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이죠. 가뜩이나 공급 과잉 우려에 금리까지 오른다고 해서 시장이 가라앉고 있는데 대출까지 조이겠다고 하니…."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8년째 영업 중인 유찬영 하늘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15일 정부가 전날 발표한 주택 담보대출 규제 강화 방안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이미 10월부터 거래가 끊기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경매 시장에는 충격이 곧바로 나타났다. 이날 대구지방법원에서 진행된 4건의 아파트 중 3건은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올해 내내 뜨거웠던 주택 시장이 최근 잇따른 악재(惡材)를 만나 흔들리고 있다. 공급 과잉 논란과 미국 금리 인상 리스크에 담보대출 강화까지 겹치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을 조짐이다.

◇수요자들 '멈칫'…"내년 봄까지 냉랭"

당장 내년 2월부터 수도권에서 LTV(주택 담보대출 비율)나 DTI(총부채 상환 비율)가 60%를 초과하는 신규 주택 담보대출은 원칙적으로 거치 기간이 1년을 넘지 못하게 됐다. 이번 대책 발표에 집을 사려던 수요자들은 최대한 계약을 서두르거나 아예 일단 지켜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번 대책으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이는 고가(高價) 주택과 재건축 아파트가 많은 서울 강남권 주택시장 분위기도 싸늘하다. 서울 도곡동의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대출이 얼마나 힘들어질지는 몰라도 수요자들 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며 "오늘도 계약서에 도장 찍으러 온다는 사람이 갑자기 시간을 좀 달라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내년 8월 결혼을 앞둔 박모(30)씨는 최근 은평구에 전용면적 39㎡, 1억5000만원짜리 신혼집을 계약했다. 자금이 부족해 1억원쯤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새로운 대출 제도가 시행되면 불리한 점이 많아 서둘러 신혼집을 산 것이다. 거래를 중개했던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내년 2월 이전에 거래를 서두르거나 아예 내년 하반기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미 기존 주택 시장 냉각 분위기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부동산시장 조사기업인 부동산114는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0.03% 오르는 데 그쳐 올 1월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작았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도 2주 연속 떨어졌다. 그동안 완판(完販) 행진이 이어졌던 경기 동탄2·위례·하남 미사 등 수도권 신도시에서도 최근 미분양 아파트가 생기고 있다.

◇대출 규제 대상자 예상보다 적을 수도

하지만 이번 대출 규제가 예상보다 대형 악재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출 가능 금액이 지금보다 10% 안팎 줄어들겠지만 대출 자체를 전혀 못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6월 기준으로 LTV 60% 초과 대출이 전체 주택 담보대출의 32% 수준이고, DTI 60% 초과 대출은 6% 수준(수도권 기준)이라고 밝혔다. 생각보다 규제 대상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6억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대출액이 3억6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이번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집을 구입할 때 집값의 60% 이상을 대출로 충당한다는 것이 지금도 무리한 측면이 있다"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출을 받는다면 거치기간 1년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DTI 60%를 초과하는 대출자도 많지 않을 전망이다.

DTI 60%에 해당하려면 월급이 500만원(연봉 6000만원)인 직장인이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월 300만원씩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류찬우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장은 “지금도 DTI 60%를 초과하는 대출이 6%에 불과하고, 대출 규제가 생기더라도 이 규정 때문에 대출을 못 받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이번 대출 규제로 주택 시장이 타격은 있겠지만 제한적일 것”이라며 “강남 고가 아파트와 재건축 시장은 투자 수요가 일부 줄겠지만 대출 규제만으로 전체적인 주택 시장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