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2008년 12월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당시 수준과 비교했을 때 비싸졌다. 7년 동안 리터당 90원 정도의 세금이 더 붙은 이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유가 바람을 타고 기름 소비가 늘면서 정부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현지시각)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날보다 9센트(0.25%) 내린 배럴당 35.33달러에 거래됐다. 한때 배럴당 33달러선까지 떨어지며 2008년 12월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 수준(배럴당 33.80달러)까지 떨어졌다.

석유수출국기구의 감산 합의 실패로 산유국들의 ‘치킨 게임’이 시작되면서 WTI(서부 텍사스 중질유)와 브렌트유도 약세다.

WTI 가격은 지난 주에 10.88% 떨어졌다. 작년 12월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WTI 가격은 배럴당 35~36달러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내년 1월 인도분 가격도 배럴당 37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브렌트유도 지난주 11.79% 하락해 1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WTI와 브렌트유 모두 지난 2009년 2월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2008년 12월 국제 유가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40.52달러. 올해 12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36~40달러 수준에서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7년 만에 국제 유가가 비슷한 수준이 된 셈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판매 중인 보통 휘발유 가격을 당시와 비교해보면, 현재 휘발유 값이 더 비싸다. 국내 주유소의 평균 기름 값은 올해 12월이 리터당 1456.66원으로, 2008년 12월(1328.50원) 보다 130원 비싸다. 한 번에 30리터를 주유할 할 경우 매번 4000원 가량 더 낸다.

가격이 차이는 유류세 때문이다. 정부는 2009년 1월 1일 교통세를 리터당 462원에서 514원으로 52원 올렸다. 2009년 5월 교통세가 한 차례 더 인상돼 529원이 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품질검사 수수료가 리터당 0.04원 오르면서 세금이 불어났다. 2008년 말과 비교하면 2015년 12월 현재 휘발유 유류세는 부가가치세, 관세 등과 합해 리터당 90원 가량이 더 부과되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기름 값을 수정하고 있다.

유류세 인상은 세수 확보를 위한 조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흑자 재정을 위해 교통세를 5.3%(22원) 인상, 3조3000억원을 더 걷었다.

2009년의 유류세 인상은 배경이 다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에 한시적으로 인하(리터당 505원에서 462원)했던 유류세를 1년도 안돼 원상태로 돌리면서 세금을 추가로 올렸다. 2008년 12월 462원이었던 교통세는 5개월 만에 두 차례 인상, 결과적으로 14% 오른 529원이 됐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2008년 당시에도 새 정부(이명박 정권)가 들어서면서 ‘서민 경제’를 위한다는 선심성 정책으로 한시적으로 낮췄던 것이지, 정부의 정책 흐름이 유류세를 인하하는 방향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2009년 초 유류세가 인상된 이후, 단 한번도 유류세가 인하된 적은 없다. 반면 국제 유가는 하락세를 타자 휘발유 소비는 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올해 1~9월 휘발유 국내 소비량이 5억7074만 배럴로, 작년 보다 4%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근 5년 동안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정부가 걷는 세금 규모도 판매량에 비례해 늘었다.

대표적인 유류세목인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수입은 2013년 13조 2000억원이었지만, 2014년 13조 4000억원으로 늘었고, 유가 하락폭이 컸던 2015년(잠정)에는 13조 9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도 유가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가 징수할 세수입 예산은 더 높아졌다. 지난주 국회를 통과한 2016년 세입 예산안 중 교통에너지환경세 수입 예상 규모는 14조 2000억원이었다.

저유가로 인한 판매 증가의 이익을 정부가 고스란히 챙기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흐름이 서민 경제 부담을 덜기 위해 유류세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적은 김대중 정부 이래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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