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29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금호아시아나 본관에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상기된 얼굴로 취재진에게 말했다. 박 회장은 이날 금호산업 인수 자금 7228억원을 완납하면서 2010년 1월 워크아웃 돌입 후 만 6년, 2190일 만에 금호산업을 되찾았다. 박 회장의 얼굴에는 만감(萬感)이 교차해 보였다. 기쁘지만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금호타이어 인수는 순리대로 될 것이고, 항공은 양적 성장보다는 안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 재(再)인수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구조조정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소송을 벌이고 있는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했다"며 대승적으로 화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국發 금융위기 충격으로 경영권 뺏겨

2000년대 중반 박삼구 회장이 이끌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순풍에 돛 단 형국이었다. 2006년 11월 건설업계 강자(强者)인 대우건설을 6조4255억원에 인수했고 2008년 3월엔 물류업계 1위 대한통운을 4조1040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10위권을 맴돌던 재계 순위는 7위로 상승했다.

하지만 그해 하반기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는 상황을 180도 반전(反轉)시켰다. 건설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대우건설 인수 자금 부담이 그룹 전체를 구조조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2009년 6월 대우건설 재매각을 발표했고 7월에는 박삼구 회장이 경영 책임을 지고 명예회장으로 퇴진했다. 그러나 대우건설 매각이 제때에 이뤄지지 않으면서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까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금호렌터카, 대한통운 등 알짜 계열사를 매각한 뒤인 2010년 11월, 박삼구 회장은 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 복귀해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그룹의 모태인 금호고속까지 매각하고 3000억원이 넘는 사재를 출연했다. 이런 노력이 인정을 받아 박 회장은 지난해 11월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을 다시 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받으며 그룹 재건의 기틀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 이후도 험난했다. 1조원 이상을 원하는 채권단과 줄다리기가 이어진 것이다. 결국 박 회장이 처음에 제시했던 6503억원보다 725억원 높은 채권단 매각가(7228억원)를 수용한 끝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년 만에 제 모습을 찾게 됐다. 김세영 금호아시아나그룹 상무는 "인수 자금 마련과 관련해 의구심이 많았지만 총수 일가(一家)의 증자(增資) 참여 등이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과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개인 지분 매각을 통해 마련한 1500억원 이상을 출자했다. CJ대한통운·효성 등 10여개 기업은 '백기사'로 참여해 4200억원 수준인 자본금의 60% 이상을 책임졌다.

◇그룹 재건 '마지막 퍼즐' 남아

박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금호기업→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그룹의 축(軸)을 다시 세웠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그는 이날 기자들 앞에서 "실적 개선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경영난에 시달리는 계열사들을 추스르는 게 급선무다. 그룹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아시아나항공은 올 3분기까지 누적적자가 880억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 사정이 심각하다. 금호아시아나는 내년 상반기 중·단거리 국제노선을 중심으로 하는 에어서울이 취항하면, 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과 역할 분담을 하며 실적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주력 계열사이면서도 아직 채권단 관리 아래 있는 금호타이어를 그룹의 우산 아래로 다시 넣는 일도 고민거리다. 올 5월에 사들였다가 금호산업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사모(私募)펀드에 되판 그룹 모태 금호고속도 다시 사들여야 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날 창업 70년을 맞는 2016년 경영 방침을 '창업초심(創業初心)'이라고 밝혔다. 박삼구 회장은 "고(故) 박인천 창업회장님이 강조한 부지런함, 성실, 정직, 끈기를 바탕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비상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