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서울에서 영업을 시작한 인도계 은행 SBI를 비롯해 아시아계 은행들의 한국 진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동남아와 중국계 은행들이 주를 이룬다. 이미 20여년 전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계 은행은 현재 6개로 미국(5개)을 제치고 국내에 가장 많이 진출한 외국계 은행이 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인도네시아 최대 국영 은행인 느가라 인도네시아 은행(BNI)이 설립 인가를 받았고, 2014년에는 필리핀 최대 민간 은행인 BDO유니뱅크와 아랍에미리트(UAE) 2위 은행(총자산 기준)인 퍼스트걸프은행(FGB)이 서울에 사무소를 차렸다.

13일 서울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인도 최대 은행 스테이트뱅크 오브 인디아(SBI)의 서울 지점 개점 기념 간담회에서 비 스리람(서 있는 사람) 부행장이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은행으로 진출한 20개국 중 아시아계 은행이 절반을 차지한다. 세종대 김대종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영미권 은행들은 한국에서 짐을 싸거나 규모를 줄이는 반면, 아시아계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한국 진출을 모색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국 근로자·유학생·기업 대상 영업이 주목적

아시아계 은행들이 한국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 근로자와 유학생, 기업들이 늘면서 송금과 환전 등의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외국인 체류자는 약 200만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13일 서울지점 개점 기념행사를 연 인도계 SBI 측도 한국에 진출한 가장 큰 이유로 양국을 오가는 기업들이 타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에 상주하는 인도계 기업들과 인도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금융 및 무역금융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SBI 비 스리람 부행장은 "지난해 5월 모디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뒤 교역과 상거래 성장률이 커서 기업금융 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기회가 다가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당분간 소매금융 업무는 한국에 사는 인도인의 송금 업무로 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BNI도 조만간 지점을 내고 SBI와 비슷한 방식의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에 진출한 아시아계 은행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의 사업 및 금융 컨설팅을 받을 수 있고, 해외 송금 시 수수료 혜택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체류 외국인 고객을 600만명(중복 가입자 포함) 가까이 확보하고 있는 시중은행들은 아시아계 은행들과 외화 송금 영역에서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中 은행은 소매금융 시장까지 공략

소매금융에는 별 관심이 없는 동남아계 은행들과 달리, 중국계 은행들은 기업금융 외에도 개인영업, 인터넷뱅킹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저금리로 국내 은행들의 예금 이자가 1%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것이다.

작년 말 지급받은 상여금을 투자할 곳을 찾던 8년차 직장인 A씨는 궁리 끝에 최근 한 중국계 은행의 서울지점을 찾아가 위안화 예금을 들었다. 금리가 연 3.3%였다. A씨는 "시중 은행의 저금리에 실망하고 중국계 은행을 찾게 됐다. 내 주변에도 위안화 예금을 한 사람이 몇 명 더 있다"고 말했다. 이 은행 외에도 다수의 중국계 은행들은 국내 은행보다 높은 연 2%대 후반~3%대 초반의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상품들을 출시한 덕에 중국계 은행들의 성적표도 나쁘지 않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5개 중국계 은행의 총자산은 65조원으로, 2014년도 같은 기간(48조1000억원)보다 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 영역도 점차 확대하고 있다. 공상은행은 지난해 말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여·수신, 외환 송금 등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시작했다. 교통은행은 예금 계좌의 실시간 거래 내역과 잔액 조회, 정기예금 잔액 조회, 환율과 정기예금 금리 확인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위안화 청산은행 인터넷뱅킹'을 출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고객들이 중국계 은행을 이용할 경우 높은 이자를 받을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위안화 가치의 변동성이 큰 상황이기 때문에 환(換) 리스크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KB경영연구소 이정진 박사는 "국내 개인 고객의 입장에서는 중국계 은행들과 거래할 때 중국 금융 제도 급변에 따른 위안화 환율 변동성 확대 등 환 리스크를 유의해야 한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