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파크가 KT와 제휴해 샤오미의 ‘홍미노트3’를 판매한다고 홈페이지에 게재한 광고.

도대체 중국 샤오미(小米·좁쌀)의 위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한국 스마트폰 시장에 이처럼 대소동이 벌어졌을까.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스마트폰을 들여와 출시 보름 만에 1만대를 팔았듯, 중국 폰의 한국 진출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샤오미는 한국 지사(支社) 없이 해외 직구(직접 구매)만으로도 광범위하게 제품을 팔아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번에도 샤오미가 직접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 아니다. 주요 통신 대기업과 전자상거래 업체가 손잡고 샤오미를 먼저 '안방'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인터파크는 KT와 제휴해 4일부터 샤오미의 '홍미노트3'를 6만9000원에 온라인으로 판매하다가 5일 밤 "불가피한 사정으로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인터파크 측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국내 제조사와 통신사를 고려한 조치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샤오미가 그만큼 한국 업체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시장 파고드는 샤오미

샤오미는 중국의 기업가 레이쥔(雷軍·47)이 2010년 세운 IT(정보 기술) 기업이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보조 배터리, 스마트워치, 가습기, 체중계, 셀카봉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을 만들어 판다. 세련된 디자인에 성능이 괜찮은 제품을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인기의 비결이다. 애플·삼성의 디자인과 기술을 상당 부분 모방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한다.

샤오미 본사 인력은 연구개발(R&D)과 제품 기획, 디자인에 집중하고 제조는 외주 업체에 맡기는 식으로 가격을 낮춘다. '미펀(米粉·샤오미의 팬)'이라고 불리는 열성 소비자를 제품 기획과 개발에 참여시킬 만큼 적극적으로 고객과 소통한다. 마진보다는 자사(自社) 제품을 최대한 많이 판매해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제품 제조에 치중하는 삼성·LG와는 다른 방식이다.

잡스처럼… 청바지 입은 샤오미 창업자 - 중국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의 레이쥔(雷軍) 창업자가 베이징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스마트폰 ‘미(Mi) 4’를 소개하고 있다. 그가 2010년 창업한 샤오미는 작년 중국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꺾고 1위에 올랐다.

이 같은 전략은 한국에서도 잘 통하고 있다. 샤오미는 국내 공식 유통망이 없지만, 이미 많은 국내 젊은이가 해외 직구(직접구매)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다양한 샤오미 제품을 구매해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 '샤오미 마니아'들도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주요 통신사와 전자상거래 업체가 손잡고 샤오미폰을 판매하려고 한 것도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한 시도였다. 6만9000원에 판매 가격이 책정됐던 홍미노트3는 5.5인치 대화면, 1300만 화소 카메라, 지문인식 기능 등 고사양을 갖췄다. 국내 소비자들은 90만원대 '갤럭시노트5'와 이 제품을 비교한다.

가격뿐 아니라 기술도 한국 따라잡아

이 같은 중국의 공격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계속 패퇴(敗退)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으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공동 1위는 샤오미와 화웨이(각각 점유율 15.7%)였다. 3위는 애플(10.3%), 4위는 중국 업체인 비보(Vivo·8.7%)다. 2년 전까지 1위였던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7.2%로 5위까지 내려갔다. LG전자 휴대폰연구소장 출신인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스마트폰 기술이 범용화되면서 중국이 저가(低價)에 고성능을 갖춘,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높은 폰을 대거 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ES에 선보인 중국 전기차 - 중국의 부호 자위에팅(賈躍亭)이 미국에서 설립한 전기차 업체 ‘패러데이 퓨처(Faraday Future)’가 4일(현지 시각) 선보인 전기차 콘셉트카 ‘FF제로1’. 중국 17위의 부호인 그는 “2017년에 전기차를 양산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실제로 중국 스마트폰은 이제 '값싸고 쓸 만한 폰'을 넘어 기술력으로도 한국 제품을 조금씩 넘어서고 있다. 화웨이가 작년에 출시한 대화면 스마트폰 '메이트S'는 화면에 손가락 압력을 감지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볼 때 자세히 보고 싶은 부분을 힘줘서 누르면, 화면이 압력을 감지해 해당 부분이 동그랗게 확대돼서 보이는 식이다. 삼성이나 LG도 아직 적용하지 못한 기술이다.

스마트폰뿐 아니다. 삼성·LG가 세계시장 1·2위를 지키고 있는 TV 시장 역시 위험하다. 중국 TV업체들은 삼성·LG가 2013년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인 미국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화면이 휘어진 곡면(曲面) TV를 선보인 지 1년 만에 똑같은 제품을 내놓는 등 기술 시차(時差)를 무섭게 단축해가고 있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산업공학)는 "국내 기업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샤오미, 화웨이를 두려워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걸 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경쟁하고 진화(進化)하는 중국 내 셀 수도 없이 많은 후속 기업들"이라며 "단지 제품의 질(質)과 가격만 놓고 따질 것이 아니라 중국 기업들이 물건을 만들고 성장하는 그들만의 '방식'을 분석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