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벼룩시장’은 서울 중구 황학동에만 있는 건 아니다.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풍물시장과 종로구 숭인동 동묘 벼룩시장, 황학동 만물시장을 묶어 황학동 벼룩시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벼룩이 들끓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을 팔고, 상인들이 벼룩처럼 튀어 다니며 중고품을 모아왔다는 뜻에서 벼룩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남북 분단 이후 전쟁 난민들이 청계천 근처에서 골동품과 잡동사니를 주워 팔면서 이 일대는 도시 빈민가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꼽혔다.

그랬던 황학동 벼룩시장이 최근 변화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젊은 상인들이 하나둘 몰리면서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이 시작된 1960년대 말 좌판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옛 상인의 모습.

◆ 도시개발에 떠밀린 황학동 벼룩시장 상인

황학동 벼룩시장 상인들의 삶의 터전은 애초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였다. 1960년대 말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면서부터 이곳 상인들은 황학동으로 자리를 옮겨 노점상을 시작했다. 없는 게 없고, 저렴한 가격에 중고 가전제품까지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1980~1990년대에는 신문에 여러 차례 소개될 만큼 번성했다.

하지만 황학동도 이내 개발 계획이 세워졌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주도로 2004년 청계천 개발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황학동 벼룩시장이 있던 청계천 7·8가에 주상복합 건물 건설 계획 등이 마련됐다.

2004년 과거 동대문 운동장 자리로 옮긴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상인들은 과거 동대문 운동장이 있던 곳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야 했고, 동대문 운동장으로 갈 수 없었던 노점상들은 동묘 벼룩시장 등 인근 시장으로 넘어갔다. 2008년 동대문 운동장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개발 계획이 나오면서, 상인들은 또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동대문구 신설동 풍물시장이다.

◆ 뿔뿔이 흩어진 시장에 소비자 발길도 오락가락

길가 좌판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수십년에 걸쳐 여러 동네로 옮겨 다니다 보니, 애초 장사를 시작했던 곳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상인들은 거의 없었다. 1980년대의 황학동 벼룩시장은 2000년대 들어 신설동 풍물시장, 동묘 벼룩시장, 황학동 만물시장으로 나뉘었다. 1곳이던 시장이 3곳으로 갈리다 보니 장사 매출도 크게 줄었다.

신설동 풍물시장에서 골동품을 파는 서평석(58) 씨는 “동대문이나 황학동에 있을 때보다 유동인구가 거의 10분의 1로 줄었다”며 “동대문은 아무리 평일이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여기는 평일이면 손님이 가뭄에 콩 나듯 할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황학동과 동대문운동장, 신설동 풍물시장을 모두 거친 악기 수리 기술자 강희연(77) 씨는 “손님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묘 벼룩시장으로 몰려가다 보니, 신설동 풍물시장의 상권이 죽었다”며 “이곳 상인들은 기술이 있다기보다 물건을 트럭으로 들여와 판매하다 보니 달리 먹고 살길을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황학동 만물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황학동 벼룩시장 상인들이 동대문으로 넘어가기 직전부터 토스트 가게를 해온 서모 씨는 “일본과 중국에서 오는 외국 손님도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없다”며 “임대금도 2004년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 청춘 상인, 황학동 벼룩시장 되살릴까

그나마 청춘 상인들이 가게를 꾸리고, 젊은 층 소비자가 드나들면서 신설동 풍물시장과 동묘 벼룩시장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신설동 풍물시장의 ‘청춘시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젊은 상인들이 꾸린 점포.

올해 9월 신설동 풍물시장에는 ‘청춘시장’이 들어섰다. 신설동 풍물시장 운영국이 젊은 사업가들에게 사업 아이템을 공모해, 임대금을 받지 않고 가게를 빌려준 것이다. 소비자와 상인 대부분이 노년층인 신설동 풍물시장에 젊은 층이 모인 점포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세대가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전시현 사무국장은 “젊은 세대는 떡볶이 하나를 먹으러 부산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유행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며 “(청춘시장 사업을) 시도하기 전보다 30~40% 정도 방문객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소비자를 모으는 것뿐 아니라 노후 상권을 바꿀 계획도 세우고 있다. 전 사무국장은 “청춘시장은 젊은 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한 시도 중 하나”라며 “앞으로 기존 상인들이 젊은 상인들을 보고 트렌드를 따를 수 있도록 품목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묘 벼룩시장을 찾은 노년층과 젊은 세대들.

동묘 벼룩시장과 신설동 풍물시장이 TV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등에 특색있는 장소로 알려진 것도 젊은 층을 모으는 원동력이 됐다. 동묘 벼룩시장은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싼값에 특이한 패션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장소’로 소개됐다. 이 덕분에 최근 청년층 소비자들이 대거 몰렸다. 1000원짜리 옷이 쌓인 가게에는 개성이 넘치는 옷을 찾는 젊은 세대를 쉽게 볼 수 있다.

동묘 벼룩시장을 찾은 김다롬(23)씨는 “동묘 벼룩시장에서 구한 옷을 잘 연출해 SNS에 인증 사진을 올리는 이용자도 많다”고 말했다.

반면 황학동 만물시장은 신설동 풍물시장과 동묘 벼룩시장만큼 변화가 크지 않다. 고미술품과 골동품으로 유명했던 황학동 만물시장에는 이제 중고 가전제품이나 주방용품을 파는 가게들만 남았다. 아버지 때부터 50년째 황학동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 중인 최은옥 씨는 “과거에는 골동품 가게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이제 인근에 4곳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며 “판매량이 많이 줄어 상인들이 울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