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시 국립대만대학에 차기 총통(대통령) 후보와 대학생 1000여 명이 모였다. 내년 1월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여당인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와 야당인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 민진당 천젠런(陳建仁) 부총통 후보가 젊은 20대 청년 유권자를 만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학생 중 800여 명은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밴드(BAND)'를 켜놓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후보들이 대학생 취업, 경제 문제 등에 대해 토론할 때마다 학생들은 밴드 채팅방에서 "아주 명쾌한 설명" "○○○ 후보, 무조건 승리한다"와 같은 글과 이모티콘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았다. 즉석 투표를 통해 현장에서 인기 질문을 추려내, 후보에게 묻고 답하는 실시간 문답도 밴드를 통해 진행됐다. 행사가 진행된 3시간 30분 동안 2000여 건의 글과 투표, 채팅이 오갔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시의 한 전자 매장에서 사람들이 현지 스마트폰 브랜드인 HTC의 신형 스마트폰을 살펴보고 있다. 대만은 세계에서 모바일 인터넷 이용 시간이 가장 길 만큼 열성적인 스마트폰 이용 국가다.

작년 초 대만에 진출한 네이버 자회사 캠프모바일의 토종 SNS '밴드'가 대만의 최고 통수권자인 총통 후보와 젊은이들의 교류를 위한 '정치 소통 플랫폼'이 된 것이다.

밴드는 한국에서 동창회 용도로 주로 쓰이는 '폐쇄형 SNS'지만, 대만에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형 그룹 SNS'로 성격을 바꿔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재 이렇게 열린 그룹만 3만여 개. 대만 현지 1위 SNS는 개인 사생활을 주고받는 페이스북이지만, 밴드는 총통선거부터 전기 오토바이 동호인 모임까지 대만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슈를 담아내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캠프모바일 대만오피스 추옌치(邱彦錡) 대표는 "시간마다 영어학습 알람을 보내고, 영어 작문을 하면 원어민이 첨삭해주는 유료 영어학습 그룹이 생기는 등 새로운 유료 교육 플랫폼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200만여 명의 가입자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게임, 자영업 마케팅 등 플랫폼 사업자로서 다양한 확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남아 진출 위한 테스트베드, 대만

대만은 작지만 스마트폰 이용에는 아주 열성적인 나라다. 면적(약 3만6000㎢)은 전라도, 강원도를 합친 크기에 인구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2300만명. 페이스북은 올 초 대만에 지사를 냈고, 네이버의 자회사 캠프모바일도 해외 첫 지사로 대만을 선택했다. 왜 대만일까.

대만 국민 열명 중 일곱명(1700만명)은 스마트폰 이용자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197분으로 세계 1위, 페이스북 월간 이용자도 1600만명으로 인구 대비 사용자율 1위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도 일본·미국·한국에 이은 세계 4위다.

현재 대만에서 가장 강력한 모바일 플랫폼 서비스는 SNS 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페이스북'과, 메신저 시장을 잡은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의 '라인(LINE)' 메신저다. 라인은 대만 전체 스마트폰 이용자 수와 맞먹는 17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대만의 '카카오톡'과 같은 국민 메신저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이 주요한 모바일 게임 유통 채널이 됐듯이, 대만에서는 라인이 그렇다. 특히 한국 모바일 게임의 대만 진출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라인을 통해 대만에 출시된 국내 게임 개발사 데브시스터즈의 '라인 쿠키런'은 출시 직후 대만 앱스토어 1위에 올랐고, 넷마블의 '라인 모두의 마블'은 출시 1년이 지난 지금도 게임 매출 순위 5위권을 지키고 있다. 편의점에 가도 라인 캐릭터를 겉면 포장에 입힌 음료수를 쉽게 볼 수 있다.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게임·캐릭터·식료품 등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 플랫폼'이 된 것이다.

캠프모바일은 2013년 대만의 유명 스팸번호 차단 앱 '후스콜'을 인수해 플랫폼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한 스팸번호 알림 앱이었지만 지금은 대만·한국·태국·브라질에 보유한 월 1200만명의 이용자를 바탕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 홍보'를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미리 이용자의 얼굴과 전화번호, 회사명, 이메일주소, 회사 위치 등을 모바일 명함처럼 꾸며 상대방에게 전화할 때마다 자동으로 화면에 뜨게 하는 것이다. 창업자 궈젠푸(郭建甫) 대표는 "택배 배달원이나 공인중개사, 프리랜서, 영업사원 등 다양한 업종의 중소상공인들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검증된 콘셉트면 대만을 넘어 전 세계 어디서도 안 통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