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경기를 살리려고 유지해왔던 '제로(0) 금리' 시대가 드디어 막 내렸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6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 금리를 현재의 0~0.25%에서 0.25~0.5%로 0.25%포인트 올리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2008년 말 금리를 제로로 낮춘 지 7년 만에 처음 금리를 올린 것이고, 마지막으로 금리를 올렸던 2006년 6월부터 따지면 9년 6개월 만의 금리 인상이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6일(현지 시각) 금리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 금리를 현재의 0~0.25%에서 0.25%포인트 올리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로써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기를 살리기 위해 유지했던 '제로 금리' 시대를 마감하게 됐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겠다고 결정한 것은 미국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직후 10%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달 5%로 떨어졌다. 성장률은 3년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올해 2.6%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미국의 경제 체질이 꽤 양호하다. 이번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동반 침체를 경험했다. 이에 미국이 앞장서 제로 금리 정책을 폈고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양적 완화 정책으로 4조5000억달러(약 5300조원)를 풀었다. 뒤따라 전 세계 중앙은행이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금리 인하라는 정책 공조를 폈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결정으로 전 세계는 이제 각국의 경제 체력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금리가 더 높은 곳을 찾아 돈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 홍콩·사우디아라비아 등은 17일 바로 기준 금리를 뒤따라 0.25%포인트씩 올렸다. 반면 경기 회복이 더딘 유럽은 지난 3일 이미 마이너스(-) 0.2%인 예금 금리를 0.1%포인트 더 내렸고,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양적 완화를 6개월 연장하는 추가 부양책을 내놨다. 중국도 지난 1년간 기준 금리를 여섯 차례 내리면서 올해 '7% 성장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관망하는 입장이다.

[재닛 예런 의장 "미국 경제에 대해 자신감"]

이처럼 위기 이후 '돈 풀기'에 합심했던 각국이 이제는 금리를 인상·인하·동결하는 세 갈래 길로 나뉘어 '그레이트 다이버전스(great divergence·대분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이 재임했던 1990년 이후 세 번의 금리 인상기(1994년, 1999년, 2004년)에 연간 7~8번, 금리 수준으로는 연간 2%포인트 남짓 기준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이번엔 과거와 달리 인상 속도가 매우 느릴 것으로 예상된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경제 여건은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금리 수준은 당분간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타당하다고 보는 기준보다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이번 금리 인상기는 과거 금리 인상기보다는 충격이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16일 미국 다우지수는 1.28% 올랐고, 17일 우리나라 코스피지수는 0.43%, 일본 닛케이지수가 1.57% 올랐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어서 금융시장에 앞서 충격이 반영된 데다 이제는 '불확실성이 제거됐다'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제로 금리 종식'으로 도래할 각자도생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17일 홍콩 등은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고,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를 더 낮추는 등 세계 각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소걸음 속도로 금리 올린다

미국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7명이 생각하는 내년 말 기준 금리 수준의 평균값은 연 1.375%다. 앞으로 연준이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린다면 1년간 최대 네 번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옐런 의장은 "물가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추가 인상은 유보될 것"이라며 경제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달러 자금이 미국으로 회귀하면서 신흥국들이 몸살을 앓았다. 1994년엔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해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면서 '채권시장 대학살'이란 말이 나왔다. 신흥국에선 멕시코가 가장 먼저 외채 위기를 맞았고,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로까지 번지게 된다. 2004~2006년 금리 인상은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위기를 거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졌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은 터키·브라질 등 달러 부채가 많은 일부 취약한 신흥국에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글로벌 위기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자도생' 통화정책 시대 도래

미국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올해 성장률이 2.6% 내외로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1996~ 2005년)의 평균 성장률 3.3%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면서 당분간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 달러와 연계가 강한 나라들은 경기 침체에 빠져 있어도 자금 유출을 막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17일엔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바레인 등 중동 3개국이 기준 금리를 0.25%씩 올렸다.

반면 유럽·중국은 미국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돈 풀기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유로 지역의 평균 인플레이션율이 0.1%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하락)을 걱정할 수준이다. 중국도 수출 부양을 위해 위안화 절하를 용인하는 가운데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인민은행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되면 달러에 묶인 위안화 가치도 덩달아 높아져 수출에 타격받을까 봐 지난 9거래일간 위안화 가치를 1.42% 떨어뜨렸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미국과 유럽·중국 등의 회복세가 달라지면서 각국이 각자도생하는 게 불가피해졌다"며 "그러나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경기 회복을 못 따라가면 미국 경기가 다시 주저앉으면서 전 세계가 또다시 '동시에 돈 풀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