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 시각) 오전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 Show) 2016'이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의 사우스홀(south hall). 이곳은 CES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자동차나 올해 당장 시장에 나올 TV와 가전제품 등을 전시하는 다른 전시장과는 성격이 다른 곳이다. 드론과 가상현실(VR) 관련 기술과 제품을 주로 전시하는 곳이다. 향후 10년, 20년 뒤의 미래 성장 동력을 보여주는 일종의 '미래관'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조명과 제품을 소개하는 모델들 대신 천장까지 그물망이 쳐진 가운데 여러 대의 드론(무인기)이 떠다녔다. '우웅' 하는 드론의 비행 소리뿐 아니라 또 하나 두드러진 소리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중국어였다. 이 전시장의 주인공은 단연 중국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27개 드론 업체 중 12개가 중국 업체였다. 가장 넓은 부스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드론 시장 1위인 DJI도 중국 기업이다.

사우스홀뿐 아니라 전기차 전시관의 '스타 기업' 패러데이 퓨처도 중국계 기업이었다. TV·스마트폰 등에서 무서운 속도로 선진국을 따라잡은 중국이 드론·전기차 등 미래 산업으로 무장하고 라스베이거스 사막 지대에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드론 넘어 비행택시까지

세계 첫 사람이 타는 드론 중국 드론제조 기업‘e항(eHang)’이 6일(현지 시각)‘ CES 2016’에서 세계 최초로 1인 탑승용 드론을 선보이고 있다.

CES 현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업체 중 하나는 창업한 지 갓 2년이 지난 중국의 드론 업체 e항(eHang)이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사람을 태우고 비행하는 드론 'e항184'를 선보였다. 너비 1.5m에 무게 200㎏의 이 드론에는 헬리콥터처럼 사람 한 명이 탑승할 수 있다. 탑승자가 내부에 설치된 태블릿PC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이륙해 GPS(위성항법장치)를 따라 비행한다. 밑에서 따로 조종하는 사람도 필요 없다. e항의 첸리핑(陳麗蘋) 부사장은 "시험 비행에서는 평균 시속 100㎞에 4시간의 비행시간을 달성했다"며 "드론을 비행택시처럼 활용해 교통 체계의 완전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DJI는 드론 '팬텀' 신형을 선보였다.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지상에 있는 사람이 착용한 가상현실 기기로 실시간 전송하는 기능이 특징이다. 마치 하늘을 직접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웰테라·엑켄·프로드론·시에로 등 중국 드론 업체들도 대거 신제품을 전시했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설리번에 따르면 2014년 25억달러(약 3조원) 규모였던 세계 상업용 드론 시장은 2019년 54억달러(약 6조4638억원)로 두 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현장에 뛰어든 한국 기업은 소형 드론을 생산하는 바이로봇 한 곳뿐이었다. 바이로봇의 홍세화 전략담당이사는 "드론 시장은 중국이 만들고 발전시키는 '퍼스트 무버(선도자)'"라며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경우 첨단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스마트폰·TV는 한국과 어깨 나란히

CES에서 세계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전기차 벤처기업 패러데이 퓨처도 중국인이 미국에서 설립한 업체다. 중국에서 동영상 업체 '러스왕'으로 중국 17위의 부자가 된 자웨팅(賈躍亭)이 투자해 2014년에 설립한 이 회사는 전기차 콘셉트 모델 'FF제로1'을 공개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창업 2년 만에 콘셉트 모델을 출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패러데이 퓨처는 세계 1위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의 핵심 엔지니어들을 대거 영입한 데 이어, 독일 BMW에서 전기차 i3·i8의 콘셉트를 만든 한국계 디자이너 리처드 김이 제품 디자인을 총괄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속 321㎞ 전기차 - 6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CES 2016’에서 전기차 제조업체인‘패러데이 퓨처’가 최고 출력 1000마력, 최고 시속 321㎞인 미래형 전기차 콘셉트 모델‘FF제로1’을 공개하고 있다. 이 업체는 중국에서 동영상 서비스‘러스왕’으로 큰 돈을 번 IT 부호 자웨팅이 2014년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다.

이번에 공개한 FF제로1은 역동적인 디자인과 최고 출력 1000마력, 최고 시속 321㎞의 강력한 힘을 자랑한다. 이 회사는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두고, 네바다주에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들여 공장을 설립한다.

CES의 주무대라고 할 수 있는 센트럴홀에서 삼성전자·LG전자의 전시장은 가장 큰 규모였다. 하지만 중국 전자업체 하이얼·하이센스·TCL 등은 삼성·LG의 바로 옆에 대형 전시장을 차렸다.

한국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리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제품 역시 한국 기업들이 내놓은 것과 시차(時差)가 없었다. TCL과 하이센스 등은 올해 모두 삼성전자·LG전자가 내놓기 시작한 퀀텀닷(quantum dot·양자점) TV, HDR(high dynamic range·고다양성 범위) 같은 첨단 영상 기술을 장착한 TV 신제품을 전시했다.

스마트폰에서는 중국 화웨이의 성장세가 무섭다. 화웨이의 케빈 호(Ho) 소비자부문 대표는 "작년 화웨이는 스마트폰 1억800만대를 판매했다"며 "이번에 내놓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8'로 북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자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첨단 기술의 경연장인 CES에서도 한국이 중국에 밀려날지 모른다"라며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미래 산업에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