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D주유소. 비가 그치고 날씨가 꽤 쌀쌀해서인지,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주유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몇 명이 분주하게 자동차를 맞이했다.

조선 DB

"고객님, 휘발유 50,000원 주유시 세금은 30,050원 입니다."
"고객님, 경유 50,000원 주유시 세금은 26,050원 입니다."

주유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 푯말에 검은색과 붉은 색으로 쓰인 글귀였다. D 주유소에선 보통 휘발유를 리터 당 1378원에 판다. 서울 평균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리터당 1507원. 평균에 비해 8% 가량 싸게 팔고 있다.

D 주유소 사장은 “주변 주유소와 비교해 리터당 100원 정도 싸게 팔고 있어 그나마 손님이 있는 편”이라고 했다.

“(고객들 중에서는) 유가가 확 내렸다는데 정작 기름 값은 왜 안 내리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도 싸게 팔고 싶죠. 많이 팔면 좋으니까. 하지만 기름 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60%나 되니 값을 내리는 것도 한계가 있죠.”

주유소 사장은 “손님들 불만 받아주고, 세금 내느라 죽을 맛입니다. 주유소 한다고 하면 다들 돈 좀 버는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따지고 보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라고 말했다.

주유소 내부에 ‘기름 값의 60%가 세금’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국제 유가가 속절 없이 추락하는 가운데 주유소 업계가 들고 일어섰다.

“과도한 세금 때문에 가격을 더 이상 인하할 수도 없어 손님들의 불만을 감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세금을 걷어 내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매기느냐?"

한국주유소협회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앞으로 전국 주유소에 '휘발유 5만원 주유시 세금은 3만50원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부착하는 등 전국적으로 '유류세 바로 알리기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주유소 업계가 분노한 이유는 최근 국회에 계류 중인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때문이다. 신용카드 매출세액 공제 적용 대상에서 '매출액 10억원 이상 사업자'를 제외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주유소들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21일 한국주유소협회는 과도한 유류세 바로 알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히고, 정부에 카드수수료 인하 및 세액공제 혜택을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은 “과도한 유류세 때문에 주유소 매출이 부풀려지고 있다. 매출 10억원을 초과하는 주유소가 전체의 90%인 1만868개나 된다. 하지만 매출액에서 60%를 세금으로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된다. 그런데도 카드 수수료 인하 혜택도 못 받고 연 500만원 세액 공제 대상에서도 제외하겠다고 한다. 왜 주유소 주인들만 불이익을 봐야 하느냐"고 말했다.

정상필 한국주유소협회 이사는 "유류세 관련 카드수수료도 주유소가 모두 부담한다. 주유소당 연간 3000만원의 카드수수료를 유류세 징수 협력 비용으로 추가 부담한다”고 했다.

정 이사는 “정부가 걷을 세금을 우리가 수수료 물면서 걷어서 내는 실정이다. 카드 수수료를 깎아줘도 시원치않을 마당에 연 500만원 한도의 세액 공제 혜택도 안 주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한 주유소 주인은 “유류세 때문에 억울한 경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상황으로 가다가는 주유소들은 다 죽고, 카드사와 정부만 배를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기사
"유가 30달러대, 기름 값 왜 찔금 내리나"...가격의 60%가 세금, "정부만 배불리는 구조"<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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