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의 핵심인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물 경기 추락을 막기 위해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것은 시기 적절했으나 이를 위해 가계부채 증가를 사실상 묵인한 결과 경제 구조가 더 취약해졌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가계부채가 올해 말이면 12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안심전환대출 등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가계부채 부실 위험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내년부터 대출자의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하고,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을 더 늘려간다는 정책의 큰 방향은 대체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 40% “대출완화는 잘못”…“경기부양 효과” 긍정평가도 적지 않아

13일 조선비즈가 학계, 금융계, 부동산업계, 법조계 등 각계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최경환 부총리의 주택대출 규제완화 정책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답변은 6명(20%)에 불과했다.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13명(43%)으로 가장 많았고, 10명은 ‘보통’(33%)이라는 중립적인 응답을 했다.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정책을 부정적으로 본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질적 측면에서 큰 개선 없이 양적 측면에서 악화된 점과 대출 규제 완화로 인해 지방 등 일부 지역에서 주택 공급이 과잉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점을 꼽았다. 또 거시안정장치인 DTI와 LTV를 경기 부양책으로 썼던 것도 잘못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이인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정부의 주택대출 규제완화는 투기성 수요가 횡행하는 주택 시장의 체질을 개선할 중요한 기회를 무산시켰다”고 지적했다.

반면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주택 경기뿐 아니라 내수 진작 등 경기 부양에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 교수는 “2002년~2004년 부동산 경기 호황 때 대출로 주택을 구입한 장년들이 하우스푸어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들은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가 경기 부양의 효과는 있었으나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후속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휘정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주택 구입 외 생활·사업 자금 목적의 부채 증가 등 부작용에 대한 보완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質 큰 개선 없다”는 의견 많아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계부채의 질(質)이 개선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중 절반은 ‘종전과 다르지 않다’고 응답했다. 30명 중 5명(16%)은 오히려 가계부채가 질적인 측면에서 나빠지고 있다고 봤고, 8명(26%)은 가계부채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올해 초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위주의 가계부채를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방식으로 개선하기 위해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하는 한편, 주요 시중은행들에 2017년까지 분할상환·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40%로 끌어올릴 것을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목표대로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가계부채 질이 개선되고 있는 주요 이유로 꼽았다. 지난해 말 20% 후반대에 머물렀던 은행권의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중은 최근 30%대 중반 대까지 상승했다. 지난달 말 기준 대부분의 은행은 금융당국이 제시한 목표치(35%)를 초과 달성한 상태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른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의 확대는 바람직한 변화”라며 “특히 최근 주택담보대출은 실수요에 기반을 둔 것으로 부실화 위험은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고령자, 자영업자, 저소득층 등 금리 인상이나 경기 침체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취약 계층의 부채 상환 부담이 여전히 높은 데다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어 가계부채의 질이 ‘개선됐다’고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진단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안심전환대출의 중도상환 누적 건수는 6268건(4890억원)이었다. 시행 첫 달인 5월에는 72건에 불과했으나 9월 1310건, 10월 1850건으로 매달 증가하는 추세다.

유경원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 확대 목표를 세워 둔 금융당국 등 관리자 입장에서 보면 가계부채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이 고신용-저신용자 간 금리 격차가 존재하고 소득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면 부채의 질은 앞으로도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심전환대출이 향후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송두한 농협금융연구센터 센터장은 “MBS 등 자금조달 시장 활성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심전환대출은 금융 리스크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