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도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7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스타트업 투자설명회에는 100여 명의 투자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3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투자자 앞에서 발표할 스타트업(창업 초창기 기업) 젊은 대표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이날 분말 건강간편식, 매장 음악 신청앱 등을 개발한 5개 스타트업 대표들이 자사 사업을 설명했다. 시간은 딱 7분씩 주어졌다. 이른바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 ·엘리베이터 타고 내릴 만큼 짧은 시간에 투자 설명을 하는 것)'였다. 이후 각각 8분씩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투자자들은 바늘 같은 질문들을 쏘아댔다. 유동 상권 분석앱에 대해선 "대표님의 빅데이터 분석이 정답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가요?", "원천 정보를 놓치면 이 서비스는 0점 아닌가요?" 등 공격적인 질문들이 나왔다. 응답을 마치고 내려오는 대표는 진땀을 훔치며 "입 안의 침이 바짝바짝 마르네요"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경기도 성남시‘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젊은 스타트업 기업인들이 100여 명의 엔젤투자자 앞에서 자기 사업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단 7분씩 주어진 발표시간 안에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이날 행사는 엔젤〈키워드〉 투자 모임인 브라더스와 엔슬이 공동 주최했다. 브라더스는 4년 전 회원 100여 명이 만들었고, 엔슬은 전·현직 대기업 임원 39명이 작년 3월 결성했다. 두 모임은 두 달에 한 번씩 비공개 투자설명회를 열고 있다. 스타트업과 엔젤들의 치열한 투자 유치와 검증 과정을 직접 들여다 봤다. 이날 단상에 오른 스타트업들은 교수·변리사·증권사 팀장 등 운영위원 8명이 수차례 회의를 거쳐 엄선한 회사들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벤처투자가 사상 최대 규모(2조858억원·중소기업청 통계)를 기록한 가운데, 엔젤 투자자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1년 369명에 불과했던 엔젤 수는 작년 말 9466명으로 25배 이상 늘었다.

◇밤 12시에 회사 불시 방문하기도

최근 엔젤투자자 몇 명은 밤 12시에 관심 있는 스타트업을 기습 방문했다. 치킨을 양손에 들고 격려 차원에서 방문했지만 실상은 회사가 정말 열심히 잘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안창주 엔슬 이사는 "이런 방문은 회사의 헝그리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스타트업 대표와 소주를 2~3번 마셔보면서 사람됨을 평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재무 수치 등 정량 평가에 못지않게 엔젤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성 평가다. 스타트업들은 그야말로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숫자로 보이는 것보다는 눈과 귀로 확인할 게 더 많기 때문이다. 강달철 브라더스엔젤클럽 총무는 "투자 설명회 때 '이래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자존심을 확 상하게 하는 말도 마구 던진다"며 "이때 대표가 얼마나 화를 참고 당황하지 않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이런 평가들을 통과하면 마치 오래된 친구·가족처럼 엔젤과 스타트업 직원들은 친해진다. 국내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한 엔젤 투자자는 "투자하는 기업의 대표와 그 여자 친구를 불러 삼겹살에 소주를 먹다보니 마치 아버지가 된 느낌이 들 정도로 속 깊은 얘기까지 나누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브라더스·엔슬 같은 엔젤클럽들은 146개에 달한다. 이들의 투자 규모는 2010년 341억원에서 2014년 800억원으로 두 배 넘게 컸다. 정부는 조건에 맞는 엔젤들에 1대1 매칭 펀딩을 해줌으로써 엔젤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데스밸리(death valley)'의 다리가 되는 엔젤

작년 삼성전자 마케팅 총괄 전무에서 퇴직한 임선홍 엔슬 이사는 건강 간편식 스타트업의 투자자이자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임 이사는 "중소기업청을 통해 회사를 소개받아 마케팅을 포함한 회사 경영 전반을 돕는다"며 "내가 회사에서 체득한 경험을 전수하는 일종의 재능기부"라고 말했다. 임 이사는 하루에 한 끼는 이 회사 제품을 먹으며 임상 조언까지 해준다.

엔젤은 초기 운영 자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후견인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스타트업들이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 엔젤투자자로 활동 중인 조욱제 변리사는 "엔젤 투자는 사업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서 "엔젤이 투자하면 1차 검증이 됐다는 뜻으로 벤처캐피털 등 더 큰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엔젤투자자

창업 초기 단계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 형태로 제공하고, 경영 조언을 해 기업 가치를 높인 후 인수·합병(M&A)이나 기업 공개(IPO) 등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투자자. 192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영세 오페라단에 자금 지원을 한 후원자들에게서 명칭이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