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본사가 있는 현대차그룹 양재 사옥

12월 8일 새벽 국내 철도업계에는 끔찍한 일본 발 외신이 날아들었다. 오는 11~1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인도 방문 기간 중 인도와 일본이 고속철도 계약을 정식 체결할 것이라고 일본 주요 일간지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일본의 유력 경제지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9월 인도네시아 수주 경쟁에서 중국에 고배를 마신 일본이 인도 고속철 계약을 따냈다.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보도했다.

인도 고속철도 사업은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를 잇는 505㎞ 구간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사업 규모가 17조원(일화 1조8000억엔)이나 된다. 사업권을 따낸 일본은 9조4800억원(1조엔) 규모의 차관을 10년 분할 조건으로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저렴한 공사비를 무기로 인도 정부를 공략했던 중국은 분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올해 5월 인도와 24개의 협정을 맺으며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물량 공세를 폈지만, 일본의 막판 물량 공세에 밀렸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올해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간 150㎞ 고속철도 사업, 태국 북부 농카이부터 맙타풋을 잇는 867㎞ 고속철 사업을 잇따라 따냈다.

아시아 전역에서 고속철도 등 메가 인프라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각축전 양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1대 1 대결 구도 속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한국의 존재는 조만간 아예 지워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현대로템 직원들의 회사 평가

◆“경영진은 주먹구구. 임원들은 보신주의, 단기 성과에 매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현대로템은 “중국의 물량 공세, 일본의 파격적인 정부 지원, 국내 시장을 외면하는 정부 정책 등 외재적 요인 때문에 아사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1%도 안되는 연구 개발비, ‘신의 직장'이라는 한전도 울고갈 수준의 고액 연봉 잔치 등 내부적인 요인이 크다"고 지적한다. “중장기적 전략보다 단기 목표 달성에만 치우친 탓"이라는 진단도 있다.

그렇다면 현대로템 직원들이 진단하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몇 몇 기업 평판조회 사이트, 취업 포털·카페에 현대로템 직원들이 올린 자체 기업 평가에는 체념과 자조가 가득하다.

“경영진의 경영 방식은 주먹구구식이다.”

“경영진과 임원들은 보신주의에 물들어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현대로템의 지위가 낮다. 경영진이 자주 교체돼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많은 현대로템 직원들은 “외부의 요인 보다 내부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2~3년 주기로 경영진이 교체된다. 그러니 장기 발전 계획이 가능하겠느냐."

조선비즈 확인 결과, 현대로템 대표이사는 2001년부터 2~3년에 한번씩 교체됐다.

특히 주력사업인 철도차량 사업 총괄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2011년 김재홍 당시 철도사업본부장의 임기는 2014년 3월까지였지만, 2013년 김정수 본부장으로 바뀌었다.

김 본부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은 2016년 1월이었지만, 2014년 장현교 철도차량생산총괄 상무가 김 본부장의 자리를 대신했다. 장 상무는 현재까지 현대로템의 철도사업을 이끌고 있다.

◆“만연된 면피주의, 군대 문화, 불공정 인사, 비젼 없다”...예견된 추락

“‘2년 살이’ 정책이 난무한다. 그러니 일을 시작할 때부터 ‘면피’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한 직원은 잦은 경영진 교체, 단기 성과주의, 무책임을 질타했다.

“간부들이 너무 보수적이다. 업무는 소극적이다.”

“단기적인 영업이익만 추구하다 보니 기술력이 뒤처지고 있다.”

“현재 사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사업 규모 확장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회사의 중장기 발전 계획은 보이지 않고, 눈 앞의 실적에만 연연하면서 내부 소통은 꽉 막혀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많다.

중장기 발전 계획의 부재는 매년 쪼그라드는 연구개발 투자 비용, 실적과 상관없이 오르기만 하는 임직원 급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한때 매출의 2%에 달했던 연구개발 비용은 올해(3분기 누적 기준) 0.7%까지 떨어졌다.

한 직원은 “엔지니어가 기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해 기술 발전이 더디다. 연구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사 불만도 많다. “승진이 공정하지 못하다", “기술직과 사무직을 차별한다"고 했다.

한 직원은 “진급이 공정하지 않다. 성실히 일해도 몇 년 째 과장 진급을 못한다"고 했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업무 부담이 커진다. 평사원과 대리급 직원들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걱정하는 직원도 있다.

현대로템 창원공장 내부 모습

현대로템은 올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이 “3년간 청년 일자리 3만6000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4월 생산직 신입사원과 시간선택제 계약직 일자리 채용 공고를 낸 것이 고작이다.

한 직원은 “최근 인력 충원이 없어 젊은 직원은 드물고 직원 평균 연령은 높다”고 했다. 조직이 늙어간다는 우려다. 철도부문 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21년, 전체 평균은 19년이다. 인재 육성에는 관심이 없고, 지금 자리를 지키는 직원들의 밥그릇 늘리기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조직이 한마디로 군대 문화에 젖어 있다. 후임은 ‘쫄따구’, 상사는 ‘고참’이라고 부른다. 뭘 기대하나?"”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 업무 배분이 비효율적이다.”

“해외 사업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 비전이 없다.”

현대로템의 추락은 예견된 추락이라고 직원들은 자체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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