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기와 유기농 매실 원액 1.5L, 소형 서랍장과 교환을 원합니다.'

대학생 권모(28)씨는 최근 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물물교환을 제안하는 글을 올리고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다. 자취방 수납공간이 부족해 소형 서랍장을 사려고 알아보던 권씨는 저렴한 제품도 3만~4만원이 넘어 생활비에 부담이 되자 생각을 바꿨다. 평소 거의 쓰지 않는 토스트기와 부모님이 보내 준 매실 원액 3병 중 1병을 처분하기로 한 것. 권씨는 "집에서 용돈 받아 쓰는 학생이 1만~2만원이라도 돈을 지불하는 것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 물물교환 활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물물교환이 활기를 띠고 있다. 씀씀이를 줄이려는 사람들이 '교환 경제'의 효용성에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물물교환 관련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페이지, 블로그,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 다음 등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물물교환'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각각 5만~6만건의 블로그 글이 검색된다.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물물교환' 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70~80개가량의 글이 올라온다. 지난해 초부터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다른 블로거들과 교환해온 주부 임모(38)씨는 "정말 꼭 필요한 것에만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경기 상황 아니냐"며 "최근에는 수저 세트를 받고 무대 의상이 필요한 사람에게 평소 입지 않는 드레스를 넘겼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문을 연 모바일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경우 26일 기준으로 1만5000건 넘는 교환 거래가 올라와 있다. 거래 내용은 '스마트폰 데이터를 기프티콘으로 교환' '구형 휴대전화끼리 교환' '태블릿PC를 노트북으로 교환' 등 다양하다. 번개장터는 다운로드 700만건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다. 페이스북의 '공유하는 지구별 순환터'(공지순)는 SNS에서 가장 활발히 운영되는 물물교환 장터로 꼽힌다. TV나 모니터, 내비게이션 등의 전자기기부터 휴대용 칫솔·치약 세트, 도화지 등의 사소한 물건까지 일주일에 수십건씩 교환 물품이 올라온다. 물물교환은 중고 거래와 마찬가지로 물건을 보내지 않고 연락을 끊거나 설명과 달리 흠이 있는 물건을 보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거래를 통해 검증된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물물교환 사이트에서는 거래 후기 등을 활용해 회원들의 신용도를 매겨서 이용자들의 거래자 선택을 돕고 있다.

◇물물교환 너무 유행하면 내수에 악영향?

전문가들은 물물교환의 성행을 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징후로 해석하기도 한다. 쇼핑가의 '가격 파괴' 이벤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소비자발(發) '불황 대응책'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 위기나 장기 침체를 겪은 국가에서도 물물교환이 성행한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이후 일부 지역에서 물물교환이 활발히 이뤄졌다. 2008년 말 문을 연 물물교환 사이트 '바터퀘스트'에서는 가전제품, 운동기구 등의 물건은 물론 세무 상담, 미용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서비스도 물물교환 형태로 거래됐다.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org)라는 물물교환 사이트는 2009년 전년 대비 100%가량의 이용자 증가율을 보여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 야후재팬의 '뭐든지 교환' 등의 백화점식 장터를 비롯해 어린이옷(육아 마마마킷), 서적(비블리) 등 특정 물품 전문 물물교환 사이트가 유행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물물교환은 1990년대에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 시행된 '아나바다 운동'과는 다른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물물교환은 돈이 나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가장 소극적인 형태의 소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