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1㎏당 5000원에도 다 팔리던 게 이제 1000원도 못 받아요."

7년 전 충남 당진군으로 귀농한 김계택(53)씨는 2013년 오이과 채소 중 하나인 여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여주가 '당뇨에 좋은 채소'로 소문나면서 인지도가 조금씩 올라가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까진 김씨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여주는 새로운 건강식품으로 조명받으며 주부들 사이에서 '잇(it) 채소'로 떠올랐다. 혈당 관리에 도움을 주는 카란틴 성분이 들어 있어 '천연 인슐린'으로도 불렸다.

상황이 급변한 건 올해였다. 소위 '뜨는' 채소로 소개되며 농가들이 앞다투어 여주 재배에 뛰어들자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은 것이다. 김씨는 "공판장에 내놓을 만큼 대중화된 채소도 아니다 보니 여름철에 다 못 판 여주는 여주 즙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여주는 오이처럼 생긴 덩굴식물로 표면은 우둘투둘하다. 보통 4~5월에 파종해 7~9월에 수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던 것이 전부였다가 8~9년 전부터 상업용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농촌진흥청 이희주 연구사는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며 동남아 지역 채소였던 여주를 찾는 분이 늘어났고 여주 효능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뇨·고혈압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며 알음알음 커지던 여주 시장을 키운 건 방송과 SNS의 힘이었다. 2010년부터 여주 홍보를 시작한 경남 함안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2013년 지상파 건강 프로그램에 나오고 SNS에 소문이 퍼지며 인지도가 확 올라갔다"고 했다.

문제는 아직 충분히 소비자가 늘지 않은 상황에서 농가들이 너도나도 재배를 시작한 데서 시작됐다. 농촌진흥청 추정 통계에 따르면 여주 재배 면적은 2012년 21㏊에서 2014년 45.8㏊까지 늘었고 올해엔 100㏊까지 증가했다. 송탄여주농장 심재후 대표는 "올해 처음 여주 농사를 시작한 사람 중엔 여주를 다 팔지도 못하고 버린 사람이 꽤 있다"고 했다.

여주 농가들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농업 환경의 열악함이 '유행 따라 농사짓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장광진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학과 교수는 "안정적인 소득 작목이 없다 보니 조금만 유행해도 다들 작목을 바꾼다. 농가에 새로운 소득원을 소개해야 하는 농업 당국이 매스컴 홍보에 열을 올리고 SNS를 타고 유행이 시작되면 농가들이 그 유행에 뛰어들며 다 같이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