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남자들이 떨고 있다’

SK그룹 연말 임원 인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 주 중 이뤄질 예정이다. 최태원 회장이 지난 8월 광복절 사면으로 경영에 복귀한 이후 첫 인사라는 점에서 재계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옥중 인사를 통해 사장단의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SK텔레콤·이노베이션·네트웍스·C&C 등 핵심 계열사 4곳의 최고경영자(CEO)를 갈아치웠다. 장동현·정철길·문종훈·박정호 사장 등 측근들을 전진 배치했다.

하지만 내년을 준비하는 SK그룹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유가급락, 통신시장 포화, 반도체경기 불확실성 등으로 SK이노베이션·텔레콤·하이닉스의 실적이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8월 광복절 70주년 특별사면 복권 후 1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국내외 현장을 다닌 최 회장이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또 다시 ‘인사카드’를 꺼낼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5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CEO 세미나에 참석했다.

◆재계 인사태풍 SK에도 영향 미칠까

SK 안팎에서는 SK가 지난해 큰 폭의 인사를 단행, 올해는 인사가 소폭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인사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어떤 예측도 무용지물이다.

삼성, LG, 한화 등이 단행한 2016년 임원 인사의 특징은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대적인 물갈이로 요약된다. 재계에서는 SK 역시 ‘예외는 아니다’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 회장이 2년7개월의 공백을 깨고 직접 인사대상자를 챙기는 상황이라면 예상 밖의 인사태풍이 불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최 회장의 수감생활 동안 전문경영인으로서 무난하게 그룹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임 가능성이 높지만 1950년생으로 고령인 것이 걸린다. 매년 SK그룹 인사에서 변수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의 결단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최 회장이 아끼는 측근이라 유임이 유력하지만, 인사 앞에서 ‘영원한 동지’는 없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루브리컨츠의 상장 추진이 올해 7월 중단됐고, 방산 비리의 여파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문종훈 SK네트웍스 사장은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 탈락에 대한 문책론이 거론된다. 삼성, 한화 등에서 면세점 담당 임원들이 승진한 것과 비교해 SK의 인사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내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백석현 SK해운 대표는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세대 교체 바람 속에서 살아남은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의 거취도 관심사다. SK하이닉스 안팎에서는 무난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SK그룹은 지난해 승진 30명, 신규 선임 87명 등 총 117명의 임원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이중 절반이 매분기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낸 SK하이닉스에 집중됐다. SK 관계자는 “올해 승진 규모는 비슷하겠지만 지난해와 같은 편중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려대·법조계 출신 강세 올해도 이어질까

SK그룹 인사에서는 전통적으로 고려대와 법조계 출신들이 강세를 보였다. 고려대는 물리학과를 졸업한 최태원 회장의 모교이다. 다른 기업에서는 법무팀장 역할에 그치는 판·검사 출신들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것도 SK의 특징 중 하나다.

지난해 임원 인사에서 약진한 박정호 SK주식회사 C&C 사장,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 이형희 SK텔레콤 MNO(이동통신사업) 총괄이 모두 고려대 동문들이다.

법조계 출신으로는 김준호 SK하이닉스 사장, 윤진원 SK그룹 자율책임경영 지원단장, 강선희 SK이노베이션 부사장이 있다.

김 사장은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출신으로 2004년 SK에 입사했다. SK에너지와 SK텔레콤을 거쳐 SK하이닉스의 안살림을 맡아, 반도체회사의 경영진으로 변신했다. 김 사장은 최 회장과 신일고, 고려대 동문이다.

윤 단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출신으로 2008년 SK에 입사했다. 최 회장의 비서실장을 맡았으며, 그룹 감사팀 수장 역할을 하고 있어 영향력이 막강하다. 강 부사장은 서울지법 판사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출신으로 2004년 SK에 입사했다.

SK 법조 3인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최 회장의 구속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과 함께 수감생활 중 잦은 접견으로 오히려 신임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의 남은 숙제 중 하나가 수감중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구출하는 것”이라며 “SK 법조 3인방은 아직 임무가 남은 상황이라 이번 인사에서 유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