

중국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오토모티브 포사이트의 장예일 부장은 "작은 도시들을 중심으로 보조금 사기 행태가 만연하다"며 "후한 보조금이 오히려 기술 발전을 막고 있다는 지적에 정부가 보조금 축소 카드를 빼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NDRC) 고위 관계자는 중궈망을 통해 "장기적으로 중국은 기술이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장이 될 것"이라며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들의 역량은 아직 해외 기업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정책을 틀고 있다는 지적도 한다. 김종현 LG화학 자동차전지 사업부장(부사장)은 "보조금을 적용하지 않기로 검토중인 품목은 NCM인데, 중국 전기차업체들이 NCM 배터리 제조 기술이 없는 상황이라서 중국에서 갖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사용을 늘리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 “中에 올인한 전략 수정 필요"…삼성 LG “당장 영향은 없다”

세계 1위와 2위 전기차 배터리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로서는 중국 정책에 따라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조금이 축소되면 중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노무라증권 등 투자은행들은 중국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삼성SDI와 LG화학의 매출이 많게는 30%, 적게는 10% 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LG화학과 삼성SDI는 각각 중국 난징(연산 5만대)과 시안(연산 4만대)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중국 공략에 나선 상태다. 전지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LG 모두 차세대 동력으로 전기차 배터리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한 상태"라며 "아직 제대로 이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의 변심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이를 의식해 진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 축소 계획을 이전부터 시사해 왔기 때문에 새로운 게 아니고 중국의 전기차 인프라는 확대되고 있어 관련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당장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현 LG화학 부사장은 "이번 논의 대상은 물류차를 제외한 상용차로 전기버스 정도만 해당된다"면서 "중국 거래선들은 NCM을 선호하고 있어 전면적으로 보조금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 삼성SDI 중대형전지 자동차부문 상무는 "자동차 전지의 경우 2018년 예정대로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