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하고 싶은데 걸을 수가 없어서 발레를 못할 거 같아요. 나는 지체장애아들을 위한 발레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과학자도 되고 싶어요. 장애아들이 짚고 점프도 하고 빙글 돌 수 있는 발레용 지팡이를 만들고 싶어요.'(2011년 5월 22일 유지민양의 일기).

지민이는 선천적인 소아암 후유증으로 척수가 손상된 2급 지체장애인이다. 서고 걷지 못해 대부분의 시간을 휠체어에서 보낸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열한 살 소녀지만 두 다리가 항상 원망스러웠다. 그런 지민이가 5년 만에 다시 발레리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경기도 안산 생산기술연구원에서 재활로봇 '로빈'을 만나면서부터다.

장애인, 다시 걷다

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로빈은 척수 손상이나 뇌졸중으로 다리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입는 외골격(外骨格) 로봇이다. 하체를 로빈에 단단하게 고정하면, 착용자의 조작에 따라 휠체어에서 일어난 뒤 한발씩 앞으로 걸을 수 있다. 무게는 15㎏ 정도지만, 로봇 자체가 스스로 무게를 감당하기 때문에 착용자는 전혀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

보스턴 테러 사고로 무릎 아래를 잃은 댄서가 미국 MIT 휴 허 교수가 개발한 전자 의족을 달고 춤을 추고 있다. 이 의족은 사용자의 움직임에 맞춰 기계적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도록 설계됐다.

연구 책임자인 박현섭 박사는 "현재는 왼발, 오른발 하는 식으로 일일이 조작해야 하지만 사용자의 뇌파로 의도를 읽어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빈을 만난 뒤 지민이는 '발레 타이츠(tights)를 위에 입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가늘고 예쁜 로봇 다리를 만들고 싶다'고 일기에 썼다.

지체장애인들에게 일어서고 걷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을 해소하는 차원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지체장애인들은 신체 균형이 깨지고 상체 비만이 되기 쉽다. 억지로 걷는 등 부자연스럽게 운동하면, 척추가 휜다. 운동 부족으로 내장기관이나 심장 역시 약해져 수명까지 짧아진다. 박현섭 박사는 "한국에서만 매년 10만명의 뇌졸중 환자가 발생하고, 수십만명 이상의 휠체어 사용자가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연구팀도 로빈과 비슷한 외골격 로봇을 개발 중이다. 25개의 모터와 정밀한 컴퓨터가 달려 있으며, 장애인이 착용하면 가벼운 축구나 계단 오르기도 가능하다.

외골격 로봇의 선두주자는 일본 '사이버다인'사의 '할(HAL)'이다. 당초 할은 입는 것만으로 수십㎏의 물체를 가볍게 들 수 있도록 개발됐다. 물건을 옮기기 힘든 노인들이 목표 고객이었다. 하지만 최근 장애인을 위한 재활용으로도 각광받으며 독일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스라엘 '리워크 로보틱스', 스위스 '호코마', 미국 '엑소 바이오닉스' 등과 같은 외골격 전문 로봇 업체들은 상용 제품을 지난해부터 판매하고 있다. 티타늄과 알루미늄 등 가볍고 단단한 소재를 사용하고, 배터리 역시 3시간 이상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개발된 외골격 로봇은 대부분 손으로 잡는 보조장치나 지팡이가 있다. 박현섭 박사는 "다리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면 큰 충격을 받는다"면서 "100% 완벽한 외골격 로봇을 만들기 전에는 지팡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언맨 만드는 휴먼 2.0 기술

외골격 로봇의 원조는 미국 마블코믹스의 만화 '아이언맨'이다. 아이언맨은 강철슈트를 입고 초인적인 힘을 내는가 하면 날기도 한다. 당초 군사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외골격 로봇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의료 분야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대당 7000만원에서 1억원을 호가한다. 재활로봇 '코워크'를 개발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승종 박사는 "현재의 외골격 로봇은 사용자 개개인에 정확히 맞도록 제작해야 하고, 기술이 초창기라 고가(高價)일 수밖에 없다"면서 "3~4년 뒤면 3000만원 밑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사람의 의도를 읽어, 로봇을 조종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자신의 팔·다리를 대신하는 외골격 로봇이나 로봇 팔·로봇 다리를 생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훨씬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리처드 앤더슨 교수는 지난해 5월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전극(電極)을 심어, 환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 팔을 만들었다. 환자가 '물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면 로봇 팔이 앞에 놓인 컵을 집어 환자에게 가져다 주는 식이다. 국내에서는 고려대 뇌공학과 이성환 교수팀이 사람의 뇌 신호를 정밀하게 분석, 환자의 의도를 읽어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예 두 손이나 두 발이 없는 사람을 위한 의족과 의수도 진화하고 있다. 미국 MIT의 휴 허 교수는 생각을 로봇 팔다리에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센서를 통해 로봇 팔다리가 감지한 촉감을 뇌로 전달하는 실험도 성공했다.

허 교수도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그의 연구실에는 "600만달러의 사나이가 되겠다"고 적혀 있다. 그의 꿈이 이뤄질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